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3년 01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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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392쪽 | 628g | 125*200*30mm |
ISBN13 | 9791170401544 |
ISBN10 | 1170401546 |
발행일 | 2023년 01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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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392쪽 | 628g | 125*200*30mm |
ISBN13 | 9791170401544 |
ISBN10 | 1170401546 |
머리말 1) 집1. 성북동 골짜기의 단칸방(1958년 9월~12월) 사회 초년병 야간학교의 매력 도배지 한 장만 붙인 신방 혼례식 신혼여행 생략하기 꽃분홍 치마 자장면 파티 예고 없이 오신 손님 2) 집2. 삼선교의 북향 방(1959년 1월~3월) 방 두 개만 있는 일각대문집 어항이 얼어붙은 방 현대평론가협회 키 큰 손님 3) 대가족 이야기 유산과 가독권家督? 아버님의 공작새 그 집안의 어른들 그 집안의 효도 풍경 아버님의 기도 ‘페닌슐라’에서 점심을 아버님의 노년 가는 정, 오는 정 4) 집3. 청파동 1가(1959년 3월~1960년 3월) 별채 같은 방 병든 여인의 모성 그 집에 온 손님들 남조 선생과의 만남 5) 집4. 청파동 3가의 이층집(1960년 3월~1961년 3월) 친구 집에 세 들기 셋방살이의 의미망 가난한 마님의 품위 장판 소동 4.19 6) 집5. 한강로 2가 100번지(1961년 3월~1963년 4월) 내 집 갖기 야밤에 들려온 총소리 교사와 학생 겸하기 텔레비전과 오디오 그 집에 온 문인 손님들 이 집 남자들 왜 이리 션찮아? 7) 집6. 신당동 304-194(1963년 4월~1967년 3월) 1963년 신당동 집수리 대궐 같은 집 남자아이의 엄마 되기 경이로운 신세계 1963년의 4중고 세 번째 아이 부록: 『흙속에 저 바람 속에』 그 집에 온 손님들 일터에서 만난 친구들 - 은인 같은 친구: 정금자 - 보호자 같던 연상의 친구: 김함득 - 갈대같이 하늘거리는 여인의 균형 감각: 서정혜 - 타고난 훈장: 이정자 에필로그 8) 집7. 성북동 1가의 이층집(1967년 3월~1974년 12월) 언덕 위의 이층집 연탄으로 큰 집 덥히기 ‘봉사와 질서’ 이웃 그 집에 온 손님들 부록: 《신상新像》 에필로그 9) 집8. 평창동 이야기(1974년 12월~ ) 소나무와 바위산 길이 넓어진 사연 파격적인 땅값 언덕 위의 하얀 집 하얀 집의 문제 그해의 산타클로스 1974년 평창동은…… 다람쥐와 꾀꼬리 이웃 “어떤 새끼들이 이런 데서……” 항아님 같던 세배객들 집 허물고 박물관 만들기 ‘오늘의 과업’과 ‘모든 날의 과업 ’ 너와 나의 쉼터 강인숙 집필 연도 |
결혼 하고 나서 달라진 것은,
지난 날을 이야기 할 때의 기준이 ‘집’이 되었다는 점이다.
(보통은 이렇게 이야기했었던 것 같다. “엄마, 나 고등학교 때 그거 기억나?” 와 같이 나이를 기준으로 이야기하던 것이)
“우리 미남집 살 때 있잖아.”
“우리가 수영집 살 때 거기서 둘째가 태어났잖아”
결혼이란 것은 필연적으로 몇 번의 이사를 동반하게 되는데, 예컨대 동반자의 이직이라든가, 새로운 가족 구성원의 탄생으로 인해 우리는 예정에 없던 이사를 하게 된다. 그래서 결혼생활에서 지난 날의 기준은 년도(year)와 본인의 나이보다 그 때 살았던 집이 쉽게 기준점이 된다.
<글로 지은 집>은 ‘구십 동갑내기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주택 연대기’라는 부제를 달고 출간되었다. 강인숙 작가님은 최근 타계한 이어령 선생님의 반려자로, 이어령 선생님과 함께 한 평생을 살았다. 작가님은 문학평론가로 활동했고, 국문학자로서 건국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는 영인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영인문학관의 영은 이어령선생에게서, 인은 강인숙작가님의 이름에서 한자씩을 따와서 지은 것이 겠구나 짐작해 본다.
