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개개인과 권력자의 표현자유가 언론의 자유와 충돌할 수 있고, 표현의 자유는 다시 다른 이의 표현자유와, 그리고 언론의 경제적 자유는 언론의 내용적 자유와, 또 언론사주의 소유권적 자유는 언론 종사자의 직업적 자유와 수시로 갈등 상황에 놓이곤 한다. 그리하여 언론자유의 확장이 언론자유를 위축시키는 역설, 즉 누군가의 언론 자유가 다른 이의 언론자유와 모순 관계에 놓이는 역설이 발생한다.
---「여는 말 ‘탄탈로스의 형벌, 혹은 물난리 속의 마실 물 같은 언론자유’」중에서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서로 구분되는 자유가 아니라면 기자에게만 두 가지 자유를 모두 부여할 그 어떤 도덕적 명분도, 법적 근거도 없다. 반대로, 기자가 스스로에게 부여된 자유는 표현의 자유 단 하나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기자와 기자가 아닌 시민 사이에 아무런 권리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기만이다. 국가와 정부는 기자에게 일반 시민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은 공간과 정보에 대한 접근을 허락하고 있다. 기자는 매일 대통령실에서 대통령을 만나 질문을 할 수 있고, 외국 순방에 나서는 대통령을 취재하기 위해 대통령 전용기에 동승할 수도 있다. 시민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이 모든 ‘특권’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는가? 기자에게는 표현의 자유와 함께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누리는 특권이 있다.
---「1장 ‘언론의 자유는 언론을 위한 특권인가, 모두를 위한 자유인가?’」중에서
언론이 시민을 대리한다는 관념은 정말 허구적인 것일까? 최소한 자유주의에서는 그렇다. 시민과 동등한, 시민의 한 유형인 언론이 시민을 대리할 수 없고 시민의 알권리를 명분으로 언론에 부과되는 사회적 책무는 언론(과 그 소유주)의 언론자유에 대한 간섭이 될 수 있 다. ‘기레기 담론’과 같은 언론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대리자로서 의 무를 제대로 이행하라는 정당한 요구가 아니라 언론자유에 대한 심 각한 위협으로 간주된다. 언론을 사회적 제도로 인정하고 시민의 알 권리를 대리한다는 공적 기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
---「2장 ‘언론자유라는 도그마와 언론의 책무’」중에서
종이신문의 구독자수와 그에 바탕을 둔 구독료 매출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고, 그만큼 광고 수입과 (수익 목적의 컨퍼런스 개최 등, 언론 행위와는 거리가 먼) 기타수익사업의 비중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광고 재원의 질도 급격히 나빠졌다. 파급력은 물론 영향력과 신뢰성에 수반되는 ‘후광효과’에 대해 큰돈을 지불하던 광고주 대신, 페이지뷰 단위로 푼돈을 매겨주는 소형 광고주나 아예 기사 자체를 홍보도구로 활용하겠다는 광고주가 크게 늘었다. 이것은 언론자유를 ‘시장 행위의 자유’와 사실상 동일시했던 자유주의 상업언론이 맞부딪힌 필연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디지털 플랫폼 주도의 저널리즘 기술 환경 변화와 그에 부응하여 자신의 문화적 권위를 효과적으로 재구축하지 못했던 언론 자신의 실패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기술 환경의 변화와 그에 따른 문화적 권위의 상실, 또 그에 결합되어 나타난 경제적 재생산 구조의 불안정성 증대. 바로 그것이 현재 언론 문제를 ‘신뢰의 위기’라는 틀을 통해 진단하는 배경이다.
---「3장 ‘언론자유 개념의 사회학적 실패 혹은 자기과장’」중에서
이런 상황에서 언론자유는 언론의 무한 경쟁을 보장하고, 자본의 언론 지배를 공고하게 해주는 도구로 사용된다. 언론이 자본주의하에서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할 때 언론자유는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따라서 경합적 민주주의에 기반을 두고 사회적인 담론의 경쟁을 활성화하려는 노력과 함께, 언론 환경이 점점 더 기득권을 옹호하고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현상을 해소하려는 비판적인 디지털 정치경제학 차원의 노력이 함께 중요해지게 된다. 이러한 사회철학적인 기반 위에 실질적으로 수용자들이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볼 수 있다. 현재 언론 수용자 입장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방안은 우선 언론 수용자노조를 결성하여 주목 노동의 착취가 이루어지는 것과 비례하여 수용자로서 정당한 권리와 통제권을 가져오는 것이다. 또한, 현재 언론의 콘텐츠가 불만스럽다면 과감한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 운동의 한 형태로 ‘언론 보지 않기 운동’을 펼쳐가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은 언론을 거부하는 운동이 아니라 언론을 시민의 통제권하에 두면서 공론의 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장치로 거듭나게 하려는 것이다.
---「4장 ‘언론자유의 패러독스와 시장 모델의 실패’」중에서
현재의 불평등과 소외 및 자유의 침해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표현의 자유 개념을 소통의 권리 개념으로 대체해야 한다. 사회적 소통과정에서 특정 언론과 집단 및 단체만이 표현의 효 과를 독과점하고 있으며 시민들은 단절되어 있거나 고립되어 있는 상태에서 독백적으로 표현할 뿐이며, 종종 적극적으로 서로를 배제하거나 혐오한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소통의 권리로 전환하기 위해 소통의 기본적 원칙들을 확인하여 이를 토대로 해당 헌법의 개정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 언론과 시민과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새롭게 구성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급진적인 소통 공간의 창출이며 그것의 핵심적 조직 원리로 ‘평등성’, ‘수행성’, ‘상호성’이 되어야 한다.
---「5장 ‘표현의 자유에서 소통의 권리를 위한 헌법 개정’」중에서
우리 언론은 국가에 의해 억압받는 다른 언론과 취약한 시민을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사용하지 않으며, 자신의 주인인 시민과 자신의 자유를 가능케 하는 민주주의를 위한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 …언론 문제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것처럼 추앙되는 언론 자유 개념은 이런 상황을 정확히 포착하는 수단으로서 한없이 부족하며, 문제해결로 나아가는 교두보를 제공하지 못한다. 따라서 언론 자유 개념은 신뢰, 자율, 책임 개념에 의해 보완되거나 대체될 필요에 직면해 있다.
---「맺는 말 ‘언론자유의 딜레마와 저널리즘의 역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