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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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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2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120쪽 | 180g | 128*210*20mm
ISBN13 9791168150393
ISBN10 1168150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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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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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본역 대합실에 앉았다
떠남의 설렘이나
마중의 기쁨은 없다

기차를 타지 않으면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기차는 가끔 화본역을 향해
스치듯 손을 흔들고
카메라를 향해 오래 웃는다

서울처럼 기차에 실려 가던
그 절절한 희망과 꿈은
어디에서 타는지

전쟁처럼 기차에 실려 오던
그 많은 눈물과 그리움은
어디에서 내리는지

한때 빛났던 모든 희망 같은 슬픔
진심이 찍힌다면 화본역은
카메라 앞에서 웃지 않으리라

어떻게 기다릴까 마지막 기차
화본역은 카메라를 든 사람들처럼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는다
---「화본역*」중에서
* 경상북도 군위군에 있는 간이역

오는 길이 환한
용연사 가는 오래된 길 따라

벚꽃은 한 송이 한 송이
힘을 다해 피어나

한 잎 한 잎
진심을 다해 떨어진다

바람을 기다려 보면 벚꽃은
오히려 떨어질 때 더 진심이다

기억해보라 사랑 같은
절정에서 떨어졌던 모든 것은

정말 진심이지 않았던가
그래서 황홀하지 않았던가

오는 길이 환한
용연사 가는 오래된 길 따라
---「용연사 가는 길 따라」중에서

하늘로 구름꽃을 들어 올릴 만큼만
바람이 불어도

잎들은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처럼
하나씩 흔들릴 때

아, 가만히 두면
모두 하늘로 올라갈 것 같아

잎 무성한 가지에서
방금 입을 맞춘 새들이 날아간 하늘로

잎들도 서로 반짝이며 입 맞추고
새들을 따라갈까

치마를 올릴 듯 말 듯 하는 바람에도
하늘로 올라가고 싶은 미루나무 숲에서

그리운 사람들인 양
미루나무를 바라보는 기쁨이여
---「미루나무 숲에서」중에서

지구는
푸른 별이라매
그럼 지구에서 사는 우리는
별에서 사는 거잖아
그런데
별에서 온 사람이니
별에서 살고 싶다니 하는
말들은 무슨 말이야
별에서 살면서
다른 별을 그리는 것은
사람들의 절망적 욕심이지
친구야,
다른 별이 아닌
이 별에서 이별할 때까지
종달새 원앙금 펴는
보리밭 같은 별밭 이루어
푸르게 푸르게 출렁이다
누렇게 누렇게 일렁이면
좀 좋겠니
---「보리밭에서」중에서

야훼 하나님의 얼굴을 본 자는
정녕 죽어야 하지만
아, 기뻐서 울음이 터져 나온다
세상에 무슨 풍경이 더 남아 있을까
무슨 신비가 더 남아 있을까
---「백두산 천지」중에서

햇살이나 함박눈
안개비가 내리는 날이 아니어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풍경은
황홀하다, 깊게

숲이 파도처럼 출렁일 때는
전율한다, 아득히

왜 몰랐을까
헤아릴 수 없는 바람 앞에서
미동도 안으려 버텼던 사람아

바람 앞에서는
나무처럼 숲처럼
흔들려야 하는 것을

바람 앞에서는
출렁거리는 모든 것이
황홀한 전율인 것을
---「나무처럼 숲처럼」중에서

부러워했었다
평일 대낮에 산속을 걷는 사람들은
전생에 무슨 공덕을 쌓았나
늦게 알았다 형이 아프고 산에 가면서
평일의 산은 아픈 사람들의 피난처임을
산은 병病에게 묻지 않는다
몸이, 마음이 어떻게 아픈지
학벌은 어떤지 어느 동네에서 사는지
무슨 일을 하며 밥을 먹어왔는지
그냥 받아주고 동행이 될 뿐이다
밥때가 되어 배낭에 지고 온
맛깔스러운 병을 꺼내 놓으면
내께 니 꺼고 니께 내 꺼다
다시 웃으며 걸어도 여기저기
비 그친 후의 독버섯 같은 병들
다 이해도, 품을 수도 없지만
산은 병을 묻지 않는다
함께 걸을 뿐이다
---「팔공산은 묻지 않는다」중에서

눈이 함빡 내리는데
난데없이 참꽃의 안부가 궁금하여
비슬산을 오른다

봄날의 황홀했던 꽃바다
비슬산 정상은 눈꽃이 피어
다시 아득한 바다다

아, 꽃은 한 계절을 피는 게 아니구나

보여주고 싶지 않아라
눈 내리는 비슬산의 참꽃
---「비슬산의 참꽃」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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