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만들고 여러 도시의 영화제를 다니면서 만난 친구들이 있다. 유학생이거나, 이민자들이거나, 혹은 정처 없이 떠돌고 있는 이들. 사적인 교류 없이 헤어지는 일도 있지만 몇몇은 정말로 친구가 되었다. 한국을 끔찍이 증오했거나 사랑했던 이들. 그들을 감싸고 있는 알 수 없는 고독감과 낯선 땅에서 일구는 생존의 삶을 늘 동경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곤 했다.
이용빈 작가와는 2015년 10월, 파리에서 처음 만났다. 그해 완성한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파리한국영화제에 초청되었고, 그는 영화제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파리의 한국 유학생이었다. 당시 나는 몇 년간 무리하면서 작업을 이어온 상태라 거의 산송장인 채로 이곳저곳을 다니는 중이었다. 아, 사람이, 이렇게 과로사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수십 번도 더 했던 것 같다. 한 편만 만들고 죽을 건 아니잖아? 라는 말도 종종 들었다. (아니 환청이었나, 그러다 죽어, 그러다 죽는다고) 사람을 만날 때면 당분간 좀 쉬고 싶다는 말을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열심히 떠들고 다녔다.
하지만 공항 서점에서 산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완전한 번아웃 상태로) 비행기 안에서 읽으면서, 다음 작업은 이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20대 후반의 직장인이 한국에서 이렇게 살다 간 맹수에게 잡아먹히는 초식동물의 신세가 될 거라고 예감한 뒤 호주 이민을 감행한다는 줄거리였다. 그에게도 정규직의 직장이, 귀엽고 성실한 애인이, 사랑하는 가족이 한국에 있었다. 예측 가능한 안온한 생활을 뒤로한 채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낯선 땅으로 모험을 나선 주인공의 여정이 이상하리만치 내 가슴을 두드렸다. 그는 한국을 떠나서야 비로소 한국을 제대로 생각할 수 있는 시공간을 확보한다. 그리고 행복해지겠다고 다짐한다.
이용빈 작가를 만나면서도 그 주인공을 떠올렸다. 영화제 동안 오가는 차 안에서, 길을 걸으며, 조촐히 치렀던 쫑파티에서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었던 것 같다. 그는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는 타인의 말을 꼭꼭 주워 담듯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이 맞닿는 지점이 생기면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짧은 여행은 금세 끝이 났다. 그의 근황이 궁금해질 무렵에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간 취직을 했고 다시 퇴사한 것 같았다. 그리고 계속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책에는 그가 만난 짧고 긴 인연들이, 세심한 경청이, 생각의 되새김질이, 해 뜨기 전의 적요한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프랑스로 떠날 때는 돌아올 것을 생각하지 않았’던 그가 한국에 돌아온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도 궁금해진다. 그럼, 최선을 다해 다음 장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167583 (영화감독)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마다 해외파견 채용 공고를 훑어보곤 했다. 일의 특성상 해외에서 일할 기회는 많았고, ‘수틀리면 파견 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좀 나아졌다. 언제든 여길 떠날 수 있다는 마음, 더 나은 선택지가 있다는 막연하지만 확고한 믿음. 그곳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분명 여기보단 나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불투명한 ‘그 어딘가’를 꿈꾸며 20대 후반을 보내는 동안, 내 친구 용빈이는 지도를 펼쳐 점을 찍었다. 프랑스였다. 용빈은 퇴근 후 1년이 넘게 알리앙스 프랑세즈에 다니며 프랑스어를 배웠고, 스물일곱에 직장을 관두고 프랑스로 떠났다. 의외의 선택은 아니었다. 프랑스 철학과 영화를 좋아했고, 교환학생으로 중국 중경에 산 적이 있었으니 해외 생활도 잘하리라 생각했다. 3년 후 용빈은 1년의 어학코스와 2년의 석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어학코스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도 많은데, 낯선 언어로 학위 논문까지 쓴 친구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용빈은 자신의 유학이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자평했고, 프랑스 얘기를 할 때마다 복잡한 심경인 듯 보였다. 눈에 보이는 성취와는 대조적으로, 친구의 내면에서는 복잡한 일들이 있었으리라 짐작했다.
그로부터 다시 3년이 지났고, 용빈은 프랑스에서의 이야기를 묶어 책으로 만들었다. 그 복잡한 마음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막연한 동경’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프랑스에서의 삶이 실제로 어땠는지 솔직하게 풀어냈다. 프랑스나 유학 생활과 무관하게, ‘여기 아닌 어딘가’에 대한 기대가 무너져본 적이 있다면 공감할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열렬히 좇던 무언가가 마침내 현실이 되었을 때 내가 마주한 건 솜사탕 같은 이상이 아니라 벌거벗은 나 자신이었고, 해야 할 일은 울퉁불퉁한 땅에 두 발을 딛고 서는 것이란 걸 경험한 사람이라면.
습관처럼 해외 채용 공고를 살펴본 것과는 반대로, 나는 지난 6년 동안 월세에서 전세로 옮기며 안정적인 삶을 꾸려왔다. 내가 앓은 것이 꿈이나 이상이 아니라 만성적인 보바리슴이었단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용빈과 내가 각자의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잘 통과하고 맞이한 지금이 참 감사하다. 그리고 지나온 시간이 무엇이었는지 되새김질하고 그 이야기를 꼭꼭 씹어 책으로 뱉어낸 내 친구 장하다! 우리 존재 너무 소듕해!
- 오민영 (용빈의 오랜 친구이자 『나도 참 나다』를 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