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에 관심을 가지면서 ‘언젠가는 비건이 되어야 할 텐데’라는 생각을 수백 번은 했다. 그렇지만 내가 비건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 수많은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유제품, 특히 버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프랑스 요리를 배웠고,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일했으며, 또 앞으로도 프랑스 요리를 하며 먹고 살아갈 내가 비건이라니.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절대 버터를 너무 넣을 순 없어요」중에서
외국인, 여성, 동물로서 차별을 당하는 이들은 다시 태어나는 방법 말고는 벗어날 길 없는 존재의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나를 차별하는 그들과 동물을 차별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바로 차별을 멈추는 것이다.
---「차별 속에 사는 이의 차별 이야기」중에서
잊을 수 없는 콩 요리가 하나 있다. 레스토랑에서 일했을 때 메인 요리에 사이드로 나가던 완두콩 소테saute(서양식 볶음)다. 우선 갓 배달 온 완두콩 껍질을 일일이 손으로 벗긴다. 팔팔 끓는 소금물에 7분 정도 삶고 얼음 가득 넣은 찬물에 식힌다. 올리브유를 두른 프라이팬에 쪽파와 다진 양파를 볶고 소금, 후추 간을 한다. 마지막으로 식힌 완두콩을 넣고 잽싸게 볶으면 완성.
---「I ♥ 콩콩콩!」중에서
프랑스 사람들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자신들의 가치관을 상당히 잘 지키며 사는 편이다. 그러나 ‘비거니즘’에 대해서는 다르다. 세 가지 기본 가치 중 프랑스인 대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첫 번째 가치인 ‘자유’를 위협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몹시 예민해진다. 개인의 자유를 평등하게 사랑해주려고 노력하지만 ‘내 자유’, 그러니까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자유’를 방해하고 비난하는 가치관은 용납하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개인주의를 우선하는 프랑스인에 대한 보편적인 이미지와 달리 프랑스에서는 비건이 은근히 공격받고 조롱당하는 경우가 꽤 흔하다.
---「간결하고 재미있고 강력한 한 방의 파스타」중에서
프랑스 전통 시장에 가면 ‘레귐 우블리에legumes oublies(잊어버린 채소들)’라고 분류된 채소를 만날 수 있다. 토삐넘부르topinambour(돼지감자), 빠네panais(야생 당근), 빠띠쏭patisson(톱니바퀴모양 호박), 후타바가rutabaga(스웨덴 순무), 까흐동cardon(아티초크의 일종) 등이 있는데,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엔 자주 먹었지만, 뭐든 풍족해진 요즘은 사람들이 잘 키우지도 먹지도 않게 된 채소들을 일컫는다.
---「잊어버린 채소를 찾아서」중에서
프랑스에서 요리하고 먹고 공부하며 깨달은 중요한 사실은 바로 ‘무치면 다 맛있다’는 거다. 삶은 콩도, 생양송이버섯도, 심지어 파스타와 밥도 어울리는 소스와 무친다면 맛없는 것이 없다. 프랑스에서 먹어본 충격적인 샐러드 1위는 단연 ‘삶아서 찬물에 벅벅 씻은(!) 밥’과 참치, 통조림 옥수수를 마요네즈에 버무린 샐러드였다. 처음에는 요리하는 모습을 인상 쓰며 봤지만 의외로 꽤 맛있어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믿고 먹는 렌틸콩 샐러드」중에서
푸아그라도 소시지도 굴도 큰 닭구이도 없는 노엘이라니! 그렇다고 바로 마음 놓고 즐길 순 없었다. ‘모두들 진심으로 이런 노엘을 반기진 않겠지. 진짜 노엘이 아니라고 아쉬워하는 건 아닐까’하고 눈치를 봤으니까. 그러던 중 한 조카가 이렇게 말했다. “어제 할머니 집에서 명절 음식 지겹도록 먹고 와서 그런가. 이렇게 색다른 노엘도 좋네!”
---「어떤 색다른 노엘」중에서
소심한 듯 강력한 방법의 정중앙에 소비가 있다. 번거로워도 시장, 유기농 매장, 일반 마트에 일일이 따로 들러서 비건 제품인지를 확인한 뒤 소비한다. 식재료의 생산자, 유통자, 판매자에게 우리 이야기를 한번 들어봐 달라고, 영수증의 형태로 넌지시 쪽지 하나 남기고 오는 일이다.
---「비우고 다시 채우는 장바구니 이야기」중에서
나는 프랑스 여름 특유의 너그러움을 무척 좋아한다. 맑은 날씨 속에서 작물들은 어느 때보다 싱싱하고 사람들은 환한 얼굴로 웃으며 대화하는 여름의 장면들. 그 한가운데 여름 바비큐가 있다. 채소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숯불에 잘 구운 옥수수나 감자를 하나씩 손에 든 채 마당을 뛰어다니고, 특정 재료에 알레르기가 있거나 글루텐을 피해야 하는 사람도 각자 원하는 재료를 골라 먹는다.
---「이렇게 너그러운 여름이라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