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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2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284쪽 | 330g | 133*200*20mm
ISBN13 9788954690973
ISBN10 8954690971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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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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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네가 알고 있는 네가 진정 너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 너는 네가 하는 생각이 진정 너만의 생각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 p.22

나는 버려지는 게 더 무서워.
무인 판매대에 붙은 현수막과 절벽 위 암자를 번갈아 보던 연수가 시선을 돌려 용수를 바라봤다. 용수는 해안으로 내려오는 한무리의 관광객을 보고 있었다.
필요 없는 건 버려지지. 연수가 말했다. 하지만 버려지는 게 꼭 나쁜 걸까?
--- p.105

지금도 고래상어는 수족관 안을 빙글빙글 돌고 있을 거라고, 삼 분에 한 번씩 같은 자리로 돌아오고 있을 거라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고 생각하자 슬픔이 밀려왔다. 용수는 자신도 어딘가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원형의 미로에서 앞으로 나아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 p.172

용수는 자신이야말로 연수의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을 하자 뿌듯했다. 연수의 모습을 기록하고 기록한 정보를 그대로 재생하는 게 홀로그래피라면 자신이 연수의 홀로그래피였다. 연수가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고, 연수의 행동을 따라 하고, 연수의 취향을 제 취향이라고 믿으며 연수를 그대로 복제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느닷없는 공포가 일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이었는데 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지 의아했다. 용수는 갑자기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자 연수도 낯설게만 느껴졌다. 연수를 만난 후로 둘이 떨어져 있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p.220

이곳뿐이 아니라네. 높은 곳에서 낮은 곳까지 그 모든 곳에 우리가 있다네. 수많은 이름으로 활동하지. 탐욕과 쾌락, 경쟁심과 두려움, 불안한 마음과 비겁한 마음이 있으면 언제든 비집고 들어가 원래 거기에 있던 양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그들과 하나가 되지. 그것은 하나의 완벽한 플랫폼이라네.
--- p.273

일영이 아름다운 빛의 세계를 보고 있다가 무덤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그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그 안에서 일영은 어디로든 갈 수 있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한 장의 이미지가 될 수도 있었고, 동영상이 될 수도 있었다. 글자가 되었다가 숫자가 되었고 흑백이었다가 컬러가 되었다. 음악이 되었고 소리가 되었다. 일영은 그 누구도 아니었으며 동시에 그 모두였다. 그 무엇도 아니었으며 동시에 모든 것이었다. 입력값이었고 출력값이었다. 일영은 화면 안에서 영일한 시간을 보낼 거였다.
--- p.276

인석은 순간적으로 모든 것을 보았다. 모든 얼굴과 모든 사람을 보았다. 그들은 무언가에 도취되어 화면에 비친 제 얼굴을 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밖으로는 나오지 못하는 거울은 외부가 차단된 하나의 완전한 외부이자 내부였다. 그러므로 그곳에서는 누구든 될 수 있었고, 어디로든 갈 수 있었고, 모든 시간을 살 수도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모두 같은 모습으로 무한히 복제되고 증식했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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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똘한 시선에는 은근한 힘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이끌려버리고 만다. 무심히 몇 페이지를 넘기다 작가 옆에 서서 그의 눈으로 세상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빌딩에서 쏟아져 내리는 네온사인, 외벽에 설치된 미디어 파사드, 그리고 그 안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질펀히 흐를 ‘용溶’ 자를 쓰는 용수가 멀리 흐를 ‘연演’ 자를 쓰는 연수와 이별한 후, 밀려들었다 빠져나가는 바닷물 ‘석汐’ 자를 쓰는 인석을 만나 무작정 걷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누군가 내 옆에 서며 이렇게 묻는 상상. 지금 뭘 보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약간 멍한 얼굴로 빛 속으로 흘러가는 물줄기요, 한 방향으로 흐르다 이리저리 퍼져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하는 물줄기요, 하고 말할 것 같다. 그 사람도 곧 여기에 같이 서서, 최정나가 가진 응시의 힘을 느끼게 되리라 짐작하면서.
- 황예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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