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리스도인의 일평생은 회개의 여정이다. 죄를 더 많이 지어서가 아니라 죄를 더 많이 깨닫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할 마음을 일으키신다. 회개한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 구원받은 사람은 회개한다. 그러므로 회개는 구원을 얻은 의인들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습관이다. 지금은 회개할 시간이다. 나의 자원이 소진되었다면, 고통과 두려움을 멈출 수 없다면, 마음이 텅 비어 가난하다면 바로 지금 회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선 떠오르는 나의 죄를 하나님 앞에 내놓고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사순절 1일) 회개란?」중에서
성경이 말하는 인간은 프로이트의 모델과는 다르다. 성경은 모든 인간의 마음에 강한 자기중심성과 죄의 본성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죄성은 광범위하고 파괴적이어서 자기 힘으로 극복할 가능성은 없다. 죄에 경도된 인간의 마음은 불안이나 신경증을 만들어 내는 정도가 아니라 인격과 삶과 관계를 오염시키고 영원한 형벌로 끌고 갈 만큼 파괴적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의식적인 죄와 무의식적인 죄, 곧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를 구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죄를 회개해야 한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죄를 위해 스스로 희생하신 제물인 동시에 인간을 위해 용서를 비는 중보자이다(사 53:12). 슬픈 마음으로 회개한 사람은 용서를 받지만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심판하실 주님을 대면할 것이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중에서 (계 1:7).
---「(사순절 10일) 후회의 처소」중에서
벌거벗은 임금님이 자신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것을 정직하게 직면하는 데는 어린아이의 단 한마디면 충분했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중에서 천진난만한 아이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을 때, 임금님은 자신이 ‘착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값비싼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이 벌거숭이임을 아는 것, 자신이 가난하고 가련한 존재임을 아는 것은 “네가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중에서 는 예수님의 한마디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 의미를 아는 것에서 회개는 시작된다. 벌거숭이는 수치심에 옷을 찾으려 할 것이고, 가난한 사람은 배고픔에 먹을 것을 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벌거벗고 있으면서도 비싼 옷을 걸친 양, 배가 고픈데도 배부른 양 허세를 부리고 있다면, 은총이 찾아올 리 만무하다.
회개는 착각에서 깨어나 자신의 빈곤함을 처절하게 깨닫는 데서 시작한다. 영적으로 자신을 아는 기준은 주님의 진단이다. 주님의 말씀이 기준이고, 주님이 주시는 비판적인 자기 성찰이 기준이다. 내 권리, 내 인생, 내 경험을 기준으로 삼는 변종 우상은 여전히 우리의 눈을 멀게 할 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비종교적인 것 같아도, 우리 마음은 사실 이 시대의 화려한 각종 우상이 지배하고 있다. … 우리는 유한성을 받아들여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내 인생은 내 권한임을 악착같이 확인하려 든다.」중에서 (팀 켈러, 『내가 만든 신』). 영적인 벌거숭이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시는 주님의 처방전은 회개였다.
---「(사순절 17일) 자신이 부자인 줄 아는 벌거숭이」중에서
다른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하지 않은 것이 죄다. 가난함이 죄가 아니라, 가난함을 인정하면서 절박하게 엎드리지 않는 것이 죄다. 웬만한 죄악에는 흔들리지도 않고 회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 죄다. 그것은 교만이며 게으름이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낮아짐과 의존성의 모든 특질을 가진 겸손이다. 심령이 가난할 때 우리는 우리의 남은 생애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운 처분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고백할 수 있다. 우리의 지식이나 재능 때문이 아니라 오직 선하고 의로우신 하나님 덕분에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지금도 나는 나의 인생이 매 순간 파산 상태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이것은 단순한 앎의 문제를 넘어 몸소 체득한 문제임을 새삼 깨닫는다. 나는 구원받기 위해 회개했고, 이제는 구원받았으므로 회개한다.
---「(사순절 19일) ‘저는 파산하였습니다’」중에서
참된 회개는 죄의 고백에서 시작해서 변화된 행위로 이어진다.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슬퍼한다. 아울러 자신의 행위가 초래한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한다. 영적으로는 하나님께 입힌 거절과 거역의 상처를 가슴 아파한다. 과거 자기의 선한 행위가 지금의 악행보다 훨씬 크므로, 회개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변명하지도 않는다. 내가 사과했으니 상대는 마땅히 용서해야 한다고 요구하거나 압력을 가하지도 않는다. 그까짓 것을 왜 잊지 않고 또 생각나게 하느냐고 뻔뻔하게 따지지도 않는다. 자기를 위한 방어 장치를 해제하고 그저 재를 덮어쓴 참회자처럼 입을 다무는 것, 그것이 회개이다. 선지자 이사야처럼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중에서 다고 고백할 뿐이다(사 64:6). 참된 회개자는 구차하게 변명하거나 피해자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용서가 어떤 것이든 그것을 하나님의 기적이라 여기며 감사할 뿐이다. 변명과 회피의 유혹에 단호하게 저항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고 자랑하기 전에 먼저 자기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의 용서를 구한다. 여기에 믿음과 용기가 필요하다. 회개하여 용서받았다고 하면서도 피해자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가 없다면 그것은 책임 회피일 뿐 회개가 아니다.
---「(사순절 21일) 불의한 권력의 변화를 요구하는 회개」중에서
누군가의 말처럼 인간이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곧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는 뜻이다. 회개한 사람은 그 죽음을 통해 가장 영광스러운 것을 상속받을 권리를 얻는다. 그것은 세상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영생이다. 그 권리는 죽음을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는 권리이다. 모든 인간은 반드시 한 번 죽는다. 회개한 사람은 예수님을 비롯한 성경의 인물들을 만날 것이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끔찍한 갈증과 소음의 왕국에서 평소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낯선 것들을 보며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천국은 상속받을 재산과 같다. 상속은 실력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 이루어진다. 천국의 상속은 하나님과의 가족 관계로만 이루어진다. 회개는 하나님을 “아버지」중에서 로 모시고(롬 8:15), 하나님의 “맏아들」중에서 (롬 8:29)인 예수님과 형제가 되게 하는 유일한 조건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상속한다. 회개를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과 한 가족이 되어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사순절 28일) 영원한 보상, 천국」중에서
참된 회개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매일의 주제 선율이다. 우리의 매일은 죄를 회개하는 새날이다. 회개하기 위해 죄를 더 지으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껏 죄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더러운 죄였는지를 더 깊이 깨닫고 진지하게 고백할 뿐만 아니라, 거룩함과 용서함을 받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고난주간 토요일) 하나님이 귀중히 여기시는 것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