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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 옷을 입고 간다

붉은색 옷을 입고 간다

삶창시선-69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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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108쪽 | 166g | 128*205*20mm
ISBN13 9788966551552
ISBN10 896655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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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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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4밀리 용접봉은 어제의 취기와 장단을 같이합니다
굳게 세운 바리케이드는
피를 먹고 우뚝 서 있습니다.

공구 통 들고 오르다 떨어진 생명을 매단
흔들리는 줄을 보며 부끄럽습니다

깃발을 내리지 않아야
저 줄이라도 가능합니다

흔들리는 생명 줄을 보고
자조 섞인 목소리로 푸른 불꽃을 튀기는 용접봉은
붉은 피를 흘리며 녹아듭니다

용접봉에게 부끄럽습니다
---「깃발」중에서

비가 옵니다
세상을 꽃 피우기 위해
세상에 꽃 지게 하기 위해

대지 틈새에 끼어 있는 나를 향해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공치는 날,
장마에 지친 농부 마음으로, 비가
용접공 마음에 서걱서걱 내립니다
---「공치는 날」중에서

뜨거운 철판만이 기억하는 여름

다시 온다는 당신은
안개 너머로 사라졌습니다
아롱거리는 열기가 계절에 지워져
해가 뜨면 사라지는 신기루처럼
언약이 낡아 없어질 때쯤
움푹 파인 상처 위로 동백이 피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에 나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서걱서걱
이리저리 휘고 시달리듯
지워진 약속처럼
희미하게 자란 틈 사이로
작업복이 붉게 피어 돌아왔습니다
---「해고 2」중에서

닮았다니,
검게 그을린 얼굴로 공사장에 나타나
말똥구리 쇠똥 굴리듯
시키지 않아도 척척 일을 잘해서

사람들은 나와 닮았다고 하지만,
닮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일하는 곳
누가 나를 닮았다는 것은
어깨 으쓱 할 일이지만
닮은 사람들 함께 살아 밥이 고픕니다

쇳가루 묻은 눈물 흘리며
아이들 옷을 사기 위해
학교 보내기 위해
아픈 아내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린 노동을
그는 닮지 않았으면 합니다
---「닮았다」중에서

새벽은
어둠 너머에서 옵니다
새벽은
노동자의 붉은 피에 젖어 해가 뜹니다
불 밝히는 하루는 그렇게 시작합니다
여명의 바다를 보면 압니다
---「여명」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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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삼 시인은 사십 년을 노동자로 살았다. 그냥 노동자로 살면서 흘러가는 대로 산 것이 아니라, 왜 자신이 노동자가 됐으며, 노동자란 우리 사회의 어떤 존재이며, 인간으로서의 노동자의 삶이란 무엇인지를 찾아가며 생각의 뿌리를 키워왔다. 이번에 실린 시들은 그의 사십 년 세월이 만들어낸 온몸의 노래다. 가난과 고된 노동과 멸시를 겪었던 시간들. 그 차별과 억압을 넘어서기 위한 투쟁과 구속과 죽음의 노래이다. 그 노래가 격하지 않고 부드러우며 서정적이다. 사십 년이라는 오랜 시간의 장고 속에서 생각의 뿌리를 내려온 그의 마음이 날것 같은 분노와 설움을 쓰다듬으며 따뜻하게 품어온 까닭이다.
- 이인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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