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로부터 편지는 직접 만날 수 없는 환경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생각을 나누는 대표적인 의사소통의 수단이었습니다. 바오로도 선교 여행 중에 여러 교회와 그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써 보냈으며, 이를 통해 신자들에게 교회의 가르침을 전하고 각 공동체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려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바오로의 편지들을 통해서 초대 교회의 신앙과 생활에 관한 소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14쪽」중에서
일반적으로 로마서, 코린토 1·2서, 갈라티아서, 필리피서, 테살로니카 1서, 필레몬서를 바오로가 직접 쓴 편지, 즉 바오로의 친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에페소서, 콜로새서, 테살로니카 2서, 티모테오 1·2서, 티토서는 제2 바오로 서간 혹은 차명 서간이라고 부릅니다. 마지막으로 히브리서는 전통적으로 바오로의 편지로 알려져 왔으나 오늘날에는 이 편지의 저자를 구약 성경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춘 유다인 출신의 그리스도인으로 추정합니다. 이 익명의 히브리서 저자는 바오로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깊은 관계에 있던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16쪽」중에서
바오로는 격앙된 상태에서 갈라티아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머리말(갈라 1,1-5) 이후 감사 부분을 생략한 채 곧바로 본문(갈라 1,6-6,10)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자신의 사도직과 그가 선포한 복음을 변호하면서 율법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맺음말(갈라 6,11-18)에서도 다른 편지들에서와는 달리 신자들에 대한 안부를 생략한 채 할례의 의미를 요약하고 신자들을 축복하면서 편지를 마무리 짓습니다.
---「바오로 서간 둘러보기, 23쪽」중에서
테살로니카 1서와는 달리 테살로니카 2서는 바오로가 직접 쓴 편지가 아니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었습니다. 이 편지는 머리말, 감사, 축복의 내용, 맺음말 등에 있어서 테살로니카 1서의 형식이 기계적으로 반복됩니다. 마치 다른 누군가가 테살로니카 1서의 형식을 따라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내용면에서도 테살로니카 1서에서 느낄 수 있는 신자들에 대한 따뜻하고 친밀한 감정보다는 형식적이고 거리감 있는 문장들이 여럿 발견됩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이 다른 저자에 의한 작품임을 확증하는 증거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바오로의 친저성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바오로 서간 둘러보기, 28-29쪽」중에서
히브리서는 27권의 신약 성경 가운데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작품입니다. 우선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이라는 제목부터가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원래 이 글은 처음부터 히브리인들을 대상으로 쓴 것도 아니고 문학 장르상 편지 양식으로 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히브리서는 전통적으로 바오로의 작품으로 알려졌지만, 그 어디에도 바오로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으며 어휘나 문체, 신학 역시 바오로의 친서들과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는 문학적으로 봤을 때 수사학적 기교나 그리스어의 사용에 있어서 신약 성경 가운데에서도 출중한 실력을 보이는 뛰어난 작품입니다. 내용면에서도 구약 성경을 토대로 교회의 가르침을 풀이해 놓은 훌륭한 해설서라 말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서간 둘러보기, 34-35쪽」중에서
바오로는 자신이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파견된 사도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편지를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에서 온 선교사들이 바오로를 사도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가 선포한 복음 역시 그리스도로부터 전해 받은 복음이 아니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영향으로 갈라티아 신자들은 바오로와 그가 전한 복음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바오로는 자신을 변호하고 신자들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갈라티아서를 쓰게 됩니다.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 38쪽」중에서
바오로가 선포한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롭게 된다는 말은 죄가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동안 유다인들은 율법의 준수를 통해 의롭게 된다고 믿어 왔지만 이제 예수님으로 인해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으로 다른 민족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죄를 씻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율법은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모든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율법의 필요성만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한 죄의 용서를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갈라1,11-2,21).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 41쪽」중에서
에페소서는 하느님을 찬미하며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죄의 용서를 받았으며 그 풍성한 은총으로 하느님의 구원의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그들이 하느님의 영광과 능력을 알게 되기를 청하며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에게 이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을 주시어 만물을 그분께 맡기셨으며,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심으로써 교회를 당신의 충만함으로 채우셨습니다.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58쪽」중에서
바오로는 수인이 된 처지에서도 불투명한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관심을 둡니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더욱 많은 이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진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 가운데에는 불순한 동기로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는 이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떤 동기가 되었든 간에, 감옥에 갇힌 바오로를 대신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달할 수만 있다면 바오로는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합니다.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 70쪽」중에서