강인숙 작가님의 신작 <글로 지은 집>의 제목은 두 가지 의미로 내게 읽혔다.
70년 세월의 동반자와 함께 한 인생 여정의 이야기를 글로써 적어내어 한 권의 책이 되어 그들이 살았던 물리적인 집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글로 지은 집이 되었고,
또 실제로 그들은 양가의 도움없이 빈 손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했는데, 부부 두 사람이 직업적으로(두분 다 신임 교사였다), 그리고 작가로서 써 낸 글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좀 더 나은 생활환경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그런의미에서 이 부부가 마지막에 지은 집은 실제로 글로 지은 집이 된 셈이다.
나는 때로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인생의 전반적인 것을 바꾼 결혼의 종착지에는 무엇이 있을까하는 좀 뜬금없는 생각. 어쩌면 이 책은 그런 물음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신혼부부는 단칸방에서, 더 이상 밖에서 데이트 한다고 돌아다니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아이가 생기며 셋방살이가 힘들어져
(주인집 어른이 이제 갓 혼자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대청마루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고는 지나가면서 “개 발 같다”고 이야기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는 이사를 결심했다. 그 심정을 너무 공감한다.)
사람들은 운이 막힌다며 택하지 않는 골목 끝에 위치한 막다른 길에 속하는 집을 얻게 된다. 그러나 거기에는 작은 마당이 있고, 부부가 집 주인 이었기에 그들은 그 작은 집만큼의 자유를 얻게 된다. 나는 산 중턱에 위치한 작은 평수의 아파트에 오기 전까지는 전세살이를 했었다. 주인집의 눈치도 보았고, 라이프 스타일이 판이하게 다른 이웃과의 공동체 생활도 겪었다. 이전에 살던 집보다 방이 하나 작은 집을 얻어서 보금자리를 잡았지만, 나는 그 어떤 자유보다도 큰 자유를 느끼며 5년을 여기서 살고 있다.
사 년 동안에 네 번이나 셋방을 바꾸면서, 같은 공간에서 남과 같이 사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복잡한 것인가를 실감했기 때문에,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게 된 것이 무조건 고마웠다. 작으나마 침실이 생긴 것도 좋았으며, 골목이 조용해서 아이가 마음 놓고 놀 수 있는 것도 감사했다. 그 네모난 작은 테두리가 그때 우리 자유의 폭이었는데, 그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p140
지금은 도로명 주소가 흔하게 편히 쓰이고 있지만, 그 시절 성북동, 청파동1가, 청파동3가, 한강로2가 100번지와 같은 동네를 부르는 지칭은 사뭇 정겹게 느껴진다. 나는 그 시절의 서울 모습을 거의 모르지만, 이야기를 읽으며 내 머릿속에는 글에서 보여주는 풍경을 그대로 상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셋방에서 첫 내 집을 얻었을 때의 행복한 감정을 공유하면서 나 역시 이 작은 집에서 느끼는 평온함을 다시금 떠올리곤 했다.
뜨는 해 밖에 볼 수 없는 어두운 집에서 우리는 5.16을 겪었고, 화폐개혁도 겪었지만, 첫 집은 첫아이 같아서 좋았던 일들만 생각난다. 한강로 2가 100번지. 번지수도 간결하고 이쁜 그 집을 우리는 본적지로 삼았다. 분가해서 따로 호적을 만든 것이다. 그 집에서 1961년 사월부터 만 이년 간을 살았다. 우리의 이십 대의 마지막 세월들이다.
p155
낮 동안 일을 하면서 생채기를 많이 입었다. 마음에 그대로 날아와 박힌 화살같은 말들이 계속해 떠올라서 집에 돌아와서도 울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고 하는 독후활동까지 이 모든 과정의 효용이란, 온전히 여기에 집중하여 마음에 어떠한 근심과 잡념들이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한다는 것. 그래서 저녁시간에는 옛 서울동네의 정취를 떠올리며 이 책을 한 장 한 장 읽어 마침내 이번 주 책 읽기를 마치게 되었다.
