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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1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72쪽 | 448g | 152*210*18mm
ISBN13 9788952246974
ISBN10 895224697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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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이라는 것은 네 말을 그대로 빌리면 ‘차이를 정립하겠다는 집념’ 외에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더 정확하게 학문의 본질을 정의할 수는 없을 거야. 학문을 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차이를 정립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어. 학문이란 차이를 정립하는 기술이야. 각각의 사람들을 구별할 수 있게 해주는 차이를 발견하는 것, 그것은 바로 그를 알게 되는 것과 같아.”
--- p.55

다만 자신의 내부의 삶만이 현실적이었다. 불안하게 두근거리는 가슴, 가슴을 찌르는 향수(鄕愁), 꿈속의 환희와 공포만이 그에게 현실적인 삶이었다. 그는 그 세계에 속해 있었고 그는 그 세계에 몸을 맡겼다. 책을 읽을 때나 수업 중에도, 동료들과 함께 있을 때도, 그는 갑자기 자기 자신 속으로 침잠해서 모든 것을 잊고 자신을 멀리 데려가는 내면의 격류와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그것들은 그에게 어두운 멜로디로 가득 찬 깊은 샘물을 보여주기도 했고 동화 같은 행동들이 넘쳐흐르는 알록달록한 심연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곳에 들려오는 소리들은 모두 어머니의 목소리와 닮아 있었으며 그곳에 반짝이는 수많은 눈동자는 바로 어머니의 눈동자였다.
--- pp.86~87

‘내가 사랑하고 추구하는 것은 신비이다. 나는 그것이 섬광처럼 번득이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예술가로서 나는 그것을 포착해서 표현하고 싶다. 언젠가는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위대한 어머니의 모습, 위대한 산모의 모습, 태초의 어머니의 모습, 이브의 모습을 띠고 있다. 그것들은 다른 형상들과는 달리 일정한 형태, 혹은 섬세한 묘사를 통해 표출되지 않는다. 그것은 탄생과 죽음, 선함과 잔혹함, 생명과 소멸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이 세상 자체의 위대한 모순이 함께 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모순되는 것들은 모두 함께 존재하고 있다. 이 우주적 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나만의 관념이 아니다. 내가 그녀를 생각해낸 게 아니다. 나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내 안에 살고 있다. 나는 그녀를 종종 잊곤 하지만 아주 자주 내게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 날 밤 아이를 낳고 있는 아낙네 곁에서 등불을 들고 있었을 때 처음으로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고 오늘도 다시 나타났다. 내가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의 이미지가 바로 새로운 이브의 이미지로 변했고 그 이미지 안에는 마치 버찌의 씨처럼 어머니의 모습이 박혀 있다.’
--- pp.211~212

“골드문트, 내가 자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네. 예술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시작한 거야. 전에는 사유나 학문에 비해서 예술은 진지한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지. ‘인간이란 정신과 물질이 혼합된 미심쩍은 존재이다. 정신은 영원에 이르는 인식의 길을 인간에게 열어준다. 반대로 물질은 인간을 끌어내려 인간을 덧없이 사라지는 것에 묶어버린다. 삶을 고양시키고 의미 있게 만들려면 감각적인 것을 지양하고 정신적인 것을 추구해야 한다.’ 겉으로는 예술을 높이 평가하는 척했지만 실은 속으로는 얕잡아 보고 있었던 거야. 오만했던 거지. 하지만 이제야 인식에 이르는 길이 그 얼마나 다양한지 알 것 같네. 정신의 길이 유일한 길도 아니고 또 최상의 길도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거라네. 물론 내가 갈 길은 그 길이고 나는 그 길 위에 남을 걸세. 하지만 자네는 나와 정반대되는 길, 즉 감각의 길에서 존재의 비밀을 깊이 포착해냈네. 그리고 그 어떤 사상가보다도 생생하게 그것을 표현해냈다네.”
--- p.317

“자네에게 진작 말해줄 수 없었던 것을 용서해주게. 주교관에서 자네를 감옥으로 찾아갔을 때나 자네의 첫 작품을 보았을 때, 혹은 다른 때라도 진작 말했어야 했는데 이제야 말해주겠네. 나는 자 네를 너무나 사랑한다네. 자네는 내게 너무나 소중하고 자네는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었네. 자네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 자네는 사랑에 익숙해 있으니까. 수많은 여자들이 자네에게 사랑을 속삭였으니까. 그러나 나는 전혀 다르다네. 내 삶에는 사랑이 부족했네. 내게는 인생의 최고가 결여된 셈이었지. 언젠가 다니엘 수도원장님이 내가 오만해 보인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분 말씀이 옳았네. 나는 사람들을 불공평하게 대하지는 않았어. 언제나 공정하고 인내심 있게 대하려고 노력했지. 하지만 결코 그들을 사랑하지는 않았어. 나는 박식한 사람을 언제나 좋아했고 약점이 있는 학자를 그 약점에도 불구하고 사랑한 적은 없었네. 내가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다면 그건 자네 덕분이야. 많은 사람들 중에서 오로지 자네만을 사랑할 줄 알게 된 거지. 그게 내게 무슨 의미인지 자네는 짐작도 할 수 없을 걸세. 그건 사막에서 솟는 샘물과 같은 것이고 황무지에서 꽃을 피운 나무와 같은 거야. 내 마음이 메말라버리지 않은 것은, 내 안에 은총을 향해 열린 자리가 남아 있던 것은 오로지 자네 덕분이라네.”
--- pp.33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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