바오로는 ‘그리스도 찬가’(필리 2,6-11)를 소개하면서 종의 모습을 취하신 예수님의 순종과 겸손을 배우라고 필리피 신자들을 독려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며 그분을 모범으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본받아 허물없고 순결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비뚤어지고 뒤틀린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임으로써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필리피 신자들이 이렇게 생명의 말씀을 잃지 않고 실천하며 살아간다면, 바오로 자신은 감옥에서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큰 기쁨을 얻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필리 2,14-18).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2, 78쪽」중에서
콜로새서에 소개된 ‘그리스도 찬가’는 이토록 큰일을 하신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 줍니다. 하느님의 모상이신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의 맏이로서, 그분을 통해서 만물이 창조되었고 존속합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로서 모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충만함이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하여 만물은 그리스도를 통해, 특별히 그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믿고 기억해야 합니다(콜로 1,15-23).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91쪽」중에서
바오로는 이제부터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범적인 삶에 관한 몇 가지 지침을 전달합니다. 그가 가장 먼저 꺼낸 주제는 거룩한 삶입니다. 바오로는 성적인 방종에 대해 경고하면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살라고 부르셨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사실 거룩한 삶에 대한 요청은 바오로의 개인적인 바람이 아니라 유다교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거룩함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도 거룩해지기를 바라신다고 율법은 말합니다.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9,2).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2, 106쪽」중에서
바오로가 재림에 관한 물음에 답하면서 신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으니 그분을 믿는 모든 이들 또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희망을 갖지 못한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아야 합니다(1테살 4,13-18). 주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의 시간은 아무도 모릅니다. ‘언제’ 그런 일이 벌어질지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그 시간까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바오로의 답은 이것입니다.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인 우리는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으면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안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편지를 시작하면서 이 세 가지 덕목을 이미 갖추고 있던 테살로니카 신자들을 칭찬한 바 있습니다(1테살 1,3). 바오로에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은 그리스도인이 지향하며 실천해야 할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덕목이었던 것입니다(1테살 5,1-11).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2, 110-111쪽」중에서
바오로는 주제를 바꿔 기도의 목적과 올바른 자세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는 티모테오에게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권고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원하셨고 그것을 위해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의 몸값으로 내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기도의 목적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바오로는 기도의 올바른 자세를 설명하면서 여자들의 단정한 옷차림과 순종하는 자세에 대해 강조합니다. 또한 여자들이 교회에서 가르치고 남자들을 다스리는 것을 금지시킵니다. 하지만 그는 로마서 16장에서 프리스카, 포이베, 유니아 등의 여성들을 교회의 일꾼이요 자신의 협력자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티모테오 1서에서 문제가 되는 이 구절은 교회에서의 여성들의 지위에 대한 바오로의 보편적인 지침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에페소 교회에서 활동하던 거짓 교사들 중에는 일부 여성들도 포함되어 있던 것으로 보이는데, 바오로는 그들을 훈육하기 위해 이런 지침을 내렸을 것입니다(1티모 2,1-15).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27-128쪽」중에서
티모테오는 바오로와 함께 고난을 겪었고 박해를 견디어 냈습니다. 박해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경건한 이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바오로는 그런 티모테오에게 믿음을 잃지 말라고 조언하면서 성경을 더욱 가까이 하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구원을 얻는 지혜를 주기에 사람들을 바르게 살도록 가르치는 데에 유익할 것입니다(2티모 3,10-17). 바오로는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알고 있기에 다시 한번 티모테오에게 맡겨진 사명을 상기시킵니다. 거짓 교사들로 인해 사람들은 더 이상 진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릇된 가르침에 넘어갈 것입니다. 그러니 티모테오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고난을 견디며 꾸준히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것이 티모테오의 직무입니다(2티모 4,1-8).
---「티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서간, 139-141쪽」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