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A. 나크는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드래곤랜스, 에이지 오브 코난 같은 시리즈물과 자신의 창작 소설 『Dragonrealm』을 비롯해 마흔 권의 소설과 수많은 단편 소설을 쓴 뉴욕 타임즈 선정 베스트셀러 작가다. 도쿄팝 출판사에서 펴낸 워크래프트 만화의 각본을 썼으며 게임을 위한 배경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은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출간되었다. 그의 웹사이트 www.richardaknaak.com에서 그의 소식을 알 수 있다.
역자 : 김학영
경기대학교를 졸업하고 10여 년간 아이들을 가르쳤다. 책에 대한 애정에 힘입어 번역에 입문했다. 옮긴 책으로는 『슈퍼 사이언스』, 『편지된 과학의 역사』, 『찰스 다윈 서간집』등이 있다.
"모습을 드러내라." 울디시안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어디 있는 거냐!" "왜 그래, 나는 여기 있는데, 내 사랑." 릴리트가 보였고…… 그리고 또…… 또 나타났고, 수없이 나타났다. 릴리트의 현신이 백을 넘어서더니, 곧 수백이 넘었다. 울디시안은 그들이 그냥 환영일 뿐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진짜를 찾으려 했지만 모두 똑같아 보였다. 전부 환영에 지나지 않는……. "마지막으로 한 번 나를 안아봐," 모두 한 목소리로 조롱했다. 수천의 릴리트가 입술을 오므렸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키스해줘, 내 사랑." 릴리트들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도발적인 몸짓으로 울디시안에게 다가왔다. "한 번 더 나와 사랑을 나누자고……." 모두가 진짜일 수 없지만, 진짜였다. 울디시안은 집중하려 했지만 몰루와의 치열한 싸움을 한 터라…… 힘과 집중력이 너무나 많이 쇠잔해져 있었다. 이 역시 악녀의 계산이라는 걸 깨달았다. 약해진 울디시안은 그녀에게 위협이 되지도 못했고, 어쩌면 릴리트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조종할 수도 있을 터였다. 그녀는 여전히 울디시안의 에디렘을 원했고, 에디렘을 차지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울디시안을 통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울디시안은 릴리트가 계획적으로 자신을 미로에서 헤매게 만들고 몰루와 싸우게 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어쨌거나 릴리트는 울디시안이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울디시안은 그 점을 분명히 느낀 데다, 릴리트가 정글 속 전투에서 처음 현신했을 때 보였던 당혹감은 스스로 울디시안의 능력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문득 울디시안은 릴리트가 정말로 아주 많이 겁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째서 이 모든 주문들을 걸겠는가? 자신을 납치했을 때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처리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아닐지도…… 어쩌면 릴리트는 우선 그의 힘을 빼놔야 할 필요가 있었는지도……. 모든 릴리트들이 팔을 벌리고 울디시안에게 다가왔다. 자신이 지금 이곳에서 릴리트의 희생양이 된다면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 같았다. 어쨌든 울디시안은 단 하나의 릴리트를 찾아야만 했다……. 흐릿한 정신에 한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이곳은 대사원, 교단의 생명을 위한 진원지였다. 그렇다면 이 안에 있어야 할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 것일까? 릴리트는 몇몇 사제들과 평화 감시단, 몰루를 정글로 보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하급 사제들, 고위 사제들, 경비병들, 사원 곳곳에서 일하는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인부들의 대부분은 전사로 훈련받지도 않았을 텐데. 울디시안이 본 사람이라곤 말릭의 뼈에 맞은 그 자뿐이었다. 울디시안은 문득 깨달았다.
네팔렘의 두 번째 출현은 세상을 영구히 바꿔놓았지만, 변화의 대부분은 첫 번째 네팔렘이었던 울디시안 울디오메드의 몫이었다. 그는 평범한 농부의 삶을 간절히 원했지만, 격변을 몰고 온 기폭제가 되고 말았다. 울디시안은 지배권을 다투던 자들이 성역이라고 부른 세상에 관한 진실을 일부 밝혀냈으며, 빛의 대성당과 삼위일체단의 대결로 벌어진 천사와 악마의 영원한 전쟁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울디시안이 자신들의 모든 계획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대성당과 사원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를 미혹하여 꼭두각시로 만들거나 완전히 없애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스스로를 인류 전체의 합당한 주인이라 여기는 자들의 속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려고 애쓰던 울디시안은 한때 사랑했던 자에게 배반당한 뒤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판단력을 잃고 만다. 울디시안은 성역의 운명이 자신의 지친 어깨에 달렸음을 느꼈지만, 수백 년 동안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같은 적과 싸워 온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가 몰랐다는 점이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천사와 악마가 그랬듯, 결국 그들도 울디시안을 환영해야 할지…… 죽여야 할지 몰랐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