할머니는 쭈글쭈글한 손으로 파를 정성스레 싸주셨다. 파를 들고 집으로 가는 내 기분은 좀 묘했다. 신수가 훤하기는커녕 매일매일 끔찍한 전쟁을 치르느라 고통과 분노에 휩싸여 있는 내 처지를 안다면 뭐라고 할까 싶었던 것이다. 하루에 오천원 벌이도 힘겨워 생계 자체가 문제인 그 할머니는 '소문이야 저 아니면 그만이지. 내일 쌀 살 돈도 없는 내 처지에 비하면 배부른 소리지.'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파를 냉장고에 넣으려다 말고 당장에 반찬으로 해먹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따. 왠지 정성들인 음식을 해먹고 싶어 파강회를 하기 위해 파를 데치고 마는 동안 내내 할머니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 p.109
투쟁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 길엔 처절한 외로움이 있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회의가 고개를 쳐들고 앞길을 가로막기도 한다. '문득 끝은 어디인가'라는 의문이 후려치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채 다시 그 길에 들어서려니... 창 밖은 봄인데 마음속엔 다시 겨울이 온다... 나는 지금 극심한 해산의 고통을 치른 느낌이다. 그것은 나 자신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해산의 고통이었다. 내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악몽 이전의 삶의 기쁨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이 모든 고통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극심한 무기력증과 고통 속에 쓰러지면서도, 내겐 절대로 놓칠 수 없었던 것이 있었다. 바로 내 '아이'와 '진실'이었다. 나는 그 끈만은 놓을 수 없었다……. 내 삶에 목표가 있다면 그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은 것이다. 내 삶을 그 아들과 늘 함께할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나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설명해주어야만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을 위해 이 기록을 남긴다.
--- 본문 중에서
사실 지난 세기에 우리는 모두 1등만을 바라보며 살았다. 1등을 향해 열심히 뛰었고, 그 자리를 탈환하기 위해 시기와 질투를 하기도 했으며, 1등 자리를 차지한 다음엔 그 자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수백 수천 명이 마라톤을 해도 1등만이 월계관을 썼다. 똑같은 한 가지 과제를 놓고 수천 명이 경쟁해왔다. 물론 그것은 단순 경쟁이었고, 결과는 항상 서열화될 수밖에 없었다.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였다.
그러나 21세기의 최대 가치는 창조성이다.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으며 나와 똑같은 뇌를 가진 사람 역시 한 명도 없다. 서열은 필요없게 되었고 존재하지도 않게 되었다. '창조성'에는 등수가 없다. 그러므로 과거에 일등을 했다고 자랑할 것도 없고 꼴찌였다고 주눅들 필요도 없다. 그것은 단지 20세기의 가치일 뿐이다. 21세기의 화두는 유일성이다.
--- p.248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가족이 있는 사람도, 남편이 있는 아내도, 아내가 있는 남편도. 도리어 같이 있어서 더 외로운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그래서 인간인지 모른다. 외로움은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이상 떨쳐낼 수 없는 본능적인 감정이다. 누구나 마음 한 켠에 외로움을 담아둔 채 살아가는 것이다.
--- p.166
누가 이따위 소문을 믿을까 싶을 만큼 어처구니없는 내용이었다. 글을 올린 사람의 이름은 배부전이었고, 글의 내용은 내 이혼 사유와 관련된 것이었다. 배부전? 뭐 하는 사람이지? 미주통일신문?
보면 볼수록 황당하고 어이없는 내용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라도 전화를 걸어 조치를 부탁해야 할지, 아니면 법적인 조치를 강구해야 할지 알아보아야 했다. 그런데 그날은 하필 일요일이었다. 아무런 공식적인 조치되 취할 수가 없었다. 우선 평소 알고 지내는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의논을 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왠 정신 나간 사람이군요. 냉리 날 밝는 대로 조치를 취하시죠.'
그와 통화를 하고 나서도 이게 도대체 무슨 황당한 일인가 싶어 머리가 휑했다.
--- p.20
그 기자는 내가 진행하던 '백야' 프로그램의 회의실로 전화를 걸어오거나 매주 목요일에 있던 '백야' 녹화 때 분장실로 찾아와 '인터뷰 좀 해주세요. 아니면 사진이라도 한 장 찍죠' 하고 요청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거절했고 그러면 그쪽에선 '뭐가 그렇게 까다로워요? 백지연 씨는 인터뷰도 싫다, 사진 한장 찍는 것도 싫다, 그렇게 까다롭게 구니까 기자들이 싫어하죠. 그러지 말고 인터뷰 좀 하시죠' 라고 말하곤 했다.
그녀의 요청은 직업상 할 수 있는 요청이었고 나쁜 의도는 이닐 수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나는 몇 개월에 걸친 인터뷰 요청에 한 번도 응하지 않았고 간단한 사진 한 장 찍어두자는 것도 계속 거절했다. 그래서 '스포츠투데이'는 나에 대한 기사를 자주 썼는데도 자사에서 직접 촬영한 내 사진을 쓴 적은 한 번도 없다. 문제가 된 7월 15일 기사의 사진 역시, 내 사진을 1면 전면에 대대적으로 실으면서도 자료 사진을 썼다.
--- p.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