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인정하듯이, 기계는 갈수록 더 똑똑해지고, 점점 더 창의적으로 바뀌고 있다. 최첨단 인공지능과 머신 러닝 기술을 두루 갖 춘 로봇은 이제 거의 인간처럼 행동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완전히’가 아닌 ‘거의’라는 말이다. 이는 바로 이 책의 핵심이기도 하다. 저자 아서 I. 밀러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지고 답을 찾는다. 그런데 그 과정이 아주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기계가 풍부한 감성의 재즈를 작곡할 수 있을까? 컴퓨터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살바도르 달리보다 훨씬 주관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보다 중요한 것은, 기계가 만들어 내는 예술 작품들을 도대체 어떻게 평가해야 하고, 그럴 때 그 평가 기준은 어디에 둬야 하는가? 컴퓨터는 결국 우리 인간이 만들어 낸 예술 작품과는 다른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아니, 컴퓨터가 만들어 내는 예술 작품을 인간이 창조하는 예술 작품과 비교하는 게 옳은 것일까? 어느 단계가 AI 발달의 최종 단계일까? 우리 인간의 무수한 경험을 복제한 가상 버전으로 인간이 해야 할 지루하고 반복적인 작 이나 일을 대신 하게끔 하는 단계인가? 아니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단계로 발전하는 단계인가?
---「옮긴이의 글」중에서
나는 우리의 세계관을 획기적으로 바꾼 위대한 사상가와 창조자들에 주목하면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들은 비범한 힘을 갖고 있어서 대체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데, 그들의 그런 힘을 근면함으로만 돌릴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을 천재로 부를 수 있다. 비록 우리와는 절대 동등할 수 없지만, 그들이 일하는 방식을 조사함으로써 그들의 사고 과정으로부터 배우고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만약 매우 창의적인 사람들과 천재들의 공통점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 자신의 창의성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연구에 수십 년을 바쳤고, 차원 높은 창의성과 천재성의 특징을 찾아냈다. 중요한 질문은 컴퓨터도 이런 특성을 개발할 수 있는가, 아니면 복제 인간이 아닌 완전히 다르고 독립적인 지능 형태를 가진 컴퓨터가 고유의 사고방식을 개발하고 자율적으로 작동하고 기능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컴퓨터의 창의성과 가장 심층적 사고를 탐구하는 것으로, 컴퓨터의 사고가 우리의 사고와는 얼마나 비슷하고 다른지를 탐구하며, 컴퓨터의 “삶”에 대한 조사를 포함할 것이다. 이를 위해 나는 오늘날 컴퓨터가 만들어 내는 비범한 새로운 미술, 문학, 음악을 심도 있게 살필 것이다.
---「저자 서론」중에서
스티브 잡스는 잘 알려졌듯이 제록스 PARC에서 개발한 혁신적인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차용했다”. 잡스의 표현대로 “우리는 위대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에 늘 염치없는 태도를 취했다.” 그는 “좋은 예술가들은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들은 훔친다”라고 말한 피카소의 말을 즐겨 인용했다. 어쩌면 그는 피카소를 자신과 같은 해적으로 여겼을 것이다. 잡스는 제록스에 대해 “그들은 컴퓨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전혀 모르는 복사기 열광자였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잡스의 행동은 단순한 도둑질이 아니었다. 그는 인터페이스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고 애플은 초창기 개념을 엄청나게 향상시켰다.
--- p.70
같은 시기 미국의 벨 연구소에서는, 방 전체를 차지하던 거대한 IBM 7094가 복잡한 방정식의 수치 해법에 사용되고 있었다. 출력 번호는 도형기로 전송되었고, 도형기는 그 출력 번호를 그래프에 배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도형기가 오작동을 일으키며 무작위 선들을 그려 냈다. 이를 본 사용자는 컴퓨터가 “예술을 만들었다”라고 외치며 복도를 뛰어 내려갔다. 그곳에 있던 과학자 마이클 놀(Michael Noll, 1939~ )은 이를 “컴퓨터 예술”이라 불렀다. 그것은 우연히 만들어졌지만, 놀은 곧장 이것을 의도적으로 창조하는 일에 착수했다. 의회 도서관(Library of Congress)은 그의 창작물을 저작권으로 보호하려는 데 난색을 표했다. 그 창작물이 그들이 보기에는 단순한 수치 처리기인 컴퓨터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놀은 이 프로그램을 고안한 것은 사람이라고 답하자 담당자들은 마침내 누그러졌다. 뒷날 이것은 아펠과 하켄에게 4색 정리를 증명하기 위해 컴퓨터를 사용했다고 가한 비판과 유사했다. 어떻게 단순한 기계가 우리 인간처럼 창의적일 수 있을까?