때로는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치이는 내 인생도 이렇게 수십 년의 세월을 지나 당도한 곳에서는 이를 글로써 남겨 지은 집이었음 좋겠다. 오늘은 이 책에 고맙다. 글로 지은 집에서 나도 현실의 시련을 잊고, 작은 집, 큰 집, 양옥 집, 적산가옥 등 다양한 집에서 작가와 함께 살았다. 아직도 젊은 치기에 흔들리는 내게 와 닿은 마지막 문장을 갈무리하며 글을 마친다.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수 없듯이, 사람은 누구도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살 수는 없다. 제왕에게는 혼자 있을 자유가 없고 돈이 많은 사람이 자식이 없거나 건강이 나쁠 수도 있으며, 젊고 건강한 남녀들이 후라스코의 <제8요일>처럼 사랑을 나눌 방이 없어 힘들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조용히 산다. 평창이라는 동네 이름이 소리도 의미도 아름답지 않고, 앞으로도 전철이 들어올 가망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곳은 여전히 시설 외 지역이지만, 앞에도 뒤에도 산이 있다. 그래서 김남조 선생처럼 “아름다워서 고마워요”라고 나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향해 말한다.
p368
*Yes24리뷰어클럽 자격으로 쓴 서평입니다.
동갑내기 부부로 90 평생을 함께 하면서 살아 온 이야기가 평범한 듯 하면서도 한 가족의 역사를 넘어선다. 그 시대를 함께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저자 강인숙 님은 전 문화부 장관 이어령 선생님과 서울대 동기동창이었으며 아내, 세 아이들의 어머니로서의 삶을 성북동 신혼 시절부터 지금의 평창동 영인문학관에 다다르기 까지 그 여정으로 기록하였다.
한 가정의 탄생과 90 평생까지의 삶을 기록하였다 하면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르게 되는지는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실제 책 뚜껑을 열게 되면 첫 페이지부터 너무 재미가 나서 계속 그 다음 편을 찾게 되면서 읽게 된다. 6.25 전쟁을 겪어낸 어머니 세대와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피난을 했던 삶, 그 당시에는 저자가 어려서 모든 것을 어른들에게 의지해 왔었지만 첫 아이의 어머니가 된 후 겪게 된 4.19 와 5.16 의 총소리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떻게 피난을 가야 하나 고민하게 했던, 역사 속 주인공이었기도 했다. 고등학교 교사 일을 하면서도 대학원에 다녔었고 밤새 어린애를 안고 달래면서 논문을 써야 했던 워킹 맘의 원조, 그 고생이야 말로 글로 다 써 낼 수가 없었을 것이나 이사를 다니면서 집을 넓혀가고 그 집을 찾아왔던 방문객과 친구들, 은인들을 잊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유명한 시인, 문인들, 학교 제자들과의 교류, 그들과의 에피소드, 사는 동네에서마다 찾아 온 방문객들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그 때의 생활과 삶도 뚜렷하게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잊을 수 없는 사람들 소개에서는 학교에서 친분을 쌓게 된 사람들과 서로 힘들었던 그 시절에도 의지가 되어주고 힘이 되어 줬던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재미있으면서도 감동적으로 읽었다. 지금은 연배들이 많아지면서 먼저 떠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서로 맨 끝에 죽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는 내용에서는 약간 울컥하기도 했다. 서로 친하게 지내오던 사람들이 먼저 떠나고 홀로 남는 생활이 얼마나 힘들지 간접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어령씨는 내게 좋은 것을 다 주고 싶은 그런 남편이었다." 이 글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남편을 사랑하고 공경하였던지를, 온마음으로 사랑하였고 그리고 행복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힘든 시대, 근대화가 막 시작되던 그 시대의 새댁으로 워킹 맘으로 아이들과 남편의 뒷바라지를 도맡아 해 왔던 선생님이자 평론가의 서재 만들어 가기, 남편과 아내 모두의 서재를 위해 한 집에 서재 두 개 만들기와 아이들을 위한 방 늘려가기 과정이 이렇게 감동까지 주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바이다.
결혼한 지 사 년이 된 맞벌이 부부가 국민주택 수준의 집을 마련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는 것은 그 무렵 우리나라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때는 온 국민이 모두 가난한, 절대빈곤의 시기였고 그중에서도 문인들은 더 가난했다. 직장을 구하기 어려워서 대부분의 문인들이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용 집필실이 있는 작가들이 많은 요즘 문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처절한 빈곤이었다. 글을 쓰라고 제공하는 작가의 집 같은 것은 상상할 수도 없던 시기의 이야기다. p.182
빈손으로 시작해 원하는 집을 찾기까지 십육 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동갑내기 부부의 주택 편련의 연대기를 그리고 있는 책이다. 결혼을 하게 되면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이 들어가 살 장소, 바로 집일 것이다. 이 부부에게 집이 필요한 이유는 거주의 목적 외에 하나가 더 있었다. 바로 글을 쓰는 남편과 아내 모두에게 각각의 서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어령, 강인숙, 두 사람 모두 대학교수였고 글 쓰는 사람이었기에 그들 부부의 집에는 두 개의 서재가 필수적이었다. 특히 강의 준비나 평론, 논문 등은 책을 많이 펼쳐 놓고 써야 하는 글이어서 다른 곳에서 쓰는 것이 불가능했다.
