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가을, 구름이 하늘을 짓누르듯 뒤덮은 음산하고 고요했던 어느 날, 나는 온종일 혼자 말을 타고 유달리 황량한 시골길을 지나 저녁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에야 어셔가의 음산한 저택이 보이는 곳에 다다랐다.
---「첫 문장」중에서
내가 느끼는 이 공포를 이해하기란 전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 끔찍한 해역의 미스터리를 풀고 싶다는내 호기심이 절망감마저 넘어선 이상, 더없이 참혹한 죽음과도 타협할 수 있게끔 나를 이끌 것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어떤 흥미로운 지식을 향해, 아는 자는 파멸할 수밖에 없어 결코 밖으로 새어나갈 수 없는 비밀을 향해 곧장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조류는 우리를 남극으로 데려가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추정이 오히려 더 그럴듯하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 p.51
이제 나는 평범한 인간의 불행을 훨씬 넘어선 불행을 마주했다. 한낱 짐승이, 내가 하찮게 여겨 죽인 놈과 동족인 짐승이, 고매한 신의 형상을 갖춘 인간인 내게 견딜 수 없는 고민거리가 된 것이다. 아! 낮이든 밤이든 내게 휴식의 축복이란 더 이상 없었다! 그놈은 낮 동안 나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밤새 여러 번 극도로 공포스러운 악몽에서 화들짝 깨어나면 놈의 뜨거운 숨결이 내 얼굴에 닿았고 놈의 거대한 몸뚱이가, 떨쳐낼 수 없는 그 악몽의 화신이 내 가슴을 끊임 없이 압박했다!
--- p.101
엘레오노라가 본 것은 자신의 가슴 위에 얹힌 사신의 손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스러운 존재이지만 결국은 죽게 되는 하루살이와 같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엘레오노라에게 무덤의 공포를 안긴 것은 한 가지 생각 때문이었다. 땅거미가 내린 저녁 무렵에 침묵의 강둑에서 내게 털어놓은 말에 의하면 그러했다. 내가 엘레오노라를 오색빛 풀밭 골짜기에 묻고 나서 이 행복한 보금자리를 영영 등지고, 지금 그녀에게 내어준 그 뜨거운 사랑을 거두어 바깥세상의 다른 여자와 나의 일상에게 줄 것을 생각하면 슬퍼진다고 했다. 나는 즉시 엘레오노라의 발치에 몸을 던지며 엘레오노라와 하늘에 대고 맹세했다. 지상의 어떤 딸과도 결혼하지 않겠노라고. 어떤 식으로든 엘레오노라에 대한 소중한 추억이나 그 진실한 애정이 담긴 추억에 비추어 비겁한 짓은 하지 않겠노라고. 그리고 전능하신 우주의 지배자에게 내 진실하고 엄숙한 맹세의 증인이 되어달라고 청했다. 만약 그 약속을 어긴다면 저주를 받아도 좋다고, 여기 차마 적을 수 없을 만큼 끔찍한 형벌까지도 달게 받겠노라고 하느님과 엘레오노라, 엘리시움(사후 축복 받은 영혼들이 머무는 낙원 혹은 신의 은총을 입은 자들이 불멸의 삶을 사는 지상낙원-옮긴이)의 성인에게 맹세했다.
--- pp.172~173
결혼한 지 2개월째 접어들 무렵 로위나는 갑자기 병이 들어 좀체 낫지 못했다. 고열에 시달리며 편히 잠들지 못하는 밤이 이어졌다. 로위나는 반쯤 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탑의 방 안팎에서 소리가 들리고 뭔가가 움직인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저 로위나가 병 때문에 헛것을 보았거나 이 방의 몽환적 분위기 탓이겠거니 생각하고 말았다. 차도가 보이면서 완전히 회복되기도 했지만 결국 얼마 못 가 더 심하게 몸져누웠다. 원래 몸이 허약했던 로위나는 이후 다시는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갈수록 병이 더 위중해지고 빈발했기 때문에 의사들의 지식과 의술도 모두 소용없었다. 그것이 인간의 방법으로는 고칠 수 없는 지병으로 자리를 잡는 동안 로위나는 눈에 띄게 왈칵왈칵 성질을 부리는가 하면, 사소한 일에도 겁을 먹고 흥분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로위나가 그 얘기를 다시 꺼냈다. 이번에는 더 자주 더 끈질지게 말했다. 그 소리, 작은 그 소리가 들린다고. 그리고 전에 말했던 태피스트리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보인다고 했다.
