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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단장하는 여자와 훔쳐보는 남자

몸단장하는 여자와 훔쳐보는 남자

: 서양미술사의 비밀을 누설하다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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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12월 2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452g | 120*200*20mm
ISBN13 9788954623438
ISBN10 8954623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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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관음증 환자다. 부끄러워도 어쩔 수 없다.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관음증 환자란 ‘에로틱한 광경을 몰래 엿보면서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니까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이름 모를 강둑이나 연못가에 앉아 있는 여인-사람들 말로는 아르테미스 여신이라고 한다, 목욕탕에서 나오는 여인-사람들 말로는 다윗 왕이 탐낸 밧세바라고 한다-또는 목욕통 안에 쭈그리고 있는 이름 없는 여인을 몰래 바라보는 사람이 관음증 환자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에밀 졸라가 자기 소설의 주인공 나나를 바라보듯이 “대야와 스펀지에서 올라오는 수증기와 코를 찌르는 향유 냄새 때문에 흡사 작은 욕실처럼 보이는 규방의 깊숙한 구석”을 들여다보고, “단지와 대야가 있는 난장판에서 달콤하고 강렬한 향기 속에 행하는 여인의 몸단장을 내밀한 세부까지” 들여다보는 사람이 관음증 환자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나는 관음증 환자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당신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따지고 보면 그림을 보는 행위는 관음증 환자의 행동과 다를 바가 없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그림은 언제나 욕망과 맞물려 있었다. (…) 욕망이 그림의 기원이라는 사실을 부인한다면 그림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처사이다. ---「시작하며」

그녀는 이제 결심했다. 전에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몸단장을 해야 했지만, 이제부터는 남들에게 조금도 보여주지 않기로 말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오로지 혼자 있을 때만 시작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니 이런 결정은 일시적 변덕이 아니다.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린 화가들은 이런 특별한 고독의 필요성을 이해한 듯했다. 그녀의 상념을 감싸는 고요한 고독을 흩뜨리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천들이 서로 스치는 소리, 물이 찰랑이는 소리, 대리석 탁자 위에 향수병을 올려놓을 때 나는 짧고 건조한 울림, 멀리서 들려오는 웅성거림뿐이다. ---「1장 마지막 양말 한 짝을 벗다」

디아나에서 수산나, 비너스에서 밧세바에 이르기까지 신화나 성서에서 누드화의 명분을 찾는 일을 그만두자, ‘이국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새로운 구실이 등장했다. 특히 이슬람 세계의 부인들이 거처하는 금남의 장소인 하렘은 누드를 그리기에 가장 적합한 주제였다. 그러나 하렘이 불러일으키던 음탕한 흥분은 곧 잊혔다. 사창가의 여인들도 터키 황제의 후궁들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화류계 여성의 방에 놓인 목욕통이 하렘의 목욕탕을 대신했다. 어떻게 해서 19세기의 몇 년 사이에 화가들이 그전의 모든 가식적인 명분에서 벗어나 그저 평범한 여인의 누드를 그리게 되었는지, 그녀는 아직도 놀라울 따름이다.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가 그린 목욕하는 여인들처럼 말이다. ---「2장 벌거벗은 채로」

그녀는 어느 화가의 작업실에서 있었던 일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는 석고상의 배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거기에는 털이 없으며, 자신은 절대 털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화가들이 모델에게 요구하는 것은 한결같았다. 조각상이 아닌가 싶을 만큼 털 한 오라기 없이 매끄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날 화가를 다시 찾아갔을 때, 그녀의 몸에는 털이 한 올도 없었다. 그런데 화가는 뒷모습을 그리겠다고 해서 그녀를 놀라게 했다. 뒷모습을 그릴 셈이었다면 왜 그런 요구를 했을까?
미처 물어볼 겨를도 없이 화가는 그녀를 거울 앞에 세웠다. 거울에 비친 그녀의 음부는 비너스의 그곳처럼 매끈했다. 털이 있든 없든 관심이 없는 화가들도 비너스의 언덕이 보이지 않는 포즈를 취하라고 요구해서 체모를 밀었는지 안 밀었는지, 뽑았는지 안 뽑았는지 볼 수 없는 그림을 그렸다.
---「3장 물에 몸을 담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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