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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

: 126가지 나를 키워 준 시골 풀꽃나무 이야기

리뷰 총점9.6 리뷰 5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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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2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342g | 133*190*20mm
ISBN13 9791188613281
ISBN10 1188613286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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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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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쪼그려앉아 감꽃을 주워 모아두고 울타리에 걸린 감꽃을 베어문다. 어린날 감꽃이 떠올랐다. 그때 맛이 날까 또 씹었다. 고운 꽃이 살짝 달면서도 떫고 쓰다.
--- p.19

감자를 보자기에 싸서 산을 하나 넘고 밭에 닿으면 어머니 아버지는 감자 잘 삶아 타박타박하다고 한다. 어머니 아버지는 쉬지도 않고 일하고 새참을 갖고 오기를 기다린다는 생각에 그 먼 멧허리를 걸어가는 길이 힘들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감자로 찌개하고 볶고 삶아서 물리도록 먹는다. 캄캄한 땅속에서 알알이 잘 영글어 주렁주렁 달고 나온 감자는 저를 먹으면서 둥글둥글하게 타박하게 살기를 바라겠지.
--- p.21

밤이 깊어 갈 무렵이면 어머니는 배추뿌리를 씻어 주고 고구마도 깎는다. 날것으로 깨물면 천둥소리가 난다.
--- p.24

구기자잎은 개나리잎보다는 보드랍고 고춧잎보다 빳빳하다. 나뭇가지가 가늘어 금낭화처럼 휘청이도록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다. 푸른빛이 노랗게 익고 빨갛게 무르익어 빛깔이 곱다. 우리는 빨갛게 익은 것만 골라 땄다. 산수유는 씨가 있어 알이 탱탱한데 구기자는 물컹해서 작은 알을 따려고 힘을 주다가는 손힘에 툭 터진다. 물컹하게 튀어 얼굴과 옷에 물든다. 빛깔이 고와 맛이 있을 듯하지만 쌉싸름하다. 붉게 잘 익으면 달금하다던데 내 입맛에는 밍밍하다.
--- p.30

사람들이 곡식을 심으면 다른 풀은 잡초라고 뽑아내고 매서운 약을 치고 하는데, 우리 몸에 좋은 풀은 하나같이 지심인 듯하다. 뽑아내도 또 자라 흔하게 나니 흔하게 먹고 우리 몸을 돌봐주려고 우리 몸 가까이에서 자꾸 씨앗을 퍼트리는 듯하다. 풀이 우리를 먹여살리기도 하고 몸을 고치기도 하는데, 이런 풀이 이젠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지려고 하네.
--- p.36

냉이는 겨울 밭에 가장 먼저 돋아나 봄을 부른다. 잿빛 흙에 풀빛이 눈에 잘 보이고 얼었던 흙이 녹자 햇볕에 일찍 깨어나 찬바람에 발갛게 그을리며 봄을 부른다. 새풀 옷을 입고 첫봄을 알리니 봄도 냉이 부름에 웃고 성큼 오는지 모른다.
--- p.46

어린 날 새벽에 눈을 뜨면 문밖이 환한 적이 있다. 달빛에 밝아서 환하기도 하지만 밤새 눈이 내렸다. 잠결이지만 문을 열어 달빛인지 눈이 내렸는지 눈으로 보고 다시 잠든다. 내가 먼저 마당에 눈을 밟고 싶었다. 하얀 마당에 발자국을 내고 신발 자국을 동그랗게 찍는 재미가 있었다.
--- p.52

우리는 밭에 오르면 한 골씩 맡아 꽃봉오리를 찾는다. 서로 터트리려고 이랑을 넘나드느라 도라지가 넘어지고 밭이 엉망이 된다. 도라지꽃은 풍선껌을 불어서 붙여놓은 듯 바람이 빵빵하게 찼다. 두 손으로 꼭 누르면 뽕뽕 소리를 내며 터진다. 어떤 봉오리는 픽 하고 바람이 실실 빠진다.
--- p.71

돌돌 만 반죽이 서로 달라붙지 않게 밀가루를 묻혀 가면서 훑는다. 반죽을 보자기만큼 커다랗게 밀면 널어 두고 마실 한 바퀴 돈다. 꿋꿋해지면 착착 접어서 꽁지를 잘라내고 채썰었다. 우리는 꼬랑지를 받으려고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다. 꼬랑지를 아궁이에 넣고 불에 구우면 올록볼록 부풀고 바삭하다.
--- p.116

여름이 되면 반딧불이가 찾아온다. 반딧불이가 꽁무니를 빼고 날아가면 쫓아다녔다. 부엌은 백열등을 썼다. 부엌과 수돗가를 비추는 불은 그을림이 앉아 불을 켜도 어둑하다. 밤이 깊으면 부엌에 불을 켜 놓았다. 마당에 펼쳐 놓은 자리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빛나는 작은 별과 그 가운데 더 반짝이는 별을 찾아보면서 하나둘 헤아렸다. 밤하늘 별을 보았더니 우리 집 마당에 별이 찾아온 듯했다.
--- p.120

열두세 살에 어머니가 밭에 나가고 없을 적에 어머니 작은 소쿠리에서 화장품을 뒤졌다. 벽에 걸린 거울을 벗겨서 창살문 기둥에 세우고 어머니가 쓰는 분을 발랐다. 어머니 입술물(립스틱)은 얼마나 오래 썼는지 돌려도 올라오지 않는다. 어머니가 손가락에 찍어 바르길래 나도 새끼손가락에 찍어서 입술에 문질렸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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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하루 님이 그동안에 누리그물 새뜸인 〈배달겨레소리〉에 올린 글을 모아 책을 펴낸다는 말을 듣고 반가웠습니다. 메와 들에 절로 자라는 풀과 나무를 따뜻한 눈길로 보고 쓴 글이에요. 사람이 태어날 때는 누리러 온다고 생각하여 우리 한아비들은 삶터를 ‘누리’라고 지었지요. 이 누리에는 사람만이 아니라 여러 짐승, 온갖 벌레, 푸짐한 푸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저마다 한껏 목숨을 누립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벌레 한 마리도 따뜻한 눈길로 보고 쓴 글은 우리 마음을 울립니다.
- 최한실 (상주 ‘푸른누리’ 숲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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