결혼 후 한 동안은 단칸방에서 살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구석에서 밤을 새워 글을 쓰면, 나머지 가족은 불빛 때문에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들이 서재가 두 개인 집에 장착하기까지 그들은 집 때문에 항상 쪼들리는 살림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렇게 이 책에는 1958년 성북동 골짜기의 단칸방에서 시작해 1974년 마침내 평창동 집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과 영인문학관을 설립해서 운영 중인 현재가 모두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많은 공간을 거치며 살아 왔던 부부의 삶이 고스란히 스며 들어 있다. 청파동, 한강로, 신당동, 성북동, 그리고 평창동에 이르는 시간들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그들 부부가 일곱 번의 이사를 거쳐 마침내 원하는 크기의 집을 짓는 데 성공한 것은, 1974년의 일이었다. 그들은 사람도 집도 하나도 없는 텅 빈 산 중턱에 외딴집을 지었다. 아이가 셋이었고, 부부 각자를 위한 서재를 위해 방이 아주 많은 큰 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정말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혈족들을 떠나보내는 와중에도, 눈앞에 다가와 있는 삶은 우리에게 '오늘의 과업'을 수행할 것을 강요한다. 현실은 슬프다고 봐주는 법이 없다. 빅토르 위고의 말대로 "오늘의 과제는 싸우는 것" 이어서, 사람들은 장례를 치르면 곧 그 싸움터로 돌아가야 한다. 대학 교수들은 부모님 상을 당해도 닷새 후부터 강의를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요, 현실이다. 그래서 나도 아버지처럼 결국 털고 일어나 집짓기를 마무리했다. 어쩌면 그 바쁜 일정 덕에 그 기간을 살아남았는지도 모른다. p.380
이어령, 강인숙 부부가 십육 년 동안 살아온 여덟 곳의 집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힌다. 도배지 한 장만 새로 붙인 방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하고, 머리맡에 높은 어항이 얼어붙어 있을 정도로 방이 냉골이었던 날도 있었고, 학교 선생으로 일하며 받는 보너스가 이만 오천 원이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4.19와 5.16을 동네 한복판에서 목도했던 순간들과 박경리 선생, 김지하 시인 등 문인들과 교류하던 시간과 대가족이 북적이며 살아온 풍경들도 페이지 가득 펼쳐진다.
이들 부부가 마흔한 살부터 일흔넷이 되는 2007년까지 삼십삼 년의 세월을 산 곳은 평창동 집이다. 세 아이의 결혼식도, 여덟 손자의 돌잔치도 그 집에서 치렀고, 열여섯 명의 대가족이 되어 북적거리며 삶의 전성기를 보낸 곳이다. 그러다가 부부 둘만 남는 세월이 온다. 아이들이 자라서 결혼을 하고, 독립을 하다 보니 신혼초처럼 그 넓은 집에서 둘이만 살게 된 것이다. 부부는 슬프고 외로운 마음을 공부하고 글 쓰는 일로 메꾸어 갔다고 한다. 하지만 집이 너무 커서 유지하는 일이 부담이 되기 시작했고, 결국 살던 집을 허물고 문학관을 만들 준비를 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현재의 영인문학관이다. 2001년 개관한 영인문학관은 해마다 2~3회의 기획전을 열고 있으며, 이어령 선생이 13년간 '문학사상'을 하면서 수집한 원고, 초상화, 편지 외에 문인, 화가의 부채, 서화, 애장품, 문방사우 등을 소장품으로 가지고 있다. 근대문학의 성숙기인 70~80년대 작가들의 자료를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 영인문학관의 특징이기도 하다. 글 쓰는 부부가 수십 년에 걸쳐 집을 마련하고, 그것이 결국 근대문학의 자료를 소장한 문학관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담백하면서도, 어딘가 뭉클한 여운을 남겨 주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