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나를 낳았으니, 이제 내가 엄마를 낳겠어요
한국에서 국어 교사를 하다가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지금은 메릴랜드에 살고 있는 임수진 작가가 두 번째 산문집(『오토바이 타는 여자』, 달아실刊)을 펴냈다. 정식으로 등단이라는 절차를 밟은 적도 없는 무명의 작가가 첫 산문집 『안녕, 나의 한옥집』(아멜리에북스)을 펴냈을 때, 나태주 시인은 이런 말을 했다.
“아, 이런 글이 있었던가! 이런 글을 내가 언제 읽었던가! 가슴이 벅차오르다 못해 뛰기 시작했고 얼굴이 붉어졌다. (…중략…) 오늘 나 한 사람 늙은 시인으로서 한글로 글을 쓰는 좋은 작가 한 사람을 찾아낸 것을 기뻐하거니와 이 기쁨이 다른 많은 독자들에게도 공통의 것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임수진 작가의 이번 산문집은 일종의 ‘시에세이’다. 임수진 작가가 시인인 엄마의 시집을 한 편 한 편 읽어준다. 사십 대에 접어든 딸이 칠십 대의 엄마와 대화를 나눈다. 중년의 딸과 노년의 엄마가 시와 산문으로 조우하고 서로(의 삶)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임수진 작가가 책의 부제를 “이것은 엄마라는 책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붙인 까닭이고, “엄마가 나를 낳았으니, 이제 내가 엄마를 낳겠어요”라고 말하는 까닭이다.
김정임 시인, 그러니까 임수진 작가의 엄마는 공주교육대학에서 나태주 시인과 함께 동문수학하였고, 시동인지 〈새여울〉의 창립 동인이기도 하다. 임수진 작가에 따르면 엄마는 교사 일과 양육 그리고 종가댁 시집살이라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시인의 길을 접어야 했지만, 칠십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시인의 꿈을 놓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런 엄마가 사십 대 때 펴낸 첫 시집(『아직은 햇살이 따스한 가을날』)을 작가 본인이 사십 대가 되어 다시 읽다 보니 사십 대였을 때의 과거의 젊은 엄마가, 칠십을 넘긴 현재의 늙은 엄마가 비로소 보였고 새롭게 읽혔다고 한다. 그렇게 엄마의 시를 엄마의 삶을 읽어낸 것이 이번 산문집이란다.
첫 번째 산문집에 이어 이번 두 번째 산문집도 나태주 시인이 〈추천의 글〉을 써주었는데, 이번 산문집을 나태주 시인은 이렇게 얘기한다.
“딸아, 고맙구나. 엄마를 이해해주고 엄마의 인생과 함께해주어서 고맙구나. 이제는 엄마의 인생이 딸의 인생이 되고 딸의 인생이 엄마의 인생이 되었구나. 엄마의 길이 네 길이고 네 길이 또 엄마의 길이구다. 그렇다면 엄마가 늙은 사람이 되는 것도 괜찮겠다. 너의 글 속에서 엄마는 언제까지나 젊은 여인으로, 뜨거운 가슴의 시인으로 살아 숨 쉬고 있을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이 책은 엄마와 딸이 나누는 세상에서 가장 내밀한 여자들의 대화다. 엄마를 위한 엄마에 의한 엄마의 글이고, 딸을 위한 딸에 의한 딸의 글이기도 하겠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음역대의 음악이거나 세상에서 가장 낮은 음역대의 노래이기도 하겠다. 엄마가 딸을 낳고 딸이 다시 엄마를 낳는 이 기묘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여자들의 울음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박제영 시인은 이번 산문집을 이렇게 한 편의 시로 요약한다. “미국 메릴랜드에 사는 마흔다섯의 한국 여자는 공주의 옛 한옥집에서 살았다지 그곳에서 뒷간이며 부엌이며 어둑시니와 두억시니들도 함께 살았다지 그곳에서 며느리였고 아내였고 학교 선생이었던 여자의 엄마는 오토바이를 타는 여자로 한 이름 떨쳤다지 베토벤을 사랑한 여자의 엄마는 젊은 시절 문청이었던 여자의 엄마는 끝내 한옥집에 갇혀서 끝내 시인의 꿈을 접어야 했다지 여자가 〈안녕, 나의 한옥집〉을 보여주면서 말했네 이제 내 엄마, 〈오토바이 타는 여자〉를 써야겠어요 엄마가 나를 낳았으니 이제 내가 엄마를 낳아야겠어요 여자가 엄마의 시를 맛있게 뜯어 먹고 있네 엄마를 먹고 있네 조만간 엄마가 응애 응애 울겠네”(「이제 내가 엄마를 낳겠어요―임수진論」 전문)
세상의 엄마들이, 세상이 딸들이, 세상의 여자들에게 꼭 일독을 권한다. 물론 여자를 이해하고 싶은 모든 남자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 작가의 말
여자는 시를 썼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시동인회 활동을 했고 이후 교사 생활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시를 썼다. 선배들과 교수님들도 여자가 시를 계속 쓰길 기대했고, 등단할 것도 권유하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여자는 시와 멀어졌고, 등단을 위해 애쓰지도 않았다. 글벗들이 모두 좋은 시인으로 성장해갈 때, 그녀는 더 이상 시를 쓰지 않았다. 모두들 그녀가 시를 잃어버린 줄 알았다.
