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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 발행일 | 2022년 10월 21일 |
|---|---|
| 쪽수, 무게, 크기 | 200쪽 | 224g | 130*210*20mm |
| ISBN13 | 9791155311363 |
| ISBN10 | 1155311361 |
심이경 저
|
이매진
|
2022년 10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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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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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성폭력 피해자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리고 싶었다. 인생의 잔인함에 속수무책 당하기만 하는 피해자로 남지 않고, 끈질기게 탈출구를 찾아 회복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 나는 영민하지도 못하고 부유하지도 않다. 그런 나 같은 사람이 치유를 경험했다면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줄 수 있지 않을까.
--- p.5
가난 속에서 모든 자원은 오빠에게 집중됐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청소며 설거지며 심부름을 했다. 세탁기가 없어서 손빨래를 했는데, 오빠는 모든 집안일에서 늘 예외였다. 새 운동화, 새 책, 학원 등 드물게 구경할 수 있는 새 물건이나 조그만 기회를 차지하는 주인은 늘 오빠였다. 나는 물려받거나 얻어 입거나 빌려 봤다. 오빠가 고등학생이 될 무렵에는 집주인에게 허락을 받고 무허가로 오빠 방을 만들었다. 열심히 공부하라면서 책상과 의자도 새로 사줬다. 오빠도 나도 우리 집에서 누가 더 중요한 사람으로 대우받고 누가 가장 홀대받는지 무의식중에 알고 있었다.
--- p.22
사건 전까지 내가 이해하던 세상은 이제 무너지고 없었다. 삶이 절벽에서 떨어진 듯 사건 이전의 나하고 단절된 느낌이 들었다. 원한 적도 없는데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건너왔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어디에서도 안전함을 느낄 수 없는 불신의 땅으로, 상식과 믿음이 산산조각 난 불안한 시간으로 말이다. 성폭력은 정신적 살해다. 딱히 화목한 가정이 아니더라도 내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가족들은 내 편을 들어주고 나를 보호해주리라고 믿기 마련이다. 가족에게 살해되지는 않으리라는 당연한 믿음처럼 말이다. 가족 안에서 가해와 피해가 일어나는 친족 성폭력은 이런 당연한 믿음을 산산이 부서트린다.
--- p.54
괜찮은 척하기, 몰두할 대상 찾기,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기, 잊으려 노력하기 등 내 상처를 외면하고 도망치는 일들은 20년 넘게 다 해봤다. 그런 방법은 소용이 없었다. 남은 일은 정면으로 마주하기뿐이었다. 내 인생은 내가 구원해야 했다. 감히 치열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만큼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치유에 집중했다.
--- p.69
내가 통념에 갇혀 가부장적 시선으로 사고할 때는 여성주의 시각으로 교정해주지만 정답을 주입하려 하지는 않았다. 조급해하지 않고, 내게 문제를 해결할 힘이 충분히 있다고 믿어주면서,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책을 발견하도록 도왔다. 무엇보다 여성주의 상담을 하면서 이런 과정 자체가 강렬한 체험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안전한 공간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나를 억압하던 감정들을 충분히 꺼내 놓았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내 언어로 상처의 본질을 더 정확히 인식할 수 있었다. 동시에 내 고통이 이해받고 공감받을 수 있다는 체험을 온몸으로 반복했다. 내 경험을 의심 없이 믿어주고, 내 회복을 지지하고, 같이 분노하고, 나를 더 알려는 사람이 내 앞에 있다는 경험 자체가 치유 과정이었다.
--- pp.74~75
꿈 작업이란 꿈을 소재로 자기 분석을 하는 일이다. 꿈을 해석하는 공부를 하면서 습관처럼 사건이 플래시백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 꿈은 무의식이 내게 보내는 연애편지라고 한다. 모든 꿈은 내 건강과 온전함을 지키는 데 도움을 주려고 온다. ‘오늘은 꿈이 내게 어떤 편지를 보낼까’ 하는 기대감에 잠들다 보니 한결 편안해졌다. 그렇게 울지 않고 잠드는 하루하루가 늘어갔다. 어떤 꿈을 꿀지 일부러 설레는 상상을 하려고 노력했다.
--- p.111
계속해서 피해를 당한 이유를 찾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이미 정서적 학대와 신체적 학대, 친족 성폭력, 가난을 관통하면서 내면의 건강함을 잃은 지 오래된 상태였다. 나도 자기 방어에 최선을 다하는데도 피해를 당한 완벽한 피해자이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나는 철저히 무방비 상태였다.
