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도저히 가 닿을 수 없는 거창한 경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웅장한 미술관에 걸려 있거나 화려한 극장에서 공연되는 오페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작품들은 예술가의 눈으로 해석한 사람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티치아노의 〈바쿠스와 아리아드네〉에서 맞부딪치는 두 남녀의 시선을 통해 처음으로 사랑을 확인했던 불꽃 같은 순간을 기억해 낼 수 있고 호퍼가 그린 〈뉴욕 영화관〉의 안내원을 보면서 매일의 노동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오르페오가 부르는 〈나의 유리디체를 잃었네〉를 듣는 동안 실연의 쓰라린 고통을 지금의 일처럼 되살리며 눈물 흘리게 되는가 하면, 사전트의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의 앳된 소녀들을 통해 유리알처럼 맑았던 유년의 나날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먼 옛날에 창작된 위대한 작품이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어 우리의 인생과 이어져 있다는 특별하고도 내밀한 느낌을 맛보게 된다. 『예술, 인간을 말하다』는 예술 작품들에 대한 해설이나 감상 이전에 우리 삶의 빛나는 순간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그 순간들에서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쓴 책이다.
---「들어가며」중에서
툴루즈-로트레크가 머물던 몽마르트르는 아름다웠지만 피카소는 프랑스 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몇 달 동안 미술관을 미친 듯 순례하다 고향으로 돌아간 피카소는 바로 다시 짐을 챙겨 파리로 되돌아갔다. 이해 겨울 실연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한 친구 카사게마스가 우발적인 권총 자살로 목숨을 잃었다. 친구의 자살을 계기로 젊은 화가의 좌절된 꿈과 불안, 고민, 가난, 순수 등을 상징한 피카소의 청색 시대가 시작되었다. 젊은 피카소는 낯선 땅에서 단 한 사람의 친구를 잃고 절망에 빠져 어쩔 줄을 몰랐다. 이 시기에 그려진 작품에는 가난한 악사, 노인, 맹인, 거리의 여자 등이 많이 등장한다.
---「젊음: 축복인가, 고통인가?」중에서
사실 중세 시대부터 여성에 대한 가치관은 이율배반적인 측면이 있었다.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보면 최초의 여성인 이브는 남자를 ‘지옥으로 이끄는 문’이었다. 그러나 같은 여성인 성모 마리아는 구원의 표상이자 천상의 여인 이다. 교회는 여성에 대한 야누스적인 시선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아담의 아내 이브와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 이 둘 중에서 누가 여성의 대표인가? 여성은 관점에 따라서 얼마든지 성녀로 또 동시에 마녀로 변모할 수 있었다.
---「마녀와 팜 파탈: 진정 나쁜 여자는 누구인가」중에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대표작인 〈우유를 따르는 하녀〉에서 그림 속 처녀는 파란 앞치마를 두르고 노란색 겉옷을 입었다. 앞치마는 가장 비싼 안료인 청금석(라피스 라줄리)에서 나온 짙은 푸른색으로 선명하게 칠해져 있다. 이 푸른색은 성모 마리아의 망토를 칠하는 데 많이 사용된, 고귀함과 순결을 의미하는 색이다. 페르메이르는 하녀의 푸른 앞치마를 통해 일상의 노동이 그만큼 신성한 행위라는 믿음을 은연중에 보여 준다. 두 손으로 우유 항아리를 잡고 시선을 내리깐 채 우유를 따르는 하녀의 모습에는 기도하는 듯한 경건함이 깃들어 있다.
---「노동과 휴가: 예술 속 삶의 풍경」중에서
문화는 부의 이동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1800년대 후반, 미국은 신흥 산업 국가로 성장하며 유럽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입하기 시작했다.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는 뉴욕에 카네기홀을 개관한 후, 개관 기념 음악회를 위해 러시아 최고의 작곡가 차이콥스키1840-1893)를 초청했다. 1891년 4월 뉴욕에 온 차이콥스키는 두 달여 간 뉴욕,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등에 머물며 네 번의 카네기홀 연주를 지휘하고 연주료로 2500달러, 오늘날의 금액으로 환산하면 8천만 원을 받았다. 차이콥스키는 처음 가 본 미국에서 “사람들은 친절하고 관대하며 솔직하다. 특히 뉴요커들은 파리나 다른 유럽 어느 도시 사람들보다 친절하다. 내가 조금 더 젊어서 여기 왔다면 진지하게 이곳에 머물 것을 고려했을 텐데”라는 편지를 써 보냈다.
---「예술과 경제: 어떤 작품이 비싸게 팔리는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