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문을 주제로 책을 써보겠다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발상인가! 그건 사실 입 밖으로 꺼내기 껄끄러운 주제가 아니던가? 천만에, 오히려 그 반대다! 항문은 판의 중심부다. 항문은 세상의 중심이며, 세상은 항문을 축으로 균형을 잡는다. 이 책에서 항문에 관해 함께 살펴보고 나면 항문이 세상의 중심이라고까지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인간적인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 p.9
기린의 경우, 동성애 행위의 빈도가 이성애 행위 빈도를 능가한다. 이들은 열에 아홉은 수컷끼리 짝짓기를 한다. 사실, 동성애적 행동이 전혀 관찰된 적 없는 종은 체외수정을 통해 번식하는 종들뿐이다. 만약 당신이 찬장 안에서 진드기를 봤다면 쌀통이나 밀가루통 안에서 거짓쌀도둑거저리들이 비역질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떠도는 소문에 지나지 않지만, 유니콘들이 항문으로 재미를 톡톡히 본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요컨대, 동물에게 양성애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 p.26
의학적으로 무지했던 시대에는 사혈과 관장이라는 두 가지 치료법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프랑스 절대왕정의 상징이던 태양왕은 자신이 관장하는 광경을 2000번 넘게 사람들에게 보였을 것이다. 살균소독의 개념이 없던 당시에 이 극성스러운 치료법은 널리 알려진 그의 치루와 분명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17세기에 날던 새도 떨어뜨리며 온갖 영광을 다 누렸던 프랑스 기병대 사령관 페르테 공작은 자신의 치루에 대해 이렇게 한탄했다. “내 엉덩이 안에 포탄 한 발이 박혀 있었는데, 그걸 터뜨릴 수도 떼어낼 수도 없었다. 얼마 전 심한 복통과 설사를 겪고 난 뒤 주치의가 나에게 관장을 권고했다. 그 처방에 따라 약사가 관장기로 나를 아주 고통스럽게 만들어서 저절로 비명이 나왔다. 내 엉덩이에 상처를 입히는 그 온갖 종류의 대포 포신 같은 관장기를 이용해야만 하는 운명을 소리 높여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 p.60
터무니없이 비싼 밑씻개로 쾌감을 얻고 벨벳이나 새틴 같은 보드라운 천의 감촉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하층민은 여전히 막대기에 의존했다. 유럽에서는 인체공학에 맞춘 곡선형 막대기를 선호했다. 중세 일본에서는 통나무를 잘게 썰어 매끈하게 다듬은 작은 작대기를 사용했는데, 주인이 사망하면 불에 던져 태워버렸다. 하지만 동시대의 중국인들은 그것을 깨끗이 씻어서 대대손손 물려주었다. 중국에서 밑씻개로 비단 종이를 사용하는 최고의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황제뿐이었다. 14세기 말, 중국 명나라 황실은 밑씻개용으로 비단 종이 72만 장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역사책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 왕족 베리 공작은 삼 부스러기를 킬로그램 단위로 공급받았고, 샤를 6세는 아마로 만든 밑씻개를 주문했다. 당시 회계장부를 살펴보면 전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 pp.102~103
어느 날, 영장류가 허리를 펴고 일어나 두 발로 걸으면서 인간이 되었다. 엉덩이는 근육이 발달되며 둥글둥글해졌고, 항문은 그 사이에 파묻혀 눈에 보이지 않게 되면서 성적 매력이 뛰어난 부위가 되었다…… 유사 이래로 항문은 늘 인간의 중심에 있었다. 세속적이건 신성하건 간에 항문과 관련된 제의와 관습들 역시 이런저런 형태로 분명하게 존재했다.
--- p.114
옛날부터 세계 곳곳의 어떤 문명에서든 방귀는 가장 확실하게 흥행을 보장하는 공연 요소였다. 방귀를 뀌는 인물은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항상 인기가 많다. 역사를 살펴보면, 방귀를 뿡뿡 뀌어대는 전문적인 방귀 공연예술가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5세기로 거슬러올라간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에서 “어떤 이들은 항문으로 마치 노래를 부르듯 자유자재로 연주를 할 수 있다(게다가 악취도 전혀 풍기지 않고)”라고 언급했다.
--- p.251
무엇이든 얻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냉정한 물물교환의 세계에서, 항문 정신은 애정어리고 자유롭고 다정한 몸짓으로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아무것도 붙잡아둘 수 없고 자기를 위해 아무것도 간직할 수 없는 항문은 흩뜨리고 쏟아낸다. 항문은 미개한 기관이고 방랑하는 기관이며 너그럽고 방탕한 기관, 자유와 무상의 기관이다. 축적하고 성공하고 획득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으며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고, 시간이 흐르는 것을 인정하고, 모든 것이 자신에게서 빠져 달아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 pp.314~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