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제게 말합니다. 너는 미쳤다고! 정상이 아니라고!
여러분께 묻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타이탄의 날〉은 크라켄해 연안에 있는 해안 도시 ‘뉴 베니스’를 배경으로 한다. ‘프로젝트 헤르메스’가 진행되던 곳. 우주선 건조에 필요한 유기화합물을 생산하는 지역으로, 프로젝트는 중단됐지만 자동화 공장들은 멈추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그곳에 아웃스페이스 유니온 보험사 직원인 ‘나’가 도착한다. 반세기 전에 작성된 계약서에 서명을 받기 위해. 〈들림 받은 자들〉은 환경 문제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하루에 150종의 동물이 멸종하는 대멸종의 시대가 도래하고, ‘나’는 주장한다. 지금 일어나는 멸종의 원인은 운석도, 화산도 아닌 바로 인간이라고. 우리는 다름 아닌, 잿더미에서 불사조가 부활하듯 찾아올 새로운 시대를 위한 장작이라고. 오직 깨어 있는 자들만이 선택받은 첫 인류로서 구원받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거야. 그래서 날 찾아온 거군. 지구에선 우리가 죽길 기다린 거야. 아웃포스트의 모든 이주민이. 그래야 프로젝트를 부활할 수 있을 테니까. 우리가 죽으면 이곳의 모든 소유권은 다시 보험사와 투자사로 돌아갈 테니까.”
그는 형형한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 자신들을 버려둔 지구를 향한 분노가 노인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것 같았다.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이 뉴 베니스의 마지막 생존자고 당신이 죽으면 이곳 무인 공장의 운영권은 투자 조합에게 회수되니까요.”_본문에서
〈히카리〉는 리얼돌을 데리고 다니는 남성을 우연히 배에서 만난, 한 오토바이 여행객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유럽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대륙을 횡단할 예정이다. 예행연습 겸 홋카이도에 가기로 하고 배에 승선하는데, 핸드폰 충전기를 찾기 위해 한 남자와 1층 갑판으로 함께 내려가다 우연히 그의 차 조수석에 여자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묘한 공포감에 사로잡힌 ‘나’는 이내 그것이 사람이 아닌 리얼돌이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당황한 남자는 ‘나’에게 변명을 하기 시작하는데……. 〈환영의 방주〉는 군함정에서 권총 자살한 함장과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핵미사일 발사를 명하고 세계 전쟁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함장. 부장은 승조원들에게 이 죽음에 대해 알려야 할 의무가 있지만 이미 최악으로 치달은 상황에 숨이 막혀온다. 그들에겐, 이제 돌아갈 ‘집’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휘통제실로 들어가기 직전, 부장은 잠시 멈춰 서야 했다.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기 위해서였다. 그가 어떤 모습으로 들어오는지 모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리라. 그가 해줄 답을 기대하면서. 심호흡을 하자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제 배는 온전히 그의 책임이었다. 부장은 이들을 살려서 집에 데리고 돌아가야 했다.
돌아갈 집이 있다면.”_본문에서
〈퍼스트 제너레이션〉은 2002년 종로에서 ‘아이팟’을 산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따라간다. 헤어진 애인을 만나기 위해, 매킨토시로만 음악을 넣을 수 있는 아이팟을 산 그녀는 애인의 작업실에 찾아가 별다른 말없이 음악을 넣어달라고 한다. 끔찍이도 서로를 사랑했던 그들을 이별로 몰아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번아웃〉은 말 그대로 코로나 시국에 ‘번아웃’에 빠진 직장인의 딜레마를 그린 소설이다. 네 명이서 하기에도 벅찼던 일을 세 명이 하게 된 상황. 회사는 사람을 충원해주지 않았고, 이유는 간단했다. 굳이 충원하지 않아도 회사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아침에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매번 결심을 필요로 하는 매일. 밤낮없이 일을 하는데도 출근하면 새로운 일들이 쌓여 있고, ‘나’는 점점 지쳐간다. 급기야 ‘나’는 자신이 회사에서 가동하는 라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어느 순간이 되자 통증도 사라졌다. 아침이면 찾아오는 무력감과 피곤함은 여전했지만 그것도 연구실 문을 통과할 때까지였다. 바라는 것도, 필요한 것도 점점 줄어들었다. 점점 나 자신이 희미해지며 일만 남았다. 감정조차 천천히 탈색되어갔다. 어떤 때는 너무 무감해 스스로에게 깜짝 놀라곤 했다. 비로소 내가 거대한 라인의 일부가 된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내 삶은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_본문에서
〈made in heaven〉은 휴머노이드 형사와 일하게 된 경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의 개체로서 각 서에 소속된 휴머노이드 형사 ‘파트너’는 경찰의 수사 전담 인공지능 네트워크 역할까지 담당하는데, 사건에 대한 분석도 탁월했고 특히 업무 처리 능력이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자지도, 쉬지도, 실수도 하지 않는 ‘파트너’.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뭘 이해했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욕구불만이라는 걸 느껴본 적도 없으면서. 가끔 인공지능이 무언가 공감하는 시늉을 할 때마다 잠들어 있던 반골 기질이 꿈틀거렸다. 물론 사람들도 공감하는 척, 형식적인 답들을 한다. 내가 ‘파트너’에게 화가 나는 건, 어쩌면 그들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인간과 유사하다는 사실이 주는 불편함 때문인지도 몰랐다.”_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