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초상화는 현존하는 자화상 중에서 가장 초기의 것일 수 있다. 선은 이미 확고하고, 구성은 아직 모색 단계에 있다. 그녀의 눈빛은 신중하고, 비판적이면서 초롱초롱하다. 거의 십 대 후반 소녀의 눈빛이다. 하지만 시선을 피하지 않고 관찰자를 똑바로 바라본다. 이것보다 몇 주 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쾰른의 콜비츠 미술관이 소장한 이와 유사한 유명한 작품에는 자의식으로 충만한 손의 자세가 추가되어 그려져 있다. 이제 처음으로 가능해진 초창기의 두 작품을 비교하면 이 젊은 여성 화가의 자신감과 능력이 성장하는 것을 마치 저속 촬영한 것처럼 볼 수 있다. 스물두 살짜리가 이제 막 세상을 정복하려고 한다.
---「놀라운 발견」중에서
콜비츠의 관점에서 보자면 결국 재능이 좀 더 많다는 것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나는 아주 야심이 많았지만 리제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얻고자 하는 편이었고, 리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의 아들 한스는 나중에 어머니와 대화를 나눈 뒤에 다음과 같이 적는다. “어머니는 예술적으로 리제 이모처럼 쉽게 성과를 내지 못했다. 리제 이모는 스케치를 훨씬 쉽게 습득했는데, 아마도 모든 것이 아주 쉽게 이루어졌고 어디서나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손해를 보았을 것이다.”
---「죄와 놀이」중에서
전통적인 콜비츠 전기는 의사의 아내로서 케테가 경험한 것이 사회 참여적인 미술을 향해 나가도록 만든 최초의 자극이라고 본다. 우리는 그 반대의 경우가 맞는다고 생각한다. 하웁트만 공연에서 받은 충격으로 비로소 그녀는 집안 복도에서 진찰을 받기 위해 기다리던 사람들의 모습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그제야 그녀는 겉모습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내면 삶에서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을 식별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예술-남편」중에서
콜비츠는 다음과 같이 일기장에 적는다. “이야기를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고 말없이 듣기만 하는 아이가 온 힘을 다해 내면에 있는 것을 이겨내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했기 때문에, 어떤 말도 찾을 수가 없다. 우리는 문가에 서서 껴안고, 키스를 하고, 페터를 위해서 카를에게 부탁한다. 이 유일무이한 시간. 그가 내 마음을 움직여 끌고 갔고, 그리고 우리가 카를의 마음을 움직여서 받아들이도록 만든 이 희생.” 그것이 희생이라는 사실이 어머니에게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나는 전쟁을 저주했다. 나는 전쟁이 가장 힘든 것을 요구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저항하지 못한 것은 아마도 이 마지막 순간에 그 아이와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싫다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오직 그렇게만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열광, 영웅적 죽음」중에서
케테 콜비츠에게 둘째 아들의 죽음은 그녀가 1944년 초에 한스에게 쓴 것처럼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타격”으로 여전히 내면에서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상처였다. 유타 본케 콜비츠는 “그 이후로 할머니에게 그보다 더 큰 충격은 없었다”고 말한다. “남편의 죽음이나 집을 잃은 것이 당연히 고통스러웠겠죠. 하지만 오빠가 죽었을 때, 할머니의 가장 커다란 걱정은 아들 내외가 그것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어요.” 그 차이는 아마도 환상이 끝났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아들 페터가 희생적인 죽음을 맞았고, 그의 죽음은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에 매달려 있었다. 손자가 전사했을 때 그녀는 더 이상 그런 것을 믿지 않았다.
---「야상곡 Ⅱ」중에서
그녀의 지명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미술이라는 수단을 이용해 세상의 불의에 맞서도록 그녀 주변으로 모여든다. “나도 기꺼이 내 작업으로 도움을 주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느끼는 것처럼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음처럼 다그치는 소리를 듣는다. 빨리, 빨리! 벽보를 제작하시오! 노인들을 돕기 위해! 아이들을 돕기 위해! 빨리, 빨리, 빨리, 마치 자명종이 뒤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비통과 저항」중에서
대체로 그는 토요일 늦게 온다. 유타는 아직 깨어 있지만, “어머니 방은 이미 오래전에 불이 꺼져 있었다. 조용히 어머니에게로 다가가서는 어머니를 쓰다듬는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한스냐? 아, 네가 와서 좋구나. (……)’ 그리고 아침에 깨어나실 때면 유타에게 ‘내가 꿈을 꾼 것이니 아니면 어제 한스가 왔었니?’ 하고 물으셨다.” 나중에 케테는 아르네의 달력에 한스가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 꿈에 대해 적어놓는다. 그녀는 글을 쓰는 동안은 정신이 든 것처럼 보인다. “벌써 1월 12일이다. 엄청난 통증.” 그것이 그녀가 마지막으로 쓴 글이다.
---「야상곡 Ⅲ」중에서
이 책은 케테 콜비츠의 모순되고 흔들리는 인간적인 면모를 그대로 드러낸다. 그녀는 자신이 전쟁과 같은 정치 영역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인지 의심하고 주저했다. 그런 그녀가 일기를 통해 끊임없이 자문하고 회의하면서 생각을 다져나가고 드디어 전쟁을 계속하려는 사람들에게 반대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까지의 과정을, 그 의식의 변화를, 관념적으로 일어난 변화가 아니라 자신의 심장을 내어주고 얻은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옮긴이의 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