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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거래자의 첫사랑

기억거래자의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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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24쪽 | 332g | 128*188*30mm
ISBN13 9791163162803
ISBN10 1163162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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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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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주 가끔, 그가 심심할 때 하는 취미 생활이었다. 대면할 필요가 없으니 정체를 들킬 우려도 없고, 대가를 받고 하는 일도 아니니 문제도 없고. 그들은 그의 정체를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었다. 대부분은 그를 스토커나 심부름 업체의 직원 정도로 짐작했다. 그리고 곧 잊었다. 아주 가끔 떠오를 때면 참 신기한 일이었어, 하고 생각하는 게 다였다. 그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우스꽝스러운 일을 저지르고 싶을 때가 있었다. 자신이 가진 특별한 능력을 자유롭게 써보는 일. 규칙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도 굳이 손해일 것 없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 그에겐 그런 순간이 필요했다.

진짜 거래가 시작되면 누군가는 인생을 잃고, 그로 인해 또 누군가는 아파했으니까. 남자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의 눈동자가 햇빛을 받아 유독 투명한 빛을 냈다. 생각은 되도록 단순하게, 순간은 순간으로만 남길 것. 그것이 그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언제까지고 그렇게 살아갈 생각이었다. (중략) 그는 오늘도 불특정 다수의 사람 사이에서 누군가와 시선을 교환할 것이다. 시선을 교환한 이는 스스로 원한 어떤 기억을 잃을 것이고, 그는 그 대가로 상당한 금액의 돈을 받을 것이다. 그는 그런 순간 사람들의 동공이 어떤 모양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지한. 눈을 뜬 모든 시간 타인의 기억을 읽는, 언제나 기억이 뒤엉킨 채로 살아가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철부지 기억거래자다.
--- pp.12~13

“이사도 나 때문에 왔어?”
“절반 정도는.”
영선은 수면유도제를 들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수치스러운 상태였다. 두루뭉술한 말 같은 건 더는 통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해.”
그녀는 잔뜩 신경질이 나 있었고, 그는 지금이야말로 더 신경 써서 조심스럽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너 때문이 맞아.”
영선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설마 날 좋아하나?’
하지만 무려 13년 만이었다. 오랜만에 만나 설렐 수는 있지만 좋아하는 감정이 들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어릴 적 이 아파트에 살았으니, 오랜만에, 궁금해서 이 아파트에 들렀을 수도 있었다. 그러다 영선을 발견했고, 고민 끝에 하필 그 밤에 영선을 찾아온 걸 수도 있었다.
‘망상 금지.’
영선이 피어오르는 착각을 꾹 누르는 사이, 지한도 마찬가지로 혼자 골몰하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나을까?’
널 길에서 봤다고, 날 기억하고 있는 게 신기해서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우리가 아는 사이였더라고, 실은 너에 대한 기억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모든 걸 말한다면, 그녀는 이해할 수 있을까.
--- pp.100~101

“나는 기억을 읽어. 그래서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았어.”
이것은 당연하게도 자신을 믿을 수 없었을, 그러면서도 지금껏 따라주었던 그녀에게 꼭 해줘야 할 말이었다.
“뭘 궁금해해본 적도 별로 없고. 기억을 읽으면 대부분은 예상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좀 쉽지가 않아.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영선은 그제야 파킹브레이크에서 손을 뗐다. 표정을 보니 지한은 분명 진심이었다. 그녀는 선뜻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난생처음 듣는 소리기도 했고, 갑자기 진심을 말하는 그가 어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야. 그냥 괴로워만 했지. 이제부턴 노력할게.”
정말 기억을 읽는 사람이었다니. 그 사실에 놀라면서도 그녀는 처음으로 그에게 편안함을 느꼈다. 그러나 지한이 다음 말을 하는 순간, 그의 눈을 마주 보고 있던 영선은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을 통해 읽어. 기억을.”
--- pp.14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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