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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국영 | 창비 | 2023년 01월 2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1 리뷰 14건 | 판매지수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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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1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310g | 122*188*20mm
ISBN13 9788936438975
ISBN10 8936438972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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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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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장례식장에 나타난 것은 새벽 세시 무렵이었다. 처음에 그들은 선뜻 실내로 들어오려 하지 않았는데 공교롭게도 나 역시 그들을 들이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들이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꼬락서니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구성은 남자 셋 여자 하나였다. 그중 가장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는 흠잡을 데 없는 스킨헤드였다. 스킨헤드는 중세 스칸디나비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텁석부리였으며 키가 작고 몸이 단단해 보였다. 또다른 남자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30대를 넘길 것 같지 않았다. 그의 나이가 짐작되지 않는 것은 순전히 헤어스타일 때문이었다. 먹칠한 바가지를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풍성하고 둥근 머리모양이었던 것이다.
---「볼셰비키가 왔다」중에서

“아들, 사랑하는 거 알지?”
“알죠. 잘 알죠.”
모른다고 할 수 없었다. 정말 알 것 같았으니까. 이상한 얘기였다.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할 수 있다니. 나는 내 아버지를 아버지라는 이유로 증오했다. 지금이라면 말해도 좋지 않을까. 오늘 술자리를 시작했을 때부터 끄집어내고 싶었던 본심을, 기억을 더듬고 시간을 장황하게 역행해도 서두조차 꺼내지 못한 이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좋을까.
---「태의 열매」중에서

“보이, 이 곡을 좋아하나?”
스킨헤드가 물었다. 로니는 눈도 뜨기 힘들 정도로 뭇매를 맞은 직후였기 때문에 대답하기 곤란했다. 누군가 로니의 입에 담배를 물리고 불을 붙였다. 말보로 레드였다. 역시나. 그것은 로커의 담배였고 로니 역시 말보로 레드를 피웠다. 로니는 깊숙하게 연기를 빨아들였다. 그러자 방금까지 폭격이 쏟아지는 듯한 소리만 들리던 귓속으로 에디의 기타 솔로가 파고들었다. 로니는 피떡이 된 눈을 억지로 뜨고 달 가까운 곳으로 승천하는 리프트를 바라보았다. 멋지군. 내가 원하던 광경이야.
“방금 좋아졌습니다.”
스킨헤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리고 그는 아주 낮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했는데 그 소리가 로니에게는 또렷했다.
“이제 마저 맞자.”
---「헤드라이너」중에서

BAR-K의 입구는 허름하기 짝이 없었으나 은근하게 새어 나오는 기품을 숨기지 못했다. 순전히 발밑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음악 덕이었다. 그 음악이란 메인스트림 팝에 조금이라도 소양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라, 이 노래가 왜 나와? 하는 마음으로 걷는 속도를 늦출 만한 것들이었다. 빗대자면 엘비스가 나올 대목에서 클리프가 나온다거나 마이클 말고 프린스를, 너바나를 틀어놓을 바에는 펄 잼을, 용필 대신에 영록을 선곡하는 미묘함이었다.
---「바크」중에서

금기를 깼더군.
지향성이 결여된 음성이었다. 외부에서 들려온 소리가 아닌 내부로부터의 송신에 가까웠다. 허술하게 빗대자면 자신에게 복화술로 말을 걸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가로등 불빛을 등진 누군가의 앞에 나는 서 있었다. 벤치에 앉아 있는 그의 머리 위로 어떤 형상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본 뒤에야 그것이 날개를 접고 도사린 날짐승임을 알 수 있었다. 새,라는 단어가 입술을 비집고 나오기 직전 또다른 누군가에 의해 고개가 처박혔다.
---「비둘기, 공원의 비둘기」중에서

현도가 나를 버리고 배달을 그만둬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도림은 새로운 오토바이를 훔쳐 오자고 제안했다. 현도는 노발대발하며 도림을 윽박질렀다. 경찰이 절도범을 잡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또다른 범죄를 저질러서 좋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도림에겐 당장 자신이 느낀 모멸감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무리에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도림은 오토바이가 필요했다. 훔친 물건이면서 값비싼 오토바이가.
---「오토바이의 묘」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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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거나 저항하는 것에 민감한 임국영 소설의 인물들은 겁도 많고 조금은 유약하다. 볼셰비키, 파리 코뮌, 사보타주, 스킨헤드, 파르티잔… 다가올 자신의 장래마저도 견딜 자신이 없지만 청년들은 입만 열면 온갖 멋진 말만 한다. 그럼에도 결국 비판의 화살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리는 착한 성정. 그들이 원하는 것은 사실 본래의 그 자유다. 얼마나 오랜만인가, 이런 소설을 만나는 것이! 이 소설이 소설 리스너들 사이로, 현실의 벽에 지친 시민들에게로 멀리멀리 퍼져나가기를 바란다.
- 강영숙 (소설가)
나란히 하나의 사건을 경험해도 당신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는 다를 수 있다. 어느 부분이 과장되기도 하고 없던 사실이 생겨나기도 한다. 말하자면 감정, 그것 때문이다. 사람은 감정 덕분에 살고 감정 때문에 망한다는 것을 『헤드라이너』를 읽으며 새삼 느꼈다. 농담이 묻어 있는 서사를 따라가다보면 농담조로 넘기기 어려운 기분이 뒤따른다. 슬픈데 부끄러운. 열 받는데 실소하는. 곳곳에 담긴 옛 노래들처럼 감겨오는 이상한 마음들. 이 소설집의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를 때 나는 세상이든 당신이든 어느 하나쯤은 괜찮기를 바라게 되었다. 당신이 누구든.
- 구현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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