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알까. 내가 당신들이 계속 쓰고 읽기를 은근히 바란다는 사실을. 대신 나의 격려나 나의 칭찬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당신들 예측불허한 생으로 인해 그러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그들이 계속 쓰기를 바란다. 오늘 쓴 것이 아주 별로일 수 있고, 영 마음에 안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2030년이 지나도 그들이 계속 쓰고 있다면 나로서는 그들의 시를 읽고 싶어질 게 분명하다. 내가 그러했듯이 그들도 그들의 독자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게 어떤 기분인지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좋다, 신기하다’ 외의 다른 이야기를.
---「좋다, 신기하다 말고」중에서
뭔가를 남기려고 시를 쓰는 건 아니다. 불행한 시간이 내내 고통으로만 채워져 있지 않듯이, 행복한 시간도 내내 기쁨으로만 채워져 있지는 않다. 속절없이 살며, 살아낸 시간을 시로 쓸 뿐이리라. 인생의 꽃같이 아름다운 시절이 그 쓰는 시간에 있으리라, 나는 주장하고 싶다.
---「호─시: 시를 선물하는 일에 대하여」중에서
‘대접하기’는 시를 쓰기 위한 밑작업 중 하나다. 잘만 하면 그대로 시가 되기도 한다. 그 시, 그 음식, 훌륭할 것이다. 물론, 천사가 음식을 엎어버릴 수 있다. 그러면 울면서─혹은 화내면서─치우는 것까지 차린 사람이 알아서 다 해야 한다. 거기까지가 대접하기로써 시를 쓴다는 의미다.
---「얘들아, 무엇을 대접할래」중에서
시는 혼자 쓰는 것이지만, 사실은 혼자서는 쓸 수 없다는 것, 타인의 소원과 타인의 고통은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것을 잊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나만의 고통이라고 썼는데 타인의 고통과 연결되는 경우도 잦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타인의 고통에 닿는 일을 피할 길이 없다. 타인의 고통을 잘 다루는 방법을 가르칠 수 없어서, 나는 타인에게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쳤다.
---「“깨끗한 돈을 줄게”─채에게」중에서
지금까지 내가 유일하게 제 의지로 가질 수 있던 빈 것은 흰 종이뿐이었습니다. … 집이 작고, 좁고, 오래 머무르셨을수록, 빈 벽이 없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흰 벽이 있든 없든 괜찮습니다. 우리에겐 흰 종이가 있습니다. 가세요. 등 뒤를 겁내면서 가세요. 겁이 안 난다면, 겁내는 사람처럼 흉내를 좀 내보면서 가세요. 호랑이 앞으로, 절벽 앞으로, 흰 종이 앞으로 가세요.
---「이리 같은 이불 같은 나 같은」중에서
나는 인간이 하는 일을 찾다가 인간이 아닌 것을 찾고, 거기서 도로 인간을 찾는다. 의식하고 보니 그런 고리 속에 있었다. … 이 고리를 타고 도는 일은 내가 잘하는 일이고, 좋아하는 일이다.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러나 늘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 나는 왜 이 고리 바깥으로 나가고 싶을까? 인간도 비인간도 아닌 종족을 발견하고 싶다. 바깥에 아무것도 없다는 말, 바깥 따위는 없다는 말, 애초에 고리는 안팎 구분이 모호하다는 말, 그런 말 바깥으로.
---「고리」중에서
한 시간 정도 더 끙끙거린 후 접어낸 것은 아름다운 금붕어 한 마리였다. 지요가미가 제 진가를 뽐내는, 내가 봐도 잘 접은 하늘하늘한 금붕어! 주말에 나는 그걸 조심히 들고 가 친구에게 주었다. 친구는 기뻐하며 그걸 받았다. “우와, 화려한 개구리네! 귀엽다!” 아닌데. 나는 금붕어를 주었는데 친구는 개구리를 받았다. 이것 역시 시 같았다.
---「나는 금붕어를 주었는데 너는 개구리를 받았네」중에서
놀이는 ‘노릇’과도 비슷한 것 같다. ‘사람 놀이’에 숙달되면 어느덧 사람 노릇이 수월해진달까. 눈 감기 놀이를 해야 혼자 잠들 수 있었고, 뜀뛰기 놀이를 해야 팔다리를 움직여 뛸 수 있었던 어린애를 어른들이 잘 봐준 덕에 나는 이제 제법 사람처럼 보인다.
---「사람 놀이」중에서
도대체 ‘시인’이란 뭘까. 대화를 이어가기 애매한 이 직업, 나의 생계와 낯선 이에게서 얻을 수 있는 호감도를 전혀 책임져주지 않지만, 정신과 마음, 위엄, 내가 말하지 못하는 나의 모든 고충을 책임져주는 이 직업. 과연 언제쯤 나를 전혀 모르는 낯선 이에게 나 스스로를 시인이라고 소개할 수 있을까.
---「신뢰할 수 없는 직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