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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로와 미로의 키스

나는 미로와 미로의 키스

시인의일요일시집-009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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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258g | 140*200*20mm
ISBN13 9791197509094
ISBN10 119750909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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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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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문이 열리고 세상의 고요를 휘둘러보는 폭력 앞에서
나는 자라목처럼 이미 어둠을 반쯤 끌어안고 있는 호흡
과호흡 같은 응원가가 거꾸로 흐르는 피를 질척이고 있는 저녁

나는 잃어버린 것이 있는 병사
나는 잊어버리는 것이 불가능한 병사
나는 그날의 기억으로부터 제대가 안 되는 생존 병사
닫힌 문이 겹겹으로 닫히고 자물쇠가 채워지고 아무도 안 와
나는 과녁이 정확하게 보이는 사냥터
나는 박힌 총알이 발기될 때까지 만지작거리는 사내아이
나는 스스로 치욕을 덮었던 공포의 짐승 털, 면도날로 밀고 온 결심들

경첩을 부수며 유일하게 벌컥 밖으로 꺾이고 싶은 문 하나가 있었고 문 하나가 사라졌고 문 하나가 박살나자 수백수천 개의 문이 한꺼번에 그 희망이라는 구멍을 향하여 납물처럼 쏟아져 버리는 저녁 이젠 저녁이 아닌 핏물의 이름 쓰기
---「그가 먼저 열고 갔으니 나는 문 밖으로」중에서

이 차갑고 어두운 우주에서 자기 자신을 손톱만큼도 생각 안 할 때
우리는 따뜻해질까
숨을 헐떡이며 깨어날까
절망으로부터 추스르지 못한 뜨거운 자세와
희망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오늘의 작디작은 구체를
나는 해명할 방법이 없다

이미 수많은 이별과 폭풍을 강제로 실험당한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일들이 그렇게 힘이 들었냐고 되물을 수 있을까
우리는 폭풍 앞에 서서 우리와 똑같이 두 팔을 허우적거리는 그가 신비롭고
안타깝다
그는 이별과 폭풍의 실험실 안에서 인체일 뿐
얼마간 사람인가

심폐소생술을 일부러 멈춘 우리들에 대하여
그는 어떤 형벌을 준비할 것인가 사랑을 갈라 버린
그가 맞은 따귀는 얼마만큼 억울한 폭력인가

페이지를 넘기기 싫어, 그의 책을 불태워 버렸다
---「떠나고 싶다고 말하고 떠나지 못하는 폭력에 대해 우리는 할 말이 없다」중에서

모든 질문이 구부러진 바늘을 달고 있는 이유는
빛나는 법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바늘이 날아온 모든 시공간이 기어코 구부러져 있다
부러질래, 구부러질래?
때리면서 다가오는 것들은 꼭 내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너는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눈물 흘려서 늘 문제야
왜 그렇게 예민하게 피어났어? 밟아 줄까?
---「나는 닳고 닳은 질문-저 불빛은 그날의 불빛을 뒤쫓아갈까」중에서

한 사람의 슬픔은 절대로 지구 전체의 슬픔이 될 수 없다
발전소 하나가 지구 전체를 밝힐 수 없듯이
혼자서 울고 있는 학생이 있다

울고 있는 한 가족이 있다
지구 전체의 슬픔을 유가족의 어깨에 짐 지우지 않듯이
유가족의 슬픔을 지구 전체가 나누어 가질 수 없다

어제의 뉴스는 오늘의 뉴스보다 뜨겁지 않고
오늘의 뉴스는 내일의 뉴스보다 차가운 것

얼마나 많은 뜨거운 것들이 우리의 앞에서 기다리고 있나
얼마나 많은 차가운 것들이 우리의 뒤에서 사라지고 있나
---「어른들은 좋은 말만 하는 선한 악마예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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