나는 커가며 여자에게 묻곤 했다. 왜 더 이상 시를 쓰지 않았냐고. 왜 등단을 하고 시인으로서 성장하겠다는 꿈을 꾸지 않았냐고. 여자는 삶이 너무 고달팠노라 했다. 촌각을 쪼개 살며 오토바이를 타고 바쁘게 달려가는 삶 가운데 종이 위에 써 내려가는 시는 너무 사치스러웠노라 했다. 여자는 시를 마음에 썼노라 했다. 진짜 시는 내 마음에 쓰는 거라고, 나는 내 마음에 빨래처럼 시 한 조각 한 조각 널어가며 그렇게 살았노라고 했다. 그렇게 나의 시는 너희가 되었노라고 했다.
나는 여자에게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젊은 시절 쓴 시. 젊은 날 한 권의 시집으로 끝나버린 시인의 꿈에 미련이 남지 않느냐 물었다. 여자는 후회하노라 했다. 삶을 좀 더 길게 보았다면, 조금 더 세상을 알았다면, 지금도 누군가가 읽어주는 시를 쓰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라 말했다. 여자는 후회하지 않노라 했다. 여자의 마음에 차고 넘치던 시절의 시가 남아 있기에 후회하지 않노라 했다. 여자의 시가 딸들이 되고, 가정 시간에 학생들에게 들려주던 이야기가 되고, 자수가 되고, 삶이 되었기에 후회하지 않노라 했다.
이 글에 실린 시들은 대부분 여자의 20대, 30대 시절의 시를 40대 중반에 묶어 펴낸 여자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시집(김정임, 『아직은 햇살이 따스한 가을날』, 대교출판사, 1993)에 수록된 것을 옮긴 것이다. 그동안 홀로 썼던 시를 모아 여자가 40대에 펴냈던 작고 소중한 한 권의 시집. 오랜만에 이 시집을 발견한 후 나는 홀린 듯 며칠을 여자의 시에 빠져 지냈다. 유전이라는 것, 모녀지간이라는 것은 시 속에도 DNA가 박제되어 있는 것인지…. 읽으면서 내가 쓴 시인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나는 시를 써본 적도 없고, 이런 시를 쓸 수도 없다. 그럼에도 만일 내가 시인이라면 이런 시를 쓰지 않았을까 싶은, ‘나의 감성’을 여자의 시에서 발견했다. 나는 시는 쓸 수 없으나 여자의 시와 함께, 여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쓰기 시작한 것이 여기 이 이야기들이다.
신기한 일이다. 여자가 한 권의 시집을 낸 것이 여자의 나이 마흔여섯 때였다. 그리고 내 나이 곧 마흔여섯을 앞두고, 여기 여자의 시와 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세상에 내어놓는다. 이 또한 ‘글의 운명’의 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내가 이 나이가 되지 않고서, 여자가 내내 시를 멀리하고 있다가 갑작스레 한 권의 시집을 출간하게 된 것을 어찌 이해했을까. 여자의 진한 삶과 시를 어찌 이해하고 글을 썼을까.
시간을 돌고 돌아 여자의 시와 이야기는 그렇게 내 앞에 있다. 여자의 인생이 내 앞에 있다.
2022년 11월
임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