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답이 컬러로 고스란히 보였다.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상담 선생님께서 “희수 님의 어린 시절은 어떠셨나요?”하고 간단히 질문했는데, 나는 왈칵 울음을 쏟아냈다. 좀처럼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터라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러고는 울먹이며 말했다.
“저…는 어린 시절에도 늘 애쓰면서 살았어요. 한 번도 어린아이로 산 적이 없는 거 같아요.”
이 말을 내뱉고는 나도 모르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누군가의 관심과 칭찬에 나의 존재성을 부여하며 살았던 내가 안쓰러웠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거기에 나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열심히 살았지만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그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서 끊임없이 도전하며 살아왔다. 이런 삶의 태도가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장점이었기도 하다. 하지만 알지 못하는 불안감과 초조함이 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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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요즘 어떻게 지내니?”
“새벽에 일어나서 춤추고 출근해.”
“오~ 진짜? 근데 일어나서 춤이 춰지니? 그게 가능해?”
친구는 충격적인 듯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험을 안 해봤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새벽에 일어나기도 힘든데 잘 움직이지도 않는 몸으로 춤을 춘다니 상상이 안 갈 듯하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새벽 댄스는 나처럼 늦잠 자던 사람도 음악과 함께 몸을 흔들게 해주니 신나서 춤추게 해준다. 춤은 이제 특별하게 좋은 날에만 추는 것이 아니라 내 일상이 되었다. 워너비 모닝은 한곳에서 오래 살고 만나는 사람이 제한적이었던 내가 호주, 영국, 미국 등 지구촌 사람들과 함께 춤추고 놀 수 있게 해주었다. 세상의 모든 점은 이어져 있다는 말이 있는데 줌 세상에서 각자의 점들이 연결되는 신기한 체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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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를 만나러 가기 직전까지도 사랑이 많은 따뜻한 세입자와 계약서를 쓰고 도장을 찍는 시각화를 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약속한 시각에 도착하기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섰다. 간절하게 상상하면 현실이 된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집을 보러 온 사람은 결혼을 3개월 앞둔 신혼부부였다.
‘대박~~ 내가 상상한 그대로 이루어지다니!!’
아파트 전세 계약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고 다음 해에 새 아파트로 입주하는 날까지 비워주기로 하고 계약서를 썼다. 내 생애 처음으로 세입자를 받았다. 세입자는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을 받게 해달라고 했고, 세대주로 등록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세입자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 아주 낮은 금리로 받은 아파트 담보대출을 완벽하게 상환해 주었다. 세입자가 원하는 조건을 모두 만족시켜 주면서 서로 윈-윈 하는 비즈니스 협상을 했다. 이로써 새 아파트로 이사 가기 위한 자금도 모두 충당이 되었다. 간절했던 꿈은 100번 쓰기를 하면서 상상한 그대로 아주 완벽한 모습으로 이루어졌다. 이 모든 꿈이 이루어진 시간은 딱 3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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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100일째 되는 날, 나는 제주도에 가서 그토록 뛰고 싶었던 해안가 10km를 달렸다. 발에 물집이 잡혀서 터지고 무릎은 욱신욱신 고통을 호소했지만 넓게 펼쳐진 바다, 따사로운 햇살, 시원한 바람, 맑은 하늘, 상쾌한 공기가 나의 달리기 100일을 축하해주었다. 그동안 열심히 달린 나에게 “잘했어!” 하며 칭찬과 위로를 해주었다. 달리면서 더 달리고 싶었고, 달릴 수 있음에 감사했다.
뛸 수 없는 수많은 이유를 내려놓고, 오직 뛰는 이유를 찾아 달렸기에 더 애틋했다. 뛰는 그 시간만큼은 엄마, 아내, 며느리, 딸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보살펴주는 시간이었다. 머리 아픈 일, 고민되는 일, 화나는 일, 억울한 일, 마음이 아픈 일이 있을 때도 일단 운동복을 입고 문지방을 넘어 달리기 시작하면 행복했다. 그랬더니 문제로 보였던 일들이 더는 문제로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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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수련을 시작하면서 드디어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생활의 축을 앞으로 당겼다. 새벽 2시까지 안 자고 술 마시다 쓰러져서, 아침 7시에 천근만근인 몸을 일으켜 세웠던 7년의 세월은 없던 걸로 하고, 새벽 5시 반이면 일어나 새벽 수련을 갔다. 가끔 저녁 수업이 없을 때는 아들 서원이와 저녁 수련에도 갔다. 아이와 몸을 두드리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굴렁굴렁 구르기도 하고, 온몸이 땀에 흠뻑 젖도록 발차기도 하고, 찌르기도 하면서 내 몸의 감각을 깨워갔다. 그리고 눈을 감고 고요히 있는 시간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데, 이상하게도 입꼬리는 올라가고 내 얼굴은 웃고 있었다.
“엄마 엄마~ 우는 거 아니지? 수련하는 거지?”
내 앞에 느껴지는 온기. 속삭이는 서원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엄마는 지금 우는 게 아니고 행복해!”
“엄마~ 울지 마~ 알았지?”
매일 수련장에 가면 서원이는 매일 똑같이 내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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