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의 일부1
내가 얼마나 고독했었는가를 쉽게 잊는 것은
학살의 일부이다 얕은 기분으로 화분에 물 주며
나를 뜯어내듯 죽은 잎을 뜯어내는 것도
학살의 일부이다
이빨을 닦다, 하얀 치아를 보다, 치약 냄새를
맡았다 거울 속의 내가
울음을 터뜨렸는데......그 천박한 이유를 모르는 척
하는 것은 학살의 대부분이다
고무 지우개가 사각의 종이와 마찰을 일으킨다
마찰의 힘으로 한 페이지의 추억이 지워졌다
지워졌다고 믿는 것도 학살의 일부이다
창밖 앙상한 나무는
바람 불어주지 않으니
무대 세트처럼 가짜 모습을 하고 있다
죽은 평화를 누리는 나처럼
바람을 기다린다고 말하는 것도
학살의 일부가 된다
--- p.
손
내 오른손에 만져지는 왼손
내 왼손이 느끼는 오른손에는
애인의 손맛에 취해서 청춘을 망친 자들이
요약되어 있다
악기
숨구멍
마음을 감싼 이 부대자루를 조여맨 자국
정들면 지옥이라는 말의 증언대
'안다'라는 말의 산 증인
오래도록 밟아서 만든 길
본래의 천성을 어지럽힌 장본인
그럼에도 불구한 내 천성의 실마리
말보다 솔직해서
말보다 미더워서
그리고 무엇보다
말이 한번도 받지 못한
이해라는 걸 받아보았으므로
더할 나위 없는 지복을 누렸던 손
마음의 바람기
마음의 육갑
마음의 단도직입
마음의 주인나리
만지는 쓰는 전화를 걸고 그의 발을 씻어주고
주먹을 쥐는 형제를 염하는
때리는 훔치는 속이는 묶는 뜯고 찢는
은밀함의 극치이며 드러남의 극치인
마음의 가장 비천한 식객
마음의 천형
손이 먼저 저지른 죄들로
인류는 날마다 체한 채 지구를 돌린다
종생토록 죄값을 치러도
손이 있는 한 반성하지 않으며 (pp. 60-61)
--- pp. 60-61
<학살의 일부 4>
아버지의 삶을 쓰기 위해 소설에 매달린 한 친구가 있었다.그 아버지 알코올에 중독된 자신을 이기지 못하시고 박카스 한 병짜리 농약 마시곤 대낮 약수터에서 이승을 떠나셨다.세상의 곤궁함과 그 곤궁함에 귀속되지 못하여 쩔쩔매던 중학교때 수학 선생은 여관 방에서 목을 맸고.즐기던 그 술에 기분 좋게 취하여 귀가하던 나의 큰 아버지께서 세차장 홈에 빠져 어이없는 실족사로 삶의 문을 닫아 걸었었다. 광부과 되려는 한 남자와 간호사인 한 여자가 독일로 흘러들어 사랑하고 결혼하였다. 그 부부는 채소 가게로 성업 이루자 새로 산 벤츠를 타고 첫 여행을 떠났는데, 그 여행길에서 교통사고로 일가가 나란히 세상을 떴다.
위암 말기 환자였던 나의 형제는 병실 창밖으로 몰려오는 봄을 바라보다 평화롭게 눈을 감았고 유족이 된 나는 화장터에서 점화 버튼을 눌렀다. 조문오지 못한 그의 애인이나 다름없던 기막힌 친구는 전방에서 눈사태에 죽어가는 동료를 살리려다. 눈에 묻혀 죽었다고 한다. 누가 더 잘 죽었는가. 살아 있는 나로서는 죽음에 다 대고 한 없이 찬성표를 던지고만 있다. 아, 살아 있는 자들이여. 과연 누가 더 잘 죽어가고 계신지.
--- p.
<학살의 일부 4>
아버지의 삶을 쓰기 위해 소설에 매달린 한 친구가 있었다.그 아버지 알코올에 중독된 자신을 이기지 못하시고 박카스 한 병짜리 농약 마시곤 대낮 약수터에서 이승을 떠나셨다.세상의 곤궁함과 그 곤궁함에 귀속되지 못하여 쩔쩔매던 중학교때 수학 선생은 여관 방에서 목을 맸고.즐기던 그 술에 기분 좋게 취하여 귀가하던 나의 큰 아버지께서 세차장 홈에 빠져 어이없는 실족사로 삶의 문을 닫아 걸었었다. 광부과 되려는 한 남자와 간호사인 한 여자가 독일로 흘러들어 사랑하고 결혼하였다. 그 부부는 채소 가게로 성업 이루자 새로 산 벤츠를 타고 첫 여행을 떠났는데, 그 여행길에서 교통사고로 일가가 나란히 세상을 떴다.
위암 말기 환자였던 나의 형제는 병실 창밖으로 몰려오는 봄을 바라보다 평화롭게 눈을 감았고 유족이 된 나는 화장터에서 점화 버튼을 눌렀다. 조문오지 못한 그의 애인이나 다름없던 기막힌 친구는 전방에서 눈사태에 죽어가는 동료를 살리려다. 눈에 묻혀 죽었다고 한다. 누가 더 잘 죽었는가. 살아 있는 나로서는 죽음에 다 대고 한 없이 찬성표를 던지고만 있다. 아, 살아 있는 자들이여. 과연 누가 더 잘 죽어가고 계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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