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대학생 때는 파워포인트 디자인 좀 하고, 엑셀 단축키 좀 쓰고, 달변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씹어 먹기도 했으나 회사에서는 누구도 나를 파티에 끼워주지 않는 이유다. “발표는 우리 옴스형이 최고지!” “형님, 저희 이번 조모임 같이 하면 안 돼요?” 모두가 중력처럼 나에게 이끌리던 시기는 딱 대학생 때까지다. 동네 초등학생들에게 인기 꽤나 있는 초등학교 6학년에 불과할 뿐이다. 일찍이 구축되어 있는 단단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느라 서로가 정신없는 조직생활 내에서 갑자기 등장한 동네 꼬마를 자신들의 세계에 끼어줄 여유는 없다. 오히려 신입사원은 먹이사슬 상단에 속하지 못한 어쭙잖은 선배 초식동물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2~3년밖에 차이나지 않는 선배들에게 나는 승진과 고과를 놓고 다퉈야 될 경쟁자다. 내가 너무 잘해도 곤란하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기분이 나쁘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생각이다. 누구도 나에게 선의를 베풀어야 할 의무가 없다. 오히려 내가 이빨을 드러내고, 더 크고 맛있는 먹잇감을 노리는 야생성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 먹이사슬 하단의 수많은 초식동물들은 나를 적대관계로 돌려버릴 것이다.
---「서문」중에서
우리는 왜 회사생활에 만족할 수 없는 것인가? 신입사원 시절 나도 그랬지만 우리의 회사생활이 불만과 불평, 부정적 인식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잘못된 기대’에서 출발한다. 큰 기대는 큰 실망을 낳는 법이다. 개봉만을 기다렸던 기대작이 상상 이상으로 엉터리일 때, 설렘을 가득 안고 시작했던 첫 연애가 생각처럼 떨리지 않을 때, 신나고 즐거운 일만 가득할 줄 알았던 대학생활이 생각만큼 극적이지 않을 때 등등이 그렇다. 사람은 끝없이 기대하고, 기대의 크기에 따라 만족과 실망을 반복하게 된다. 주체성을 갖고 다양한 활동을 선택적으로 하면서 자신감을 높여온 대학생들은 회사생활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 하루 빨리 난이도 높은 업무를 부여받아 탁월하게 실력 발휘를 하고, 조직 내에서 인정받는 상상을 하지만 조직은 내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 하물며 원하는 대로 팀을 짜고, 1주일 만에 뚝딱 과제를 끝내고 성적을 받던 패턴에 익숙했던 초년생 입장에서는 모든 것들이 기대와 다르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1장 회사게임 본격시작, 나는 Lv.1 신규유저다」중에서
MMORPG에서 모든 유저들은 레벨1부터 시작이다. 다른 게임에서 이름 좀 날렸다고 한들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새로운 게임에서는 모두가 동등한 규칙과 체계 안에서 레벨1부터 시답잖은 몬스터들을 때려잡고, NPC들이 던져주는 기본적인 퀘스트들을 수행하면서 성장해 나간다. 초반의 퀘스트들은 하나같이 지루하고 답답하기 짝이 없지만, 이런 과정이 있어야 게임을 지배하는 세계관, 스토리, 규칙, 체계 등을 이해하고, 단계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과제들을 수행해 나갈 수 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당연히 의욕이 넘친다. 수많은 공모전 참여와 인턴 경험과 자격증 취득으로 쌓은 실력으로 고난이도의 업무를 해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십 수 년 이상 먼저 회사에 들어와서 매일 8시간씩, 주 5일, 52주 동안 경험치를 쌓아온 선배들 입장에서는 이제 갓 게임에 입장한 레벨1의 갓난아이로 보일 뿐이다. 줄곧 내가 주인공이었던 대학시절과는 달리 직장생활에서 난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다. 특히, 레벨 10, 20, 30의 하이레벨 상급자들은 수없이 많은 전투와 전쟁을 거쳐 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이들이다. 기지만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필연적인 격차가 존재한다. 내가 그들과 경쟁하고 싶다면 파일 정리, 보고서 작성, 보고, 결재 등 단순 반복적이고, 하찮아 보이지만 반드시 거쳐야 되는 기본적인 업무부터 익히는 게 먼저다. 물론, 과도한 잡일과 업무 쏠림의 문제에는 대응이 필요하지만 상급자들 모두 동일한 과정을 거치며 체계와 규칙을 익히고, 평판을 쌓으며 그 위치까지 간 것임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도 알아야 된다.
