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Wiki-Leaks), 오픈리크스(OpenLeaks), 구텐플라그(GuttenPlag) 같은 인터넷 플랫폼에는 아직 체제를 당황케 하는 너드들이 충분하다. 2009년 가을, 중국의 국방부가 새롭게 선보인 웹사이트는 불과 3개월 만에 230만 번 공격당했다. 2010년 11월에는 해커들이 독일의 원자력 포럼 홈페이지를 장악하여 원자력 로비의 일반적인 화면 대신, 원자력 반대 운동에서 종종 등장하는, 손에 성냥을 든 붉은 태양 및 불타는 컴퓨터, 그리고 “핵에너지는 이 웹사이트만큼 안전합니다”라는 슬로건이 뜨게 만들었다. 2011년 3월 말에는 연방 금융 에이전시 홈페이지를 네트워크로부터 삭제해야 했는데, 홈페이지에서 달갑지 않은 흐름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너드의 소명은 파괴하고 창조하는 것이다. 너드는 변화와 진보를 중재한다. 현상 유지에 기여하는 권력행사는 산뜻한 헤어스타일만큼이나 너드들에게 본질상 낯설다.--- p.12 「서문」
칸트와 그린의 가장 두드러진 성격 특성은 지나친 규칙성과 극도의 정확성이었다. 칸트는 1766년부터 그린의 집에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는데, 늘 정확히 저녁 7시 땡 하면 헤어지는 바람에 쾨니히스베르그 주민들은 시계가 7시 3분을 가리키는데 칸트가 그린의 집에서 나오면 그날 칸트가 예외적으로 늦게 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시계를 다시 맞춰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정확성 면에서 그린은 칸트를 능가하여 칸트가 보고 배울 정도였다. 언젠가 칸트와 그린은 저녁 8시에 만나 출발하기로 약속을 했고, 그린은 언제나 그랬듯이 약속 시간보다 15분 일찍 약속 장소에 나타나 칸트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약속 시간 2분 전에 정확히 산책 지팡이를 들고는 1분 전에 마차에 올라 정확히 8시에 마차를 출발시켰다. 예외적으로 2분 늦은 칸트를 태우지 않고 말이었다. 마차가 저 멀리 가고 있을 때 칸트가 헐레벌떡 나타나 격렬한 손짓으로 좀 멈춰달라는 의사표시를 했다. 그러나 그린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당황한 친구를 세워둔 채 계속 전진했다. 그린이 그렇게 한 것은 칸트가 늦은 것에 대한 앙갚음이나 본보기 차원에서가 아니었다. 일정을 정확히 지키는 것이 그린의 원칙이었기 때문이었다. 칸트는 이런 원칙을 충분히 이해했다. 도덕적인 행동에 대한 타협을 일절 거부하는 정언 명령이 바로 그의 철학의 기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마차 사건’은 그린과 칸트의 우정에 전혀 금이 가게 할 수 없었다.--- pp.108-109 「임마누엘 칸트 : 프로이센 너드와 정언 명령」
코딱지를 파는 것은 밥맛없는 일이다. 확실하다. 그럼에도 학창 시절 누군가가 코딱지를 파는 애로 각인되어 있다면 그 애는 대부분은 노력파이거나 약자거나 게으름뱅이, 즉 너드일 것이다. 로니와 드와이트처럼 말이다. (중략) 로니는 기타를 연주했고, 드와이트를 색소폰을 연주했다. 나중에 또 한 사람이 합류하였으니 신들린 기타리스트이자, 타악기 주자이자, 작고가인 프랭크 자파였다. 그러나 프랭크 자파는 갓 결혼한 상태로 낮에는 우편엽서와 카드를 제작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그리하여 로니와 드와이트는 프랭크 자파가 빠진 상태로 로니의 집에 앉아 있는 일이 잦았고, 그럴 때면 계속 포커를 치고 악기를 연주하였다. 그리고 코딱지를 팠다! 그러나 청소년 비행심리가 발동하여 어느 순간부터 코 탐험에서 얻은 발굴물을 로니 방 유리창에 붙여 놓기 시작했다. 몇 달 동안이나! 드와이트는 이를 ‘초록 창문 프로젝트’라 칭했다. (중략) 코딱지 파기 놀이 말고 질그릇 단지에 오줌 누기도 소재가 되었다. 몇 미터 떨어진 화장실에 가고자 연습하던 방을 떠나는 시간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겨울에는 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줌이 얼어붙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봄이 오면 참을 수 없는 악취가 풍겼다.--- pp.187-188 「프랭크 자파 : 쿠카몽가에서의 섹스 놀이」
그러나 학창시절에 경험했던 왕따 같은 것은 대학에서는 없었다. 대학에서 앤디 워홀은 독특한 외모에, 그림에 사로잡힌 사교성 적은 이방인으로 대접받았다. 미대라면 그런 캐릭터가 드물지 않으니까 말이다. 물론 왕왕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는 앤디의 감정적인 차가움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친구 프레디 하르코가 LSD에 중독되어 고층빌딩의 창문에서 뛰어내리자 앤디는 “왜 진작 말해주지 않았지? 그럼녀 비디오 카메라로 찍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 했다. 또한 사진가 딕 러틀리지가 자신의 자살 의도를 발설하자, 앤디는 자살후보자에게 뛰어내릴 때 손목시계가 고장이 날 거라며 미리 손목시계를 자신에게 선물해 주고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러틀리지는 손목에서 시계를 끌러서 워홀에게 던졌고, 워홀은 그 귀중한 시계를 받아 죽을 때까지 보관하였다.--- pp.212-213 「앤디 워홀 : 파티에서 고독하게」
많은 사람들은 빌 게이츠가 사임한 뒤 무엇을 할지 궁금해했다. 게이츠는 전에는 회사에 80퍼센트의 신경을, 아내 밀린다와 더불어 개발 프로젝트를 돕는 재단에 20퍼센트의 신경을 썼다면 “이제부터는 정확히 거꾸로 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설명에 대한 보완 자료로 게이츠는 동영상을 하나 공개했다. 정확히 말하면 빌 게이츠의 ‘구직 동영상’이다. 동영상에는 마지막으로 회사에 출근한 빌 게이츠가 할 일 없이 회장 의자에 앉아 의자를 빙빙 돌려대는 모습, 액션 피규어를 가지고 노는 모습, 피트니스 코치에게서 무겁지 않은 역기로 훈련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는 모습이 먼저 보인다. 이어 빌 게이츠는 뮤직 스튜디오로 가서 랩을 연습하고, 래퍼인 제이-Z는 그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누가 좀 말려봐. 끔찍하다고.” 그러나 게이츠는 기죽지 않고, 그룹 U2의 보컬 보노를 데려와 그에게 기타를 연주해보인다. 하지만 보노 역시 안으로는 “제길!”이라는 말을 삼키고, 공식적으로는 “미안해요, 빌. 안되겠어요.”라고 한다. 이번엔 영화계로 가는데 조지 클루니도 구직에 나선 전직 CEO를 〈Ocean's Fourteen〉에 끼워주길 거부한다. 그 다음은 정치계? 그러나 버락 오바마는 빌의 전화에 “누구? 빌 클린턴?”하고 되묻는다. 게이츠는 이 동영상에서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든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주목받는 삶에 대한 양가감정을 보여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IT 거장 빌 게이츠는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너드인 것이다.
--- pp.248-249 「빌 게이츠 : 글로벌 플레이어로서의 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