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악 가문의 가훈은 말 그대로 ‘지고 밑져라’이다. 실제로, 이용태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로부터 “남에게는 지고 밑져라. 남에게 밑져도 잘해주어라.”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고 한다. 남과 함께 일할 때는 언제나 남을 이기려 하지 말고 밑지고 져주며, 자기에게 다소 해롭게 한 사람이라도 잘해주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베푼 것보다 몇 배나 더 큰 얻음이 저절로 생기게 마련이라는 가르침이었다.
이용태는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고한다.
“어쩌다 손님 중에 좀 어수룩한 사람이 집에 왔다 가면 할아버지는 ‘두고 봐라. 저런 사람이 나중에 복도 받고 자손이 잘된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똑똑한 척, 있는 척하는 사람이 다녀가면 ‘자기 재물은 한 푼도 손해보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는 저런 사람은 주위 사람들이 싫어하고 자기 자손들에게도 좋지 않다.’라고 하셨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먼저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흔히 맺는 동료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먼저 지는 게 이기는 것일 수도 있는데, 절대 먼저 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둘 다 손해를 보거나 파국을 초래하기도 하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요즘 같이 치열한 약육강식 시대에 과연 이타적 인물로 키우는 게 맞을까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말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우리는 누구나 결국 함께 더불어 살지 못하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2강. 그릇Caliber/ 지고, 밑질 수 있는 배포를 가졌는가」
“10살 때쯤 애리조나에 살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자고 있던 나를 깨운 아버지는 잠옷 차림이었던 나를 황급히 차에 태웠다.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꾸만 생각해보았다. 아버지는 커피가 담긴 보온병과 담요를 챙겼고, 30분 정도 운전했다. 마침내 아버지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그곳에는 수백 명이 되는 사람들이 길가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빈자리를 찾아서 담요를 깔고 나와 함께 누웠다. 아버지가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에는 거대한 유성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수만 점의 빛이 하늘을 십자형으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있을 것이라는 예견은 앞서 기상청에서 보고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놀라게 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놀라움 이상으로 공포에 떨었다. 동시에 이런 현상을 유발하는 근원에 대해 무척 궁금했다.”
스필버그에게 이 경험은 가히 우주적인 경험이었다. 이후 그의 삶에 상상력의 원천이 돼주었고, 영화감독으로 성공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스필버그에게 이 기억은 너무도 생생하게 남았고 18세 때 영화 ‘불꽃Firelight’을 만들면서 영화감독 인생의 서막을 열게 된다. 그때 스필버그는 고작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3강. 상상력Imagination/ 아버지는 미지의 세계로 이끄는 ‘별똥별’이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은 아버지의 열정적인 ‘삶의 철학’이다. 정치적 운동이나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 자기주장이 분명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는 후에 아버지가 실패자가 되더라도 정치가, 인도주의자, 개혁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장애나 외모, 빈약, 비만 등으로 고민한 경우에는 자신의 장애를 보완하기 위해 더 강력한 열망을 갖기도 한다. 아버지가 자녀의 ‘인생 기획자’로서의 역할을 하며 조언자이자 멘토, 스승의 역할을 다할 수 있지만 아버지의 삶 그 자체가 자녀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아버지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자녀에게 인생의 스승 역할을 할 수 있다. ---「6강. 역할Role/ ‘나쁜 아버지’라도 아버지의 역할은 포기하지 마라」
“외할아버지의 방들은 비밀로 둘러싸인 제국이었다. 예전에는 춤을 추는 홀이었던 그곳에 외할아버지는 도서관을 만들었다. 거친 전나무로 된 책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제본된 잡지들이 길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가죽 표지 위에 약한 금빛 광채를 발하는 고서적들도 있었다. 이 공간에서는 아이들이 노는 것이 허락되어 있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헤르만 헤세Herman Hesse는 자신을 키운 것은 외할아버지의 서재였다고 회고한다. 헤세의 외할아버지인 헤르만 군테르트 박사는 경건주의파 신학자로 괴테 문학에 심취해 젊은 시절에는 시를 즐겨 썼다. 경건주의파 선교사이자 의사, 교사로 인도에서 23년을 살면서 인도 구석구석을 여행했다. 외할아버지 군데르트 박사의 영향으로 헤세는 일찍부터 동양의 세계와 자주 접하게 되었는데, 그 ‘접선’ 장소가 다름 아닌 외할아버지의 서재였다. 헤세는 “나는 소년시절 에 나의 외할아버지의 넓은 서재에서 인도에 관해 쓰인 책들과 불교에 관한 서적을 보았으며 또 읽었다.”며 외할아버지의 도서관에서의 추억을 회고한다. 헤세는 외할아버지의 도서관에서 노랗게 변한 판본들인 ≪로빈슨 크루소≫와 ≪걸리버 여행기≫를 발견했고, 옛 선원들의 이야기들이나 탐험가들의 이야기들과 아울러 장 파울, 월터 스콧, 오노레 드 발자크, 빅토르 위고 같은 작가들이 쓴 책들도 찾아내 읽었다. 헤세를 지적 세계로 인도하고 대가로 만든 시작은 바로 집안의 서재였던 것이다. ---「7강. 책 읽기Reading/ 한 평짜리라도 아버지의 서재를 가져라」
케인스는 경제학자로는 드물게 유려한 문체로 유명한데, 그 비결은 바로 일곱 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쓰기 시작한 편지 덕분이었다. 케인스 아버지는 케인스가 이튼스쿨에 들어가자 매주 한 번씩 자신에게 편지를 쓰게 했다. 아버지는 “공부가 진행되는 상황을 매주 내게 알려 주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아버지는 공부 방법, 시험 기술, 글쓰기 스타일, 일반적 품행에 관해 끊임없이 조언해주었다.
편지 쓰기는 그가 일곱 살 때부터 시작한 습관이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공부 방법, 시험 기술, 글쓰기 스타일, 일반적 품행에 관해 끊임없이 가르침을 받아야 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학업이나 교우 관계, 그리고 시험 성적 같은 것에 대해 아들 못지않게 소상히 파악할 수 있었다. 메이너드는 아버지에게 매주 한 번씩 편지를 썼고 이에 대한 회신을 받으면서 지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었다.
“너는 고전과목의 첫 두 주 동안의 석차에서 헤링엄과 베일리에 비해 어느 정도 뒤쳐졌는지 내게 말하지 않았다.”(1898년 2월 28일)
“에인저가 무엇인가 보여주려는 것 같다. 시험에서 그가 너를 이기게 해서는 안 된다.”(1898년 5월 12일) ---「8강. 소통Communication/ 백 마디 말보다 한 통의 편지를 써라」
“우는 사람과 함께 울고,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고, 환자 문병하기를 주저하지 말라. 살아 있는 동안 친구에게 친절을 다하라. 될 수 있는 한 손을 내밀어 원조하라.” 유대인의 고전 ≪벤시락의 지혜≫에 나오는 말이다. 유대인이 유랑민족으로서 최고의 성공한 민족이 된 배경에는 유대인끼리 서로 도와주고 먼저 한 손을 내밀어 원조해주는 미덕이 있었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유대인 상술의 전통이 된 ‘공공 마케팅’이 시작되었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라도 ‘선한 사업’을 앞세우고 가라는 것이다. 즉 “선한 마음을 가지면 재물은 쉽게 들어온다.”는 믿음이다. 이는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한 ‘상선약수上善若水’와 잇닿아 있다.
“진정한 선은 물과 같다.”는 뜻으로,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자신을 낮춰 아래로 흘러가는 물의 속성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10강. 공감Sympathy/ 가난한 친구들과 먼저 어울리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