---「1장 회사게임 본격시작, 나는 Lv.1 신규유저다 중에서
개인의 성과와 가치는 [Mental × Physical × Relationship]이라는 공식으로 결정된다. 내가 속한 시스템이 회사일 경우 아무리 많은 점수를 따도 최대치가 있다. 끊임없이 가치를 확대하고 싶다면 시스템을 벗어나는 게 핵심이다. 성공한 직장인을 넘어 어디에 존재하건 무엇을 하건 사회생활을 하면서 배운 좋은 스킬, 구축한 좋은 관계를 활용해서 최고의 아웃풋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 좋다.
---「1장 회사게임 본격시작, 나는 Lv.1 신규유저다」중에서
굵직한 의사결정일수록 나 같은 평사원들이 부대끼는 사무공간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높으신 분들끼리 높으신 분들의 방에 모여서 중대한 의사결정을 진행한다. CFO는 CEO의 지시에 따라 실장·그룹장에게 지시를 내리고, 실장·그룹장은 다시 부서장·팀장들에게 업무를 지시한다. 필자가 다녔던 플랜트 회사는 당시 부장 이상 급의 직급체계가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이사까지 존재했다. 보통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업무지시를 내리는 팀장도 위에서 내린 결정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같은 처지의 조금 더 강한 초식동물일 뿐이었다. 말단 사원인 우리는 ‘더럽고 치사해서 다른 회사를 가든지 해야지!’라고 근거 없는 호기라도 부릴 수 있지만 직급이 높을수록 ‘차선’은 지옥이고 ‘최선’은 생존이 된다. 팀장 직급은 하달 받은 업무를 누구에게 지시하고 분배하고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정도의 레벨이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잃는 건 많고 갈 곳은 없어지는 특성상 부하직원들의 불만을 상급자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2장 모든 스트레스는 잘못된 기대에서 출발한다_멘탈」중에서
회사는 ‘거대한 성과’ 하나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시켜도 빠르고, 정확하게, 꼼꼼하게 해내는 사람에게 믿음이 가기 시작한다. 1년, 2년, 3년이 되어서도 그 텐션을 꾸준하게 유지했을 때 더 단단한 신뢰가 쌓인다. 그러면서 ‘이 친구한테는 더 책임감 있는 일을 맡겨도 되겠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때문에 매일매일 작성해서 올리는 보고서는 곧 나의 분신이나 마찬가지다. 상사는 사소한 보고서 하나를 올려도 눈에 잘 들어오는 균일한 간격으로 그려진 표와 통일된 단위, 오와 열을 잘 지켜 배열된 텍스트, 오타 하나 없이 작성된 텍스트를 보면서 당신이라는 사람을 판단한다. 때문에 우리는 보고서 하나도 허투루 쓸 수 없다. 사회초년생 때는 그렇게 어렵고 답답했던 보고서 작성의 기본원칙은 1~2년 정도만 회사 짬밥을 먹으면 금세 익숙해질 수 있다. 여기서는 조금 더 빨리 깔끔하고 정돈된 보고서를 쓰고자 하는 초년생들을 위한 자잘한 팁들만 정리한다.
---「3장 기본스킬만 발휘해도 괴물 신입으로 시선집중!_피지컬」중에서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멀리 갈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사회생활은 더더욱 그렇다. 혼자서는 한 달 내내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의 보고서를 수십 페이지 정도 쓰는 게 고작이지만, 여럿이 머리를 맞대면 수조 원대의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공사를 수행해 제품을 납품하여 세상의 발전에 기여하는 거대한 업무도 거뜬히 해낼 수 있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려는 사람은 결코 높이 올라갈 수 없고 자기효능감에 취한 사람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 강력한 관계는 더 나은 결과, 더 높은 성장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4장 회사생활에 날개를 달아주는 기술_릴레이션십」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