--- p.176
오늘 저녁 뉴스는 또 한 명의 피해자가 스스로 세상을 등진 소식을 전했다. 더는 피해자가 죽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기필코 살아서 증언하겠다. 소녀들이 더 안전한 세상을 위해 내 목소리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찾아가겠다. 분노의 힘을 이용해 이 글을 끝내 완성하겠다. 가해자의 행동을 낱낱이 기록하고, 더 많은 사람을 피해자 편으로 만들겠다. 글쓰기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우아한 복수다.
--- p.5
가난 속에서 모든 자원은 오빠에게 집중됐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청소며 설거지며 심부름을 했다. 세탁기가 없어서 손빨래를 했는데, 오빠는 모든 집안일에서 늘 예외였다. 새 운동화, 새 책, 학원 등 드물게 구경할 수 있는 새 물건이나 조그만 기회를 차지하는 주인은 늘 오빠였다. 나는 물려받거나 얻어 입거나 빌려 봤다. 오빠가 고등학생이 될 무렵에는 집주인에게 허락을 받고 무허가로 오빠 방을 만들었다. 열심히 공부하라면서 책상과 의자도 새로 사줬다. 오빠도 나도 우리 집에서 누가 더 중요한 사람으로 대우받고 누가 가장 홀대받는지 무의식중에 알고 있었다.
--- p.22
사건 전까지 내가 이해하던 세상은 이제 무너지고 없었다. 삶이 절벽에서 떨어진 듯 사건 이전의 나하고 단절된 느낌이 들었다. 원한 적도 없는데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건너왔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어디에서도 안전함을 느낄 수 없는 불신의 땅으로, 상식과 믿음이 산산조각 난 불안한 시간으로 말이다. 성폭력은 정신적 살해다. 딱히 화목한 가정이 아니더라도 내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가족들은 내 편을 들어주고 나를 보호해주리라고 믿기 마련이다. 가족에게 살해되지는 않으리라는 당연한 믿음처럼 말이다. 가족 안에서 가해와 피해가 일어나는 친족 성폭력은 이런 당연한 믿음을 산산이 부서트린다.
--- p.54
괜찮은 척하기, 몰두할 대상 찾기,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기, 잊으려 노력하기 등 내 상처를 외면하고 도망치는 일들은 20년 넘게 다 해봤다. 그런 방법은 소용이 없었다. 남은 일은 정면으로 마주하기뿐이었다. 내 인생은 내가 구원해야 했다. 감히 치열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 만큼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치유에 집중했다.
--- p.69
내가 통념에 갇혀 가부장적 시선으로 사고할 때는 여성주의 시각으로 교정해주지만 정답을 주입하려 하지는 않았다. 조급해하지 않고, 내게 문제를 해결할 힘이 충분히 있다고 믿어주면서,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책을 발견하도록 도왔다. 무엇보다 여성주의 상담을 하면서 이런 과정 자체가 강렬한 체험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안전한 공간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나를 억압하던 감정들을 충분히 꺼내 놓았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내 언어로 상처의 본질을 더 정확히 인식할 수 있었다. 동시에 내 고통이 이해받고 공감받을 수 있다는 체험을 온몸으로 반복했다. 내 경험을 의심 없이 믿어주고, 내 회복을 지지하고, 같이 분노하고, 나를 더 알려는 사람이 내 앞에 있다는 경험 자체가 치유 과정이었다.
--- pp.74~75
꿈 작업이란 꿈을 소재로 자기 분석을 하는 일이다. 꿈을 해석하는 공부를 하면서 습관처럼 사건이 플래시백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 꿈은 무의식이 내게 보내는 연애편지라고 한다. 모든 꿈은 내 건강과 온전함을 지키는 데 도움을 주려고 온다. ‘오늘은 꿈이 내게 어떤 편지를 보낼까’ 하는 기대감에 잠들다 보니 한결 편안해졌다. 그렇게 울지 않고 잠드는 하루하루가 늘어갔다. 어떤 꿈을 꿀지 일부러 설레는 상상을 하려고 노력했다.
--- p.111
계속해서 피해를 당한 이유를 찾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이미 정서적 학대와 신체적 학대, 친족 성폭력, 가난을 관통하면서 내면의 건강함을 잃은 지 오래된 상태였다. 나도 자기 방어에 최선을 다하는데도 피해를 당한 완벽한 피해자이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나는 철저히 무방비 상태였다.
--- p.176
오늘 저녁 뉴스는 또 한 명의 피해자가 스스로 세상을 등진 소식을 전했다. 더는 피해자가 죽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기필코 살아서 증언하겠다. 소녀들이 더 안전한 세상을 위해 내 목소리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찾아가겠다. 분노의 힘을 이용해 이 글을 끝내 완성하겠다. 가해자의 행동을 낱낱이 기록하고, 더 많은 사람을 피해자 편으로 만들겠다. 글쓰기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우아한 복수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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