--- p.115~116
2018년 10월, 역사상 최초로 뉴욕의 크리스티(Christie’s)가 AI, 구체적으로 말해 GAN이 만들어 낸 미술 작품을 경매에 올렸다. 〈에드몬드 드 벨라미의 초상화〉(Portrait of Edmond de Belamy)의 경매가는 7천 달러에서 1만 달러 정도의 가격에서 시작되었다. 마침내 이 작품은 익명의 전화 입찰자에게 43만 2500달러라는 깜짝 놀랄 가격에 팔렸다. 이 작품은 짙은 색 코트에 화이트칼라 차림을 한, 귀족인 듯한 어느 신사의 초상화였다. 그런데 이 작품은 관람자를 색다른 차원으로 보는 듯하고 이목구비도 흐릿하면서 신비롭다. 이 작품의 서명은 화가가 아닌 그림을 생산한 알고리즘의 시그니처 방정식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의 창작자는 오비어스(Obvious)라는 프랑스 단체이다. 작품 제작을 위해, 이 단체는 14세기와 20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위키아트 자료 1만 5000점에 달하는 고전적인 초상화를 GAN에 공급하고, 판별기를 속여서 마치 진짜 미술처럼 믿게 하는 초상화를 만들기 위해 생성기를 천천히 돌렸다. GAN이 적절히 고전 작품처럼 보이는 초상화가 만들어지는 어느 지점에서 제작 과정을 중단하고 11개의 완성작을 생산했다. 모두 가상의 벨라미(Belamy) 가문의 것이었다. 벨라미는 좋은 친구(bel ami)라는 말이다. 이는 GAN의 창시자인 이안 굿펠로에 대한 찬사로서 ‘good fellow’와 얼추 비슷한 말이다.
--- p.146~147
콜턴은 시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이 누가 시의 저자인지를 생각하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작가가 컴퓨터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특히 더 그러하다. 콜턴은 주장의 요점을 입증하기 위해 공연 하나를 개최했다. 이 공연에서 그는 자신의 출산 경험을 묘사하는 모린 스미스(Maureen K. Smith)의 시를 읽을 것이라고 청중에게 말했다. 몇 분 후 콜턴은 시 읽기를 멈추면서 “미안해요, 모린 스미스의 시가 아니예요. 이 시는 그녀의 출산을 목격한 모리스 스미스(Maurice K. Smith)의 시랍니다”라고 말했다. 청중은 믿을 수 없었다. 한 남자가 출산에 관한 시를 쓴다고? 조금 후 콜턴은 모리스가 소아성애자이고 감옥에서 이 시를 쓴 사실을 밝혔다. 이런 정도면 관객들의 분위기는 분명 어두웠을 것이다. 그 시에 등장하는 즐거운 말들이 불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중에 갑자기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사실, 이 시는 어느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쓰여진 것입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청중들의 침울한 분위기는 기계가 자신들의 감정을 갖고 놀 수 있다는 인식에 불신으로 뒤바뀌었다. 콜턴은 컴퓨터가 쓴 시라고 말하면서 “텍스트는 많은 가치를 잃었다”라고 지적한다. “우리는 이런 시들이 사람에 의해 창작되면 수상 단계에까지 이르지만, 컴퓨터에 의해 창작된다면 과연 실제 시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 p.438~439
케임브리지대학의 제임스 로버트 로이드(James Robert Lloyd), 알렉스 데이비스(Alex Davies), 데이비드 슈피겔하트(David Spiegelhalter, 1953~ )는 머신 러닝을 이용하여 성공적인 뮤지컬에 관한 예측 빅데이터를 분석했다. 1,696개의 뮤지컬과 946개의 시놉시스를 분석하고, 주요 특징을 추출하면서 여행, 포부, 사랑, 잃어버린 왕이라는 가장 인기 있는 네 가지 주제를 찾아냈다. 캐스팅 규모, 배경, 감정 구조도 한몫을 차지했고, 여주인공으로 하기로 결론지었다. 배경으로 삼기에 가장 인기 있는 시기는 1930년대와 1980년대의 유럽이었다. 죽음, 행복한 결말, 그리고 각종 춤도 필요했다. 그들은 또한 설문 조사 차원에서 52개의 대표적인 뮤지컬 쇼를 보고 각자의 반응을 컴퓨터 지원 시장 조사에 보고해 줄 것을 관객들에게 요청했다. 시청자는 2막 중간쯤에 해피엔딩과 긍정적인 감정의 정점을 갖는다는 것에 한 표를 던졌다. -중략- 한 달간의 리허설 후 무대에 쇼가 올랐다. [울타리 너머]는 2016년 2월 22일 런던의 예술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이 공연은 15회 공연으로 진행되었고, 3,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 왔다. 관객들에게 설문지 작성을 부탁한 결과, 긍정적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누구도 컴퓨터가 제작 시 특정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 p.445~451
기계가 언젠가는 세상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임을 우리는 인정했다. 하지만 기계가 창의성을 연마하는 특징 중 하나인 고통을 경험할 수 있을까? 기계는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려면 기계는 감정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마도 언젠가 센서, 규제 메커니즘, 그리고 인간의 감정을 복제하는 복잡한 통신 경로 시스템을 갖춘 컴퓨터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더 나중에는 기계는 인간 창조자를 뛰어넘어 새롭고도 상상할 수 없는 감정을 개발할지도 모른다. 컴퓨터가 슬픔이나 고통을 느낄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되면 기계는 미래에 누군가를 애착하게 되고, 그 사람이 더이상 생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들의 손길을 그리워하고 슬픔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 p.501~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