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1kg 빠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세 끼 중 한 끼는 닭가슴살 한 조각으로 때웠고, 밥을 먹을 때는 주로 야채쌈에 밥 반 공기만 먹었다. 나트륨이 많이 들어있는 김치는 입에도 대지 않았고, 국물 역시 같은 이유로 먹지 않았다. 엄마가 나물무침을 해주면 옆에서 간장이든 소금이든 적게 넣으라고 닦달을 했다. (...) 이렇게 철저하게 운동과 식단 관리를 했으니 엄청 건강했을 것 같지만, 실제로 이때의 나는 운동하는 시간과 먹는 시간을 빼고는 누워서 생활을 했다. 그 당시에는 두통이 진짜 심했다. 이유도 몰랐다. 그냥 빈혈인 줄 알고 철분제를 사 먹고, 힘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극단적인 저염식 때문에 나트륨 칼륨 균형이 무너져서 그랬던 것이었다.
--- p.27
누군가 살이 좀 찐 것 같다고 하면 “아니야, 나 살 안 쪘어!”라고 대답하고 다녔다. 그럴 때면 굉장히 예민하게 굴며 신경질을 부렸기 때문에 나에게 아무도 다이어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었다. ‘나 절대로 살 안 찔 거야. 어떻게 뺀 살인데….’ 계속 이렇게 생각하면서 몸무게도 재지 않고, 거울도 똑바로 보지 않았다. (…) 사실은 이미 스스로 알고 있었다. 바지가 점점 안 맞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도 계속 아니라고 부정만 하다가 결국 2년 만에 다시 원 상태였던 88kg이 된 것이다. 제일 처음에 다이어트를 시작했던 그 88kg까지.
--- p.32
‘아… 춤추고 싶다.’ 원래 춤에 관심이 많았고, 에어로빅 강사 자격증까지 딸 정도로 춤과 무대에 대한 욕심이 있는 나다. 하지만 지금은 몸이 이만큼 불어 있고, 눈앞에 애들이 기어다니고, 내 마음대로 뭐 하나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하다 보니 계속해서 춤이 떠올랐다. (...) 88kg의 몸으로는 내가 원하는 춤선이 나올 수 없다. 우선은 체지방을 낮추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리고 춤선이 예뻐지려면 스트레칭도 필요하다. 팔다리를 좀 더 예쁘게 꺾고 뻗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전의 다이어트가 외부적 요인에 의해 시작되었다면 이번에는 나의 내부적 동기에 의해 시작되었다.
--- p.40
초코파이 12개가 들어있는 한 박스가 어떤 사람한테는 넘치는 양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혼자 다 먹어도 소화가 가능한 충분한 양일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나만이 알 수 있고, 그 밸런스를 맞추는 것 역시 온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도넛을 한 박스는 먹어야 하는 사람이고, 그것이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이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 10년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 p.52
어쨌든 내 몸이다. 내가 먹은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그 다음 행동을 하면 되는 것이다. (...)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었다면 그 다음 끼니에는 조금 가볍게 먹어주면 된다. 전날 과식의 여파로 체중이 올라간 것은 아직 내 몸을 지나가고 있는 음식의 무게일 뿐이다. 당장 하루 만에 살이 되어 붙어버리는 것은 아니니 우울해하지 말고 오늘 조금 덜 먹으면서 조절하면 된다.
--- p.60
25kg을 빼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먹었을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뭐든지 잘 먹었다. 먹으면 안 될 음식을 정해 놓으면 왠지 그 음식이 더 당기고, 이것만 먹어야 한다고 정해 놓으면 왠지 그 음식은 더 지겹게 느껴지는 게 인간의 묘한 심리다. (...) 대신 과일과 채소를 즐겨먹으려고 노력한다. 과일과 채소는 비싸고 보관이 어렵다는 편견이 있지만, 제철과일과 제철채소는 많이 비싸지도 않고 영양소와 맛도 풍부하다.
--- p.104
좋아하는 줄 알았던 음식이 사실은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먹던 습관에 따라 그냥 관성적으로 먹었을 뿐 사실은 별로 즐기지 않았던 것이다. 나에겐 라면과 짬뽕이 그런 메뉴였다. (…) 내가 알고 있는 음식의 맛은 사실 상상 속의 맛일 수 있고, 내가 그 음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착각과 믿음 때문일 수도 있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맛이 무엇인지 다시 점검해보고, 그 맛에 조금씩 재미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이왕이면 인스턴트 가공식보다는 자연식 중에서 그런 음식을 찾아보면 더 좋다.
--- p.116
이래도 만족스럽지 않고, 저래도 만족스럽지 않아서 제대로 된 떡볶이를 먹을 때까지 스트레스가 쌓일 것 같으면, 참아서 폭발할 때까지 두지 말고 그냥 먹자. 그것도 이왕 먹을 거 집중해서, 내 마음과 뇌가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맛있게 먹자. (…) 단, 먹고 나서 자책을 하게 될 것 같으면 차라리 안 먹는 게 낫다. 맛있게 먹고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힘을 내고 다시 관리를 시작하면 된다.
--- p.148
이렇게 시작한 것이 ‘아무 운동 100개’ 챌린지다. 이름 그대로 아무 운동이든 하루에 100개씩 했다는 걸 인증하는 방식이다. 스쿼트를 100개 하든, 윗몸 일으키기를 100개 하든, 플랭크를 100초 하든 상관없이 정말 가볍게 시작했다. (...) 물론 수월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어떤 날은 너무 피곤해서 어깨 돌리기 100번의 꼼수로 채운 날도 있다. 반대로 어떤 날은 평소라면 힘들어서 시도하지 않았을 슬로우 버피 100개에 도전하기도 했다.
--- p.189
25kg을 감량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목표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그나마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셋째를 임신중이라 다시 10kg이 증가한 상태다. 그렇다면 나는 다이어트에 실패한 걸까? (...) 하지만 단순히 실패라고 하기에는 현재 나의 생활은 매우 안정적으로 잘 돌아가고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성취감과 뿌듯함도 높았고, 아이들과 남편과의 관계도 좋았다. 먹는 것을 줄이면 살은 더 빠지겠지만 그 과정에서 예민해져서 욱하는 일이 늘어날 테고, 그것은 오롯이 육아와 살림에 반영될 것이 분명하다. 독서 활동이나 블로그 쓰기도 소홀해질 수 있다. (…) 어느 순간부터 57kg은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육아와 삶의 반복 속에서 희미해지는 나를 찾기 위해 설정했던 상징적 숫자일 뿐, 지금의 나는 그 숫자가 아니어도 충분히 멋지고 아껴줄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 p.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