--- p.223
어느새 나는 훨씬 더 중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어. 계속 그 가족을 지켜보던 중에 그들이 소리를 만들어서 서로에게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전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야. 그들이 때때로 입에서 뱉는 단어들은 듣는 사람의 마음에는 즐거움이나 고통, 얼굴에는 미소나 슬픈 표정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어. 이런 것은 가히 신이나 할 법한 학문이었어.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걸 습득하고 싶었어.
--- p.181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어. 드디어 심판의 순간이 찾아온 거야. 내가 희망을 품을지 아니면 두려움이 현실이 될지 결판이 날 터였어. 하인들은 이웃 축제에 가고 없었어. 주위는 고요했다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어. 하지만 막상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고 하자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 거야. 그만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버렸지. 나는 다시 일어났어. 내게 있는 모든 힘을 끌어모아, 은신처를 감추려고 헛간 앞에 놓아두었던 널빤지들을 치워버렸어.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자 힘이 솟았어. 다시 각오를 다지고는 그 집의 문으로 다가갔어.
--- pp.216~217
그곳에는 잔뜩 들뜬 사람들이 모여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미라는 식탁 위에 길게 누워 있었는데, 내가 들어서자마자 조사는 시작되었다. 그 미라는 몇 년 전 포노너의 사촌 아서 사브레타시 대령이 에일리시어 인근의 무덤에서 가져온 두 구의 미라 중 하나였다. 그 무덤은 나일강 테베에서 한참 올라간 리비아 산중에 있는데, 그곳의 작은 동굴들은 규모 면에선 테베의 무덤들만 못하지만 이집트인들의 사생활을 표현한 그림들이 풍부해서 큰 흥미를 자극한다. 우리의 표본이 있던 방에는 그런 그림들이 아주 많았다고 한다. 벽은 프레스코화와 엷은 돋을새김들로 빼곡히 뒤덮여 있었고, 조형물과 꽃병, 화려한 무늬의 모자이크 작품 들이 망자의 엄청난 재력을 암시했다
--- p.249
사슬에 묶인 그의 목에서 별안간 크고 날카로운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나는 그 소리에 거칠게 떠밀리듯 뒤로 물러났다. 잠시 멈칫하고 몸을 덜덜 떨었다. 양날검을 빼들고 벽을 이리저리 휘젓기 시작했지만, 언뜻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안정을 찾았다. 지하 묘지의 굳건한 구조물에 손을 대보니 마음이 놓였다. 나는 다시 벽으로 다가가서 고함을 지르는 그에게 응답했다. 그의 고함을 되받아치고 더 보탰다. 성량과 힘에서 압도해버렸다. 내가 그렇게 나오자 고함은 잠잠해졌다.
--- p.311
그러던 중 폭풍우가 치던 어느 밤, 깊은 잠에서 깨어난 메첸거슈타인은 미친 사람처럼 방에서 내려와 황급히 말에 올라타고는 미로 같은 숲을 향해 달려갔다. 워낙 흔히 있는 일이라 당시에는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그가 성을 비운 지 몇 시간이 지났을 때 집에 있는 사람들은 그의 귀가를 간절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걷잡을 수 없이 날뛰는 거센 불길에 거대하고 위풍당당한 메첸거슈타인 성의 토대가 쩍쩍 갈라지고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불길은 처음 발견되었을 때부터 이미 심하게 번진 상태였다. 성의 일부라도 구해보려는 노력이 모두 부질없어 보였기에 이웃 주민들은 놀란 기색 없이 무심히 손을 놓고 그저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하지만 처음 보는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곧 군중의 주의를 끌었다.
--- p.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