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빈센트St Vincent곶의 절벽은 유럽의 최단 남서쪽 끝에 자리 잡고 포르투갈 해안에 자연 그대로 우뚝 솟아 있다. 여기서 땅거미가 질 때 대서양으로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최초 유럽인들은 그들이 세계의 끝에 도달했던 곳이 대서양이라고 믿었다. 매일 밤 그들은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모습을 드러낼 바다로 사라지는 열과 빛의 근원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디에서도 그런 신화에 더 도움이 되는 곳을 알지 못한다. 이 황량한 절벽 너머로는 끝없이 바다가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 뒤에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역사의 파도 위로 굴러왔던 광활한 땅덩어리가 있다.
유럽은 원래 아시아의 북서쪽 모퉁이에서 떨어져 있는 별로 크지 않은 반도다. 유럽은 포르투갈 해안에서 북쪽으로 북극, 남쪽으로 지중해, 그리고 동쪽으로 코카서스Caucasus산맥과 우랄Ural산맥까지 펼쳐져 있다. 이 두 산맥의 도로 옆 거친 금속 표지판이 임의의 경계를 표시하고 있다. 유럽 대륙에는 사막이 없고 단 하나의 주목할 만한 산맥으로 알프스Alps산맥이 있다. 대체로 온화한 하늘 아래 비옥한 충적 평야로 미국 인구의 두 배가 넘는 7억 5000만 명이 살고 있다.
유럽은 세계의 민족 결집에서 우위를 주장할 수 없다. 다른 것들이 규모와 문명 그리고 번영에서 유럽에 필적할 수 있다. 유럽이 두 번째 천년기the second millennium 끝 무렵 제국의 지배로 들어간 것은 극적이었고 오래가지 못했다. 하지만 다양성과 군사적 우위, 역동성과 경제의 활력, 그리고 과학적 능력과 문화적 창조성은 유럽을 인류 역사에서 특별한 장소로 만들어준다. 심지어 상대적 쇠퇴의 시기인 오늘날에도 유럽은 여전히 전 세계의 난민, 이주자, 학자, 그리고 여행자에게 매력적인 곳이다.
유럽이라는 단어는 기원전 6세기에 그리스 본토 북부를 나타내는 것으로 등장했다. 유럽은 결코 경계를 합의한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로마제국과, 그다음에는 기독교 세계와 동의어였다. 둘 다 오늘날의 유럽의 한계를 넘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넓은 지역으로까지 확대되었다. 동쪽 경계는 고정된 적이 없었지만 일반적으로 우랄산맥, 흑해, 그리고 코카서스산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기에는 유럽 러시아가 포함되지만 조지아뿐 아니라 보스포루스Bosporus 해협 동쪽의 터키도 제외된다.
유럽 대륙의 어떤 짧은 역사도 본질적으로는 정치에 관한 것으로 땅에 대한 사람들의 권력 투쟁이다. 홉스Hobbes는 인간은 끊임없는 투쟁에서 태어난다고 주장했다. 그 투쟁이 폭력적일 필요가 있는지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이지만, 유럽의 이야기는 전투에 성공한 사람들, 즉 그들이 통치했던 사람들보다는 통치자들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유럽 대륙의 권력에 대한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적어도 최근까지는 전쟁의 관행이, 따라서 전쟁이 준비되고 마무리되는 과정이 주도해 왔다. 오늘날까지도 유럽인들은 서로 평화롭게 살기 위한 헌법 공식을 찾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들은 ‘유럽’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논쟁하고 있다.
나는 역사가 논란의 본원지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일부 역사가들은 유럽의 이야기에 대한 정치적 접근을 편파적이라고 간주할 것이다. 정치적 접근이 빈민, 노예가 된 사람, 여성, 이민자, 그리고 국외자와 같이 다양한 권력의 피해자였던 사람들을 배제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들 모두에게는 나의 역사만큼 ‘타당한’ 자체적인 역사가 있다. 또한 유럽 제국의 지배 아래 살았던 외국인들도 유럽을 다른 시각으로 볼 것이다. 나는 이 책이 한 대륙의 서사에서 권력의 행사와 분배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반복해서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다른 모든 서사의 시작에 서야 한다.
나는 전통적인 역사를 쓴다. 유럽의 이야기를 몇 시기로 나누었다. 가장 광범위하게는 고전 세계, 중세, 국가의 성장, 그리고 현대로 나누는 것이다. 첫 번째 고전 세계에는 그리스와 로마가 포함된다. 두 번째는 먼저 지중해 주변으로 그 이후엔 북유럽 너머로 기독교 세계의 승리를 다룬다. 이는 신성로마제국의 발흥 및 지중해 유역으로의 이슬람 출현과 결부된다. 세 번째는 국가의 부상, 종교 및 왕위계승 전쟁, 그리고 18세기와 19세기의 이념 혁명의 시기다. 나는 지난 세기의 대격변과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륙의 재건으로 끝을 맺는다.
