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한때 자신에게 걸림돌이었던 예수 십자가 죽음을 자신의 신학 중심으로 삼았다. 십자가에 걸려 넘어진 바울은 십자가를 들고 우뚝 일어섰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께 속하며, 바울의 사도직은 하느님께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다마스쿠스 체험의 핵심이다. 다마스쿠스 체험이 바울 신학의 시작이고 바울 신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바울 신학의 모든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
*바울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뿐 아니라 역사의 예수도 주제로 삼았다. 바울은 추상적인 예수 역사가 아니라 구체적인 예수 역사를 바울 신학의 기초로 삼았다.
* 바울의 예수 운동은 가난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했다. 예수 운동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은 활발히 교류했다. 편지, 여행, 협조자, 경제적 도움, 손님을 친절히 맞이하는 문화 덕분에 공동체끼리 소통도 활발했다. 군인, 상인, 노예들은 도시에 있는 예수 운동 공동체를 찾아 쉽게 들어올 수 있었다. 예수 운동은 소수파 그룹이지만 세상을 향해 열려 있었다. 예수 운동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활기찬 빵나눔, 감동적인 성령 체험, 일치하는 문화, 평등 의식을 느끼고 누릴 수 있었다. 예수 운동의 개방성과 평등은 그리스로마 사람들에게 큰 매력을 선사했다. 예수 운동은 그렇게 시작했다.
*바울 편지들은 바울의 독창적인 작품이지만 또한 공동 작품이기도 하다. 바울 편지에 40여 명의 바울 협조자 이름이 나온다. 그들은 바울의 동지이기 전에 또한 선교사였다.
*예수 운동이 독자적인 종교 운동으로 커지는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바울이다. 바울이 그리스도교를 세운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리스도교를 세운 바로 그 사람은 없다. 바울은 예수 운동 초기 선교 역사에서 중요한 신학 업적과 공헌을 남겼지만, 바울이 그리스도교를 최초로 유일하게 세운 사람은 아니다. 역사의 예수를 실제로 따라다녔던 수많은 이름없는 남자와 여자들, 바울 전에 또는 바울 없이도 다마스쿠스,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로마에 예수 운동 공동체를 세운 사람들, 그리고 바울과 바울 동지들의 경험과 생각에 기초하여 예수 운동이 탄생했다.
*바울은 예수 운동 사람들을 유다인도 아니고 그리스인도 아닌 제3그룹으로 생각했다.(고린도전서 1:22, 10:32) 십자가는 유다인 세계와 그리스인 세계와 결정적으로 차이나는 예수 운동의 특징이다.(고린도전서 1:22)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서 3:28),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할례를 받았다든지 받지 않았다든지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만이 중요합니다.”(갈라디아서 5:6) 바울의 이 발언은 예수 운동의 독자적인 출발 선언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싶다.
*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은 복음 전파에 충실한 사람이다. 열광이 아니라 약함, 위험, 가난이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의 특징이라고 바울은 강조한다. “우리는 지금 이시간에도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으며 집 없이 떠돌아 다니고 있습니다.”(고린도전서 4:11) 그래서 바울은 자신있게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었다. “나를 본받으십시오μιμητα? μου γ?νεσθε.”(고린도전서
4:16b) 고린도 공동체와 바울은 예수를 죽음에서 일으키시는 하느님의 생명에 매혹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며 예수 재림을 기다리는 태도를 열광주의가 아니라 십자가의 낮아짐에서 찾았다.
* 바울은 강한 사람들 입장에 섰지만, 약한 사람들의 자유를 존중하고 배려했다. 강한 사람들과 약한 사람들은 예수 운동 공동체에서 평등하다.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공동체에서 평등하다.(고린도전서 10:32) 강한 사람들이나 약한 사람들이나 판단 기준은 이것이다. “먹든지 마시
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을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시오.”(고린도전서 10:31) 자유든, 성령의 은사든, 성례전(전례)이든, 성사든, 약한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으면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분열과 멸망으로 이끌고 만다.
*바울은 진정한 철학자는 자신의 가르침으로 돈을 받지는 않는다는 소크라테스 전통에 서 있었다. 자유와 종살이는 배척 관계에 있던 고대사회에서 바울은 공동체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을 권리를 사양했을 뿐만 아니라 복음 전파를 위해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린도전서 9:19)
* 바울이라는 깨진 질그릇에, 인간이라는 깨진 그릇에, 하느님의 보화가 담겨 있다. 하느님의 힘이 바울 안에서 작용하기 때문에, 바울은 어떤 고난에서도 구출될 것이다.(고린도후서 4:8) 바울은 복음 전파뿐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도 언제나 예수의 죽음을 자신의 몸에 새기고 살았다.(고린도후서 4:10b-12) 전해지는 메시지의 신뢰도는 전하는 사람의 삶에 크게 좌우될 수 있다. 바울은 부활한 그리스도의 생명력에 참여했기 때문에 외적인 고난에서도 잘 견뎌낼 수 있었다. “우리는 지금 잠시 동안 가벼운 고난을 겪고 있지만 그것은 한량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입니다.”(고린도후서 4:17)
*자신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은혜와 능력이 드러나기 위해 바울은 강한 사도가 아니라 약한 사도가 되어야 했다.
*바울의 삶은 십자가 신학의 모범이다. 하느님의 힘은 고난과 죽음의 약함에서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십자가의 약함에서 하느님의 힘이 나타나듯이, 바울의 약함에서 바울의 힘이 나타난다. 복음에 대한 바울의 봉사는 예수의 고난을 닮았다. 예수 믿는 사람이 받는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라는 사실과 모순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는 것은 예수 부활뿐 아니라 예수의 죽음에도 참여하는 길이다.
*바울과 바울 신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울의 편지뿐 아니라 1세기 예수 운동 역사를 전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