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를 인정하라는 요구는 어떠한 의미인가? 여성들 사이의 차이, 그 차이들에서 비롯된 목소리 크기의 차이는 여성을 단일한 존재로 빚어냄과 동시에 어떤 여성들의 억압을 지워낸다. 쉽게 말해, 여성이라는 단일한 존재를 말할 때 부유한 엘리트 여성의 목소리가 여성을 빚어낼 위험이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번 더 지워진 여성들은 자신을 인정하라는 투쟁을 해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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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가 지식을 생각할 때, 그 지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는 그러한 지식이 어떠한 존재들을 없는 존재로 가려내어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는지에 대해서 사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찰이란 어떤 것이 옳고 그르냐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는 특정한 방식을 되돌아봄으로써, 내가 어떠한 맥락에서 권력자로서 지식과 영합하는지 사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뻔하지만 되돌아보고 되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외연이 넓어질 수 있다. 소수자의 숙명이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결국 나부터 바뀌어야 남이 바뀌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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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을 하면 할수록 구렁텅이에 빠지는 느낌을 받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언제나 말을 꽤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질문할 때면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할 때면 늘 문제가 발생했다. 나는 이런 상황이 몇 번이고 반복되고 나서야, 사람들이 나에게 진실로 궁금한 것을 물어본 것이 아니었으며, ‘나’는 그저 정해진 답을 인정받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페미니즘의 항복을 받아내고 싶었을 뿐이다. 그들은 성폭력이 권력의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그저 나를 궁지로 몰아 ‘남성은 여성에 비해 성욕이 크다’는 둥의 구닥다리 논리를 페미니스트의 입으로, 페미니스트의 목소리로 들어냄으로써 항복을 받아내고 싶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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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여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이들을 묵인할 때, 우리는 어떤 여성만을 대변할 수 있게 된다. 남성중심성을 폭력의 문제로만 받아들일 때 흔히 발생하는 문제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는 사실은 성폭력이 계급을 가로지른다는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은 안전한 동네에서 살 수 있고, 안전한 이동수단(예를 들어 자가용)을 이용할 수 있다. 집값이 비싼 동네일수록 보안이 잘되어 있고 폐쇄회로 카메라도 더 잘 관리된다. 폭력 이후의 상황도 다르게 펼쳐진다. 폭력 이후 어떤 사람들은 폭력이 발생한 공간을 떠날 수 있지만, 떠날 수 없는 사람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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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에 대한 연구는 시간을 가로지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노동을 노동의 양으로 측정한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시간으로 측정되며 시간으로 계산된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우리가 과거 잠에 들어야만 했던 그 시간들, 그리고 일을 할 수 없었던 그 공간들에서도 일을 하거나 소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24시간 노동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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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돌봄은 결코 빨라질 수 없다. 돌보는 행위는 그 자체로 이미 ‘느린 속도’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걸음마를 뗀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에게 빠르게 움직일 것을 재촉할 수 없다. 모든 세상이 신기한 아이에게, 길가에 시선을 두지 말고 앞만 보고 걸으라며 재촉할 수 없다. 걸음이 불편한 할머니에게 엘리베이터에 좀 빨리 타라고 타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돌봄은 타인의 상황에 나를 맞추고, 주의를 기울여 타인의 욕구를 읽어내고, 제공해야 하는 일이기에 본질적으로 느린 행위다.
--- p.142
결국 문제는 생산이고, 판매하는 구조에 달려 있다. 소비자는 물건의 값을 지불하는 사람이지만, 구조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아무리 우리가 친환경적 소비를 한다 하더라도, 친환경한 소비를 하지 않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존재할 때, 우리는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생산의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단기적인 이윤에 치중하지 않는 생산의 방식을 상상해야 한다. 우리의 이윤을 돈 그 자체에 둘 것이 아니라, 돈으로 계산될 수 없는 가치들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속 가능한 소비’를 찾을 것이 아니라, 가능하다면 소비를 줄여야 한다. 그래야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소비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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