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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2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242g | 140*205*9mm
ISBN13 9788954448581
ISBN10 895444858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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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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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안의 그림자로 세상을 본다는 말이 있어. 아마 우리 모두 그럴 거야. 누구나 버겁지 않을까 겁도 나고,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 그림, 엄마한테 보여줘도 될까?”
“아뇨.”
난 단박에 안 된다는 말을 붙였다.
“그래? 알았어. 내일도 보초 서러 올 거지?”
“네? 네. 가면 되나요?”
오늘도 별로 한 건 없다. 비둘기 알을 지키면서 알과 박쥐를 그린 게 다였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이 시원해진 것도 같았다. 특히 박쥐를 그릴 때 그랬다.
--- p.32

어쩌면 500년 전에 불었던 야시장의 밤바람이 잠깐 나에게 당도한 건지도 모른다. 바람은 시공간의 경계를 허물며 달려와 잠시 내게 머물렀을 것이다. 밤바람 속에 댕기 머리를 휘날리며 서책 심부름을 하던 소년의 간절한 기원이 나에게 당도한 것일지도 모른다. 까막눈을 면하고 싶던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이 나에게 도착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이의 간절한 기원이 티베트 고원을 넘어 바람을 타고 나에게 닿아 글자 크기가 달라지고 빛이 난 것일 수도 있다.
그때 바람이 나에게 이렇게 물은 건지도 모른다.
“너, 거기서 뭐 하는 거니?”
나는 그것에 답하기 위해 박차고 나왔을 뿐이다.
바람은 잠깐 머물다 갈 것이다.
--- p.69

“다들 궁금하겠지. 이유가 있다. 그건 다른 아이들에서 볼 수 없는 너희들만의 에너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너희 가슴속에 들끓고 있는 활화산 같은 분노라면 충분히 난타반을 이끌고도 남으리라고 믿는다. 그 믿음마저도 무슨 근거냐고 묻는다면 그건 대답 못 한다. 그건 너희들로부터 읽은 나의 직감이니까. 난 죽어도 못 하겠다, 하시는 분은 너희와 똑같은 애를 데려다 놓고 빠지면 된다, 끝.”
순간, 깊이를 알 수 없는 웅덩이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어찔했다. 나와 똑같은 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나와 똑같은 애는 어디에도 없다. 아마 전 세계를 훑어도 나 같은 애는 없을 것이다.
--- p.77

나는 기어이 꺽꺽거리며 울었다. 삼십여 년 전, 그날 밤 이후 쉬쉬하며 묻어 두었던 언니에 대한 슬픔이 봇물 터지듯 나오는 것 같았다. 결국 슬픔도 내 서러움이었다. 그런 언니를 지켜봐야 했던 힘듦과 설움의 덩어리. 인간은 끝까지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내가 주연에게 여행 내내 툴툴거린 것도 결국 내 문제였던 것처럼.
“엄마.”
주연이 나를 나직이 부르며 감싸 안았다.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을 감추느라 주연의 어깨를 꼭 안았다. 작고 가냘프고 여린 어깨였다. 나는 그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 p.113

나만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된다. 매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나의 유일함도, 애써 지키려는 긴장감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깨진 폰이 들어 있는 서랍을 잠갔다. 책장 뒤로 열쇠를 던졌다. 가슴에 구멍이 나 바람이 휘휘 드나드는 것 같았다. 이불을 뭉쳐 가슴팍을 막듯 한껏 구겨 안았다. 몸은 한없이 웅크려 들었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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