그동안 나는 독자들이 더 깊이 파헤치기를 바라며 유럽의 역사에 끈질기게 따라다녔던 논란들을 지적해 왔다. 나는 유럽 이야기를 ‘시대’로 나누는 것에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전 문화에 대한 그리스와 로마의 상대적 중요성에 대해 의견이 다르다. 게다가 유럽의 진화에 비잔티움이 갖는 의미에 대해, 무슬림 침입이 유럽 대륙에 미친 영향에 대해, 그리고 유럽의 수많은 분쟁에서 교회의 역할과 르네상스 및 계몽주의를 촉진하거나 방해하는 교회의 역할에 대해 의견이 다르다. 나는 지나가는 말로만 이런 차이들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이것은 유럽 국가들의 역사가 아닌 유럽의 역사다. 어떻게 일단의 국가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집단적이고 대륙적인 의식을 발전시켰는지 서술하려는 것이다. 지리는 어떤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그런 의식의 발전에 더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이야기를 이끌어주었다. 우리는 동부 지중해에서 서부 지중해로, 그다음 알프스산맥 북쪽에서 중부 유럽의 커다란 강 유역으로 이동한다. 프랑스, 독일, 그리고 인접한 이웃 국가들은 지난 천 년의 기간 동안 유럽 이야기의 핵심에 머물러 있었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마찬가지로 이베리아반도, 영국제도, 스칸디나비아반도, 그리고 동유럽도 더 돌발적이고 지엽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나는 이것이 많은 나라를 서술에서 제외시키고, 게다가 자신의 나라가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엉성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의 아버지의 나라 웨일즈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유럽을 구성하는 지역들의 이야기가 아닌 유럽 전체의 이야기다.
나는 주로 아우구스투스Augustus, 샤를마뉴Charlemagne,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 III, 카를 5세Charles V, 예카테리나 2세Catherine the Great, 나폴레옹Napoleon, 히틀러Hitler 그리고 고르바초프Gorbachev 같은 지도자들처럼 그들의 활동이 이야기의 일부였고 그들의 영향력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 확대되었던 개인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는 경제학 전공자로서 정치에서 자원과 돈의 역할을 잘 알고 있지만 이것은 경제사가 아니다. 문화사도 아니다. 나는 유럽의 많은 화가, 작가, 음악가들의 명단과 내가 생각하기에 중심 이야기에 광채를 더하는 주요 지적 인물들을 언급한다. 이렇게 해서 소크라테스Socrates,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y the Great, 셰익스피어Shakespeare, 괴테Goethe, 베토벤Beethoven, 헤겔Hegel, 그리고 마르크스Marx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항상 절박한 이 시대의 드라마에 유사한 의견을 가지고 함께하는 사람들이다.
다양한 주제가 이야기 중에 드러나서 이야기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적어도 최근까지는 그 이야기에서 하나의 주제는 폭력의 특별한 역할과 폭력의 기술이다. 또 다른 주제는 한편으로는 헬레니즘 문화와 로마 문화의 이원론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 윤리와 믿음의 이원론이다. 두 가지 영향력 모두 개인에 대해 외부의 도덕적 권위를 내세웠지만, 또한 교회에서 구체화되든 국가에서 구체화되든 개인의 생각을 각성시켜 그 권위에 대항하게 했다. 두 가지 주제를 더 말하자면 그리스인들 때부터 끊임없이 통치권을 정당화하고 그것을 동의와 결부시키려는 시도와 민족국가의 출현을 추진하기 위한 무역과 자본의 창조적 에너지다. 마지막 주제는 어떻게 이런 힘들이 20세기에 유럽 대륙을 자멸에 가까이 다가서게 만들었는지이다. 그 위기로부터 오늘날의 세계에 유럽이 남긴 가장 호의적인 유산, 즉 민주주의 체제하에서의 사회적 시장경제 개념이 구축되었다.
나는 이야기를 정확히 연대순으로 진행했다. 왜냐하면 역사란 시간이 지나면서 원인에 따른 결과를 볼 수 있어야만 의미를 지니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능한 곳이면 어디에서나 우회나 역추적 또는 도약을 피했다. 어떤 의미에서 이야기의 핵심을 찌르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생략했던 반면 이야기에 중요한 사람과 생각에 대해서는 상세히 묘사했다. 이로써 나는 전후 유럽연합이 겪은 어려움에 대해 결론내리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
나는 오랫동안 현재 유럽연합의 헌법과 행동 그리고 그 성과물인 유로존에 대해 회의적이었지만, 유럽연합의 협력하는 활력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태어난 유럽에 한층 감탄하면서 유럽사 개관을 마무리했다. 유럽의 억압과 잔인함, 그리고 계속되는 실수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럽이 풍부한 문화와 탁월한 지도력 및 자선 능력을 갖추고 세계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놀라운 곳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과거에 유럽의 외교가 얼마나 쉽게 그리고 자주 혼란과 유혈 사태로 무너졌는지를 알게 되었다. 또한 하나의 정치적 실체로서 유럽을 결합시키려는 시도가 얼마나 자주 실패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통합과 다양성 사이의 균형을 찾는 일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여전히 그대로다. 이는 유럽 정치의 본질적인 의미를 규정하는 도전이다. 나는 맺음말에서 이 주제로 되돌아간다.
끝으로 간결함에 대해 주목하려고 한다. 이 짧은 내용의 책은 더 긴 내용의 책을 읽을 시간이나 의향이 없는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다. 나는 역사를 폭보다 깊이 있게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커리큘럼에 동의하지 않는다. 깊이는 폭을 뒤따라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을 경우 역사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간 활동의 연대표를 알지 못한다면 개인은 텅 빈 무대 위의 분리된 인물이 된다. 서로 역사를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의미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균형 감각을 의미하는 맥락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역사에 무지한 사람은 영원히 어린아이로 사는 것과 같다’고 말한 키케로Cicero의 말에 동의한다. 그렇지만 일련의 무작위 사건들로 이루어진 역사는 왜곡과 이기적인 이용으로 이어지며, 과장된 충성과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불만이 무기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역사학이란 무엇을 잊어야 할지 기억하는 것뿐 아니라 아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과거에 줄거리와 이야기를 주는 것이다. 그것은 짧은 내용의 역사가 해야 할 일이다.
---「머리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