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생 가능성이 높은 두 번째 이벤트 리스크는 지정학적 리스크입니다. 이는 보다 현실적인 이슈인데요. 지정학적 리스크의 핵심 문제는 글로벌 거버넌스(지배구조)입니다. 국가 통치체제의 혼란으로 글로벌 문제에 대한 공조 시스템이 파괴되는 것이죠. 국가 간 공조 시스템의 파괴는 글로벌 차원의 다른 중요 리스크(환경, 경제, 기술, 사회)를 적기에 대처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지정학적 리스크의 구성 요인 중 산발적인 테러의 가능성은 낮아졌다고 평가되고 있으나 주요 지정학적 리스크인 국가들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2022년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미국과 유럽연합이 다시 러시아에 대해 초강력 경제제제를 가하면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습니다.
--- p.25~27
소련 붕괴 이후 세계질서를 바라보는 시각은 ‘문명의 충돌로서 대립이 지속된다’는 새뮤얼 헌팅턴의 비관론과 ‘서양의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승리로 역사가 끝났다’고 선언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낙관론으로 나눠집니다. 그러나 대륙 세력을 대표하는 소련은 붕괴했지만 유라시아주의의 계승자 러시아는 해양 세력에 의한 일방적인 국제정치질서에 대항하여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따라서 독일을 중심으로 한 중부 유럽과 연대를 강화해서 해양 세력인 미국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동방정교회에 속하는 루마니아,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그리스 등 동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와 결합을 통해 해양 세력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지요. 소련국가였던 벨라루스, 몰도바뿐 아니라 카톨릭교도가 많은 우크라이나 서부 세 개 지역을 제외하고 동남부는 러시아에 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p.76
1990년대 냉전체제가 종식되면서 사회주의가 더 이상 중국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지면서 변화를 시도하는 중국은 새로운 정치철학이 필요했습니다. 사회주의 중국이 가진 규범력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가치를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서구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국제사회의 규범 질서를 중국화하는 것은 물론 중국 내의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자신의 전통으로부터 자원을 찾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중국은 한편으로 반식민지의 역사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주권규범질서를 자신의 정체성에 맞게 재구성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 동아시아의 국제규범이었던 자신의 전통에서 중국 특색의 국제규범질서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 p.95
‘투자 대상 국가를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 그리고 언제 투자할 것인가?’ 투자를 목적으로 한 나라를 분석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안정적인 경제 성장 능력’일 것입니다. 이를 국가의 탄력성 또는 충격 흡수 능력이라고도 합니다. 평상시에는 모든 국가가 잘될 것처럼 보여서 투자 대상 국가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일색이지만, 위기가 발생하면 거품이 빠진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투자 대상 국가에 대한 분석은 해당 국가가 경제적, 재정적, 정치적 충격을 겪을 때, 국민의 수입이나 부에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고도 의무를 어느 정도까지 다할 수 있는지 집중적으로 분석합니다.
--- p.157
최근에는 개별 기업의 ESG 평가를 넘어 그 기업이 속한 국가의 ESG 평가(소버린 ESG 평가)가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무디스, S&--- p, 피치와 같은 글로벌 신용평가 회사들은 기존의 정부 신용평가 등급에서 ESG 요인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어떤 국가에 투자할 때 정치사회적인 요인들을 주의 깊게 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정책 컨설팅회사 유라시아 그룹을 설립한 이안 브러레머는 ‘J커브’라는 개념으로 정치사회적인 요인과 지정학적 요인이 중요한 투자 리스크라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들도 정부신용등급을 평가할 때 사회적 리스크와 정부의 거버넌스를 분석했고, 국가별 등급을 평가할 때 일정 부분 고려했습니다. 따라서 해당 국가의 정치 제도적 투명성을 분석하는 중요한 요소로 법치, 정부의 효율성, 언론의 자유, 부패 등의 이슈를 다루곤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기후 변화를 중심으로 한 환경 리스크가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사회적 리스크와 거버넌스도 좀 더 분명하게 평가에 반영될 것으로 보입니다.
--- p.197~199
중국은 사회주의일까요? 현재 중국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정치철학은 무엇일까요? 명목상의 중국 정부의 정치철학은 사회주의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현재 중국 정부의 정치철학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자유주의는 더더욱 아닙니다. 시진핑 정부의 정치철학은 과거 마오이즘과 덩샤오핑의 사상에 더해, 신유학의 권위주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융합시키고 있다고 판단하는 게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시진핑 정부가 ‘공자’를 부각시키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유교 사상에 공산당의 일당독재를 옹호할 수 있는 중요한 사상을 끌어올 수 있기 때문인데요. 대표적인 것이 삼강오륜입니다. 권위적인 군신관계 등을 체계화하면서 제국을 통치할 수 있는 이념으로 발전시켰던 유학이죠. 원래 춘추전국시대 유학이 아니라 한나라시대 동중서에 의해 개념화된 유학을 말합니다. 이것이 현재 중국 공산당의 권위주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p.240
러시아에 대한 초강력 제재는 러시아 경제를 중국 경제권으로 빠르게 편입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미국이 중국에게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참여하라는 압력을 주어도 중국은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고 러시아와 긴밀한 경제, 외교, 군사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는 러시아 푸틴 정권이 고립되어 붕괴하면 다음 차례는 중국의 공산당 정부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미국의 압박에도 여러 가지 핑계를 들어 제재를 피해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오히려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을 비롯한 러시아의 많은 에너지 자원과 광물자원, 식량 자원이 중국으로 더 많이 수출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로 인해 중국과 러시아 간의 새로운 국제금융결제망뿐 아니라 무역에서도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위안화의 위상이 빠르게 높아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편가르기는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시기의 속도를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 p.315~316
미중 갈등이 2020년대 금융시장의 최대 리스크가 될 것으로 보는 이유는, 개별 정당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글로벌 패권 유지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뭐가 되든 돈만 벌면 되는 뉴욕과 달리, 워싱턴은 수십 년간 패권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상황입니다. 경제적으로는 2028년경 중국의 GDP 규모가 미국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고, 군사적으로는 2045년쯤엔 미국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만일 2020년대 미국이 중국의 도전을 제어하지 못하면 2030년대 이후에는 군사력은 미국이 앞서고 있지만, 경제력에서 중국이 앞서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위험한 이유는 이럴 때 상대를 저지할 방법은 군사적 충돌뿐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라함 앨리슨 교수는 『예정된 전쟁』에서 열여섯 차례 패권에 대한 도전 중에서 여덟 차례가 전쟁으로 귀결됐다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향후 10년이 중국을 평화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것입니다.
--- p.332~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