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아내에게 가져야 할 마음가짐 가운데 첫 번째와 두 번째 항목이 흥미롭습니다. 존중하라. 경멸하지 말라. 즉 하인 다루듯 하대하지 말며, 품위 있고 아름다운 호칭으로 아내를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내는 아무리 값비싼 장식품으로 제 몸을 치장해도 부엌을 장악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에 집안 모든 일의 실제 권한을 아내에게 맡겨야 하는 것도 남편이 지켜야 할 사항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남편의 이런 존중과 배려에 힘입어 가정 일을 능숙하게 잘 처리하고, 일가친척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서 모이게 하며, 남편이 벌어온 재산을 잘 지키는 것이 아내의 의무라고 말합니다.---여섯 방향으로 읽는 인간관계
고용된 사람의 능력에 맞게 일을 주고 적절한 임금과 식사를 줘야 하며, 질병과 관련해서는 고용인이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분히 보장을 해주고, 일하는 사이에 충분히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고용주의 의무입니다. 돈벌이, 밥벌이 차원을 넘어서서 능력에 맞게 일을 배당하고, 충분히 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항목이 눈에 띕니다. 근로기준법에서 말하는 연가, 병가, 특별 휴가 등은 2,600여 년 전 붓다께서도 권장했던 항목임을 알 수 있습니다.---여섯 방향으로 읽는 인간관계
게으르지 말아야 하는 분야의 순서를 보면, 재산을 모으고 지키는데 게으르지 말라는 말이 첫 번째입니다. 붓다께서는 “재산? 그런 거 집착하지도 말고, 모으려고 하지도 마!”라고 말씀하셨을 것 같지만, 정작 재가자들에게 주는 가르침에는 부지런히 노력해서 돈을 모으고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푼 두 푼 성실하게 모으고, 그렇게 개미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이루어가는 이 사바세계가 그리 무의미한 것만은 아님을 경전을 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돈은 나쁜 것일까?
『앙굿따라 니까야』는 재산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일러주는 몇 안 되는 경전 중 하나입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손으로 땀 흘려 번 돈을 자기 재산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재산을 다섯 등분으로 나누는데, 첫째, 자신과 직계가족이 행복하게 사는 데에 씁니다. 둘째, 친구와 동료들에게 씁니다. 셋째, 재난을 대비하는 데에 씁니다. 이것은 마치 세금을 내거나 보험을 들거나 하는 데에 쓰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넷째, 널리 보시합니다. 이것은 먼 일가친척이나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 그리고 조상들에게 베푸는 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수행자에게 보시를 합니다. 이것은 보시하는 자에게 행복한 결과를 안겨주니 장차 천상에 태어나는 과보를 불러온다고 합니다.---돈은 나쁜 것일까?
사랑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falling in love’는 곤란하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사랑에 내 자신을 온통 빼앗겨버린 뒤에 그 사랑이 조금이라도 식거나 달라지면 그땐 미친 듯이 분노와 박탈감에 사로잡힐 것이고, 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딱 그만큼 아니 그 곱절에 해당하는 지독한 번민에 사로잡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사랑은 그러지 않을 거라고요?
천만에요. ‘사랑은 변하는 거야’라는 진리를 설마 잊고 계신 건 아니겠지요? 『맛지마 니까야』(21번 「톱의 비유 경」)에서는 변하기 마련인데 그렇게 내버려둘 수 없다며 움켜잡으려고 하는 사람을 가리켜, 대지를 파헤쳐 없애버리겠다고 하는 사람, 갠지스 강을 횃불로 죄다 말려버리겠다고 덤벼드는 사람과 다르지 않으니 결국 스스로를 피곤하게 할 뿐이라고 말합니다.---사랑이라는 아이러니
어쨌거나 붓다께서는 보잘 것 없는 남자와 보잘 것 없는 여자, 가치 있는 남자와 보잘 것 없는 여자, 보잘 것 없는 남자와 가치 있는 여자, 가치 있는 남자와 가치 있는 여자 등과 같이 딱 네 종류의 부부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맞는 말 같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사람이 가치 있느냐, 없느냐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오계를 잘 지키고, 열 가지 선업을 잘 닦느냐 그렇지 않느냐’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오계를 잘 지키고 인색하지 않고 수행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부부, 이런 부부야말로 최상의 찰떡궁합이라는 말입니다.---사랑이라는 아이러니
남과 비교해서 자신이 더 낫다고 우쭐대는 마음이 서서히 세상을 지배하게 되자 맛있는 흙이 사라집니다. 이건 좀 생각해볼 만합니다. 맛있는 흙을 덜 먹은 자가 더 먹은 자를 보고 ‘보기 흉하다. 그래도 덜 먹은 내가 더 낫다’라고 생각했고, 그러자 그 맛있는 흙이 사라졌다는 것은 대체 뭘 뜻할까요? 바로 탐욕스러운 자가 자꾸 먹어서, 그래서 다 먹어 치운 바람에 맛있는 흙이 사라진 게 아니라 덜 먹은 자의 교만으로 인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세상의 꼴을 살피다
남자의 갈비뼈를 재료로 해서 멋지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동시에 생겨났다는 것이 니까야의 견해입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고, 누가 우선이랄 것도 없습니다. 남자는 하늘이요, 여자는 땅인 것도 아닙니다. 아담의 갈비뼈가 이브인 것도 아닙니다(게다가 경전에는 남녀 순서가 아니라 여남의 순서로 적혀 있습니다). 중생의 욕망으로 거친 음식을 먹다 보니 몸이 거칠고 딱딱해졌고, 그렇게 더 지내오다 보니 암수의 구별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차이가 생겨났을 뿐, 차별의 뜻이 담겨 있지는 않습니다.---세상의 꼴을 살피다
게으름이 저장을 부르고, 저장은 경쟁을 불렀으며, 경쟁은 결국 자연의 풍요로움을 죽여버리고 말았다는 것이 이 경의 요점입니다. 어디에나 먹을 것이 넘쳤건만 이제는 무리지어 자라나게 되었고, 한번 베어버리면 두 번 다시 저절로 자라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다른 이의 욕망을 주시하면서 자기 먹을 몫이라도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로 금을 긋고 ‘내 땅’이라고 주장하게 된 것이지요.---세상의 꼴을 살피다
자기 것만 지키면서 살 수 없었던 사람들은 누군가가 그 일을 대신해주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인물 좋고 괜찮아 보이는 사람 하나를 선정한 것이지요. 어쩌면 목소리도 좋았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잘못한 사람을 불러서 꾸짖으려면 뭔가 강한 느낌을 줘야 하니까요. 이처럼 ‘왕’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놓은 자리입니다. 바로 여기서 ‘백성’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왕의 자식이 아닌 왕의 주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왕에게 사람들이 자신들의 수확물 중 일부를 걷어서 수고비를 주겠다고 제안했고, 그것을 수락했기 때문에 왕이 된 것이니까요. 그는 이제 더 이상 남들처럼 농사를 짓거나 노동하지 않았고, 오직 사람들 사이를 살피고 그른 행위가 눈에 띄었을 때 그걸 처리하는 일에만 종사하게 되었습니다.---세상의 꼴을 살피다
붓다는 이처럼 사람이 욕구와 욕망을 품고 이루려고 애쓰는 현실을 그대로 수긍하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전륜성왕처럼 되는 것을 나쁘다고 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다만, 항상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하는데, 첫째 세속의 행복을 추구하려면 착한 일(선업)을 해야 하고, 둘째 세속의 행복에는 언제나 위험과 재앙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붓다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