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그 후의 길에 관한 명쾌한 설명 가장 오래된 마음 비결, 『수심결(修心訣)』‘친절한 법문’의 대명사 목탁소리 법상 스님알쏭달쏭 선문답 걷어낸 단 한 권의 『수심결』 풀이일상의 괴로움에 속 시원한 답을 찾다!붓다를 몰라도 좋다. 불교를 몰라도 상관없다. 종교가 무엇이든, 아니 종교가 없어도 괜찮다. 다만 돈, 명예, 사랑 등 ‘나’의 행복을 충족하는 일이 중요하다면 이 책을 펼치면 된다. 자기계발서냐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세상 물정 따라가는 행복의 충족 요건보다 가치 있는 행복의 비결로 ‘마음’을 발견하는 보석 같은 책이다. 돈, 명예, 사랑은 달콤하다. 이것을 쟁취하면 행복하다는 유혹도 달콤하다. 달콤한 만큼 ‘마음’도 썩는다. 행복을 가지려는 과정 중에 겪는 온갖 괴로움은 달콤함으로 달랠 뿐이다. 100년도 안 돼서 반드시 사라질 것들이라는 사실도 뒷맛이 쓰다. 사라지지 않는 진짜 ‘나’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완전한 행복에 다가가는 가장 오래된 마음 비결이 있다. 인생의 모든 괴로움이 버겁다면, 괴로움의 실체가 궁금하고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다면, 그리고 진짜 ‘나’와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책을 펼치면 된다. 이 책은 깨달음이라는 대단한 무언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깨달음 같은 것은 저자도 모른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몇 년 동안 눕지도 않고 좌선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그런 깨달음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겐 너무 어렵다. 그러나 괴로움을 소멸하는 방법 그리고 ‘나’와 ‘마음’을 발견하는 지혜는 어렵지 않다. 『수심결』은 첫 문장부터 괴로움을 벗어날 해법을 제시한다. ‘불타는 집(=괴로움)’에서 나오려면 ‘부처(=마음)’를 구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관건은 방법이다. 저자는 한마디 덧붙인다. “그저 괴로움이 무엇인지 알고, 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도록 안내하는 선의 방편에 마음을 열어 보자.” ‘가장 친절한 법사’ 법상 스님의 자상한 『수심결』 풀이왜 『수심결』인가. 『수심결(修心訣)』은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마음을 닦는 방법과 마음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쓴 저술이다. 깨달음과 그 후의 길에 대한 명쾌한 지침을 담고 있는 선(禪)의 입문서로 평가받는 이 책은 마음을 닦아 부처를 이루는 방법론을 9문 9답으로 밝히고 있다. 가장 오랜 시간 검증된 마음 비결 『수심결』을 관통하는 여러 질문과 답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무엇이 부처이고 무엇이 깨달음일까? 내가 가진 이 마음이 부처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수심결』에서 지눌 스님이 내놓은 답변을 ‘우리 시대의 가장 친절한 법사(法師)’로 꼽히는 목탁소리의 법상 스님이 쉽게 풀이했다.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피로 사회’ 버금가는 ‘괴로움의 사회’에 사는 우리의 시대는 빠르게 열리고 있다. 목사, 신부, 스님, 철학자, 양자물리학자, 인문학자 누구든 자신의 괴로움을 해결해 줄 가르침이면 될 뿐이다. 소속이나 종교 등을 이유로 벽을 치던 시대는 저물었다. ‘불타는 집(=괴로움)’에서 탈출하는 일은 모두에게 시급한 일이다. 일시적인 힐링이나, 다른 달콤한 것으로 대체하는 임시 처방이 아닌 근본적인 괴로움의 소멸은 과연 가능할까? 『수심결』을 풀이한 법상 스님은 “가능하다”라고 확신한다. 괴로움의 끊임없는 반복, 즉 윤회에서 벗어나려면 부처를 구하는 게 제일이다. 불교라는 종교를 믿는다거나 부처가 되어야 한다는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다. 스님은 “단순하게, 부처는 모든 괴로움을 여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부처임을 깨닫는 일 ‘깨달음의 시크릿’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고 독려한다. 스님은 이 책에서 『수심결』의 질문과 답을 34개로 쪼개 친절하게 설명한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에서부터 진짜 ‘마음’과 불성의 정체, ‘마음’이 부처인 이유, 깨달음과 신통력의 관계, 부처를 발견하지 못하는 까닭, ‘마음’을 찾은 뒤의 태도 등 우리의 의문을 차근차근 풀어준다. ‘깨달음의 시크릿’? 소풍 때 보물찾기만큼 쉽다여기 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키가 클까 작을까? 잘생겼을까 못생겼을까? 남자일까 여자일까? 한 사람만으로는 알 수 없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야만 크고 작고 잘났고 못났고 분별할 수 있다. 이렇게 둘로 나눠 놓고 비교해서 대상을 파악해서 안다고 여기는 것을 우리는 마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진짜 ‘마음’이 아니다. 중생심이고 분별심 혹은 분별망상이다. 좋아하는 것은 내 것으로 만들고 싶고, 싫어하는 것은 거부하고 밀어내려는 마음이 진짜 ‘마음’을 찾기 어렵게 한다고 법상 스님은 강조한다. 좋아하는 것을 갖지 못하면 괴롭고, 싫어하는 게 자꾸 나타나도 괴롭다. 이 분별하는 마음이 괴로움의 원인이다. 스님은 이 가짜 ‘마음’이 파도와 같다고 했다. 날씨에 따라 거세게 일거나 잔잔해지는 파도는 일어났다 사라지지만 바다는 언제나 그대로다. 눈치챘는가? 바다가 진짜 ‘마음’이자 ‘나’라고 스님은 말한다. 이를 깨닫는 일은 어려운 게 아니라고 법상 스님은 말한다. 머리가 아주 비상한 사람만이, 수행을 극도로 돌파한 이들만 깨닫는 게 아니라고 한다. 소풍에서 보물찾기하듯 즐겁고 쉬운 일이라는 것. 수학이나 영어 경시대회는 수학과 영어에 자질이 있어야 하고, 소풍 때 장기 자랑이나 노래 대회도 특별한 장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보물찾기는 다르다. “마음공부도 보물찾기와 비슷하다. 수학이나 영어, 체육이나 음악이 아니라서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공부다. 누구나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음공부라는 보물찾기는 내 바깥에 따로 숨겨진 보물이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바로 보물임을 찾는 것이다. 내가 진짜 보물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 법상 스님의 설법은 자상하지만 파격적이고, 쉽지만 깊이 있고 강력하다. 무엇을 하라고 하는 게 없는데도 법문만 들어도 저절로 괴로움은 쉬고, 삶은 변화한다. 우리는 그 어렵다는 사람 몸을 받아 지금을 살아간다. 그 어렵다는 일도 해낸 우리가 가슴으로 온몸으로 자기 것으로 가져와 읽다 보면, 문득 자기의 진짜 모습을 확인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