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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2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172g | 125*200*20mm
ISBN13 9791192333618
ISBN10 119233361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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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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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새로 불을 피우고
핏물이 떨어지는 것들을 올렸다
죽은 고기인 줄 알았는데
불판에 눕자마자 저렇게
살 오그라드는 것 좀 봐

타는 냄새를 맡으며
끝의 냄새는 어디로 가서 사라질까

여기 잠깐만 더 있다 가자,
우리는 돌아갈 사람처럼 말한다

발밑엔 지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사람들
하늘 높이 오르는 열기구를 바라보며
우리는 카운트다운을 외치고 있었다
---「피크닉」중에서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살아남은 촛불은 하나씩 늘어
한숨으로 불어야만 꺼지는 미안한 촛불이 있고

방파제에 걸린 미역줄기처럼
접착력이 강한 생활은 잘도 살 것처럼 달라붙고

연인들의 마지막 포옹에는
있는 힘껏 나를 밀어내는 이별이 있다
---「미역국」중에서

나는, 물 같은 시를 쓰고 있는가, 물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가, 여름을 이루는 단단한 순간들을 나열하는 사람인가, 서열을 가르는 사람인가, 늪에 빠진 왼발을 위해 기꺼이 오른발마저 빠지는가, 아름다운 것을 가리킬 줄 아는 여섯 번째 손가락이 있는가, 그것을 새길 수 있는 뾰족함을 가지고 있는가, 모서리를 밟는 발가락이 있는가, 문 워크를 할 줄 아는가, 한 발 나갔다가 두 발 물러서는 사랑이 있는가, 터진 주머니 속에서 굴러 나온 동전을 줍기 위해 자세를 낮추는가, 굴러가서 도착할 곳이 있는가, 꿈에 꽃을 보는가, 사과를 깎으면서 뼈를 깎을 수 있는 있는가, 무를 자르면서 두부를 생각하는가, 끌고 가는 꼬리를 자를 수 있는가, 궁핍을 위한 궁리를 하는가, 불에 그을린 냄비처럼 생활이 묻어 있는가, 뒤집힌 양말처럼 다시 뒤집을 혁명이 있는가, 나는, 시를 쓰면서, 귀와 눈과 코와 입술이 뚜렷한 입체적 사랑과 구체적 결말을 예견하는가, 이 모든 눈송이를 뭉쳐 질문처럼 던질 수 있는가, 나는
---「뒤로 나아가는」중에서

꽃의 소관을 나비가 탐하는 것
눈을 돌려도 냄새는 스며든다

이 소란한 거리에 모종삽을 들고
꽃을 심고자 하는일
서정을 위해 인공위성을 샛별인 양
어룽거리며 바라보았지

별이 반짝이는 건
보고 있는 사람의 눈동자가
젖어 있기 때문이야

변명하면서

듬성듬성 놓인 돌다리를 건너며
바짓단을 걷어 올리며
---「거리에서」중에서

감각의 조율사가 되어 보기로 하자
밤의 고양이처럼
지붕 위를 사뿐히 걸으며
한 발을 들면 다음 발을 내려놓을 것
고양이와 걷자

달빛의 하얀 가루가 먼지의 빛처럼 쌓이네
모처럼, 이라는 말을 앞에 잠시 가져다 놓을게
정해진 용도 없이 양말을 손에 신고
발밑에 검은 별들의 배경을 밟고
우리는 모처럼
고양이와 걷자

영역을 벗어나면 동그랗게 눈을 뜨고
한쪽 다리를 들어 모험처럼,
오줌을 누자
불을 피우고 연기를 뿜으며
조난자처럼 밤의 고양이처럼
수염을 뾰족하게 세우고

고양이와 걷자
느슨해진 밤의 건반을
딛자 딛자 딛자
---「고양이와 걷자」중에서

사월에는 누가 자꾸 아프다는 말이 들려오고

환부를 들추다 화들짝 놀라 떨어지는
봄꽃의 파리한 얼굴처럼
당신은 아픈 곳을 숨기려 하네

아름다운 사람은 물오른 나무의 수액을 받아 오네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네

살 일보다
죽을 일을 걱정했던 당신
꽃이 피는 만큼 지는 일을 괴로워하는 것은
당신의 오랜 습관이 되었네

징검다리처럼 이 환부를 딛고 건너가야 하리
유리창 너머의 일을
모두 투명하다고 말할 수는 없네
바다의 일을
다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네

발톱처럼 자라나는 상처를 툭툭 잘라
바다에 묻고 돌아오는 저녁이었다
---「사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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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걷자』를 읽으면서 단호한 사랑을 말하는, 그 아름답고 순열한 단어들 사이에 놓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읽는 사람이 직접 그 단어가 되어 보기를 요청하는 시집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를테면 내가 ‘종이배’가 되어, “나무의 낮잠”과 “나뭇잎배의 소용돌이”와 “연못의 깊이”를 심지어 자신이 “종이”(「종이배의 기분」)인지도 모르는 채 있다면 어떤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빠져들까, 하는. 마찬가지로 내가 ‘서쪽 창가’라면, 나는 “저녁 새들이 솜뭉치처럼 울다 가는 곳”(「서쪽 창가」)이 되어 소슬한 마음이 일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자주 ‘모처럼’이라는 단어 뒤에 놓이기를 바랐던 것 같다. “모처럼, 이라는 말을 앞에 잠시 가져다 놓”으면 다음 단어는 생기와 신비가 감돌게 된다. 시에서처럼 “고양이와 걷”고 밤을 “딛”(「고양이와 걷자」)는 일이라면 속수무책으로 좋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면 『고양이와 걷자』를 읽는 사람들 모두 순간 아름다워지길 모처럼 바랄 수도 있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 안태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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