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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들

그리고 그녀들

: 수상한 남자의 인도차이나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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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12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450g | 150*210*20mm
ISBN13 9788997256068
ISBN10 8997256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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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서영진
술을 즐겨 하고 여자를 사랑하는 일을 천명으로 아는 명문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 술과 여자를 즐겨 하고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났으며 술과 여자에 환장하는 한량으로 성장했다.
공예와 사진, 행위예술을 한답시고 각종 사기를 치고 다니다 현재, 꽃무늬 캐리어에 블랙 슈트와 화이트 코트 그리고 대금으로 무장, 주색잡기의 달인이 자 퇴폐와 낭만의 화신으로 거듭나기 위해 전 존재를 담보로 예정할 수 없는 길에 올라 화양연화, 생애 가장 아름다운 한 시절을 살고 있다.
세계 각국의 그녀들과 함께, 만국의 술을 마시며.
일러스트 : 변영근
좀 더 따뜻해지고 싶고,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 만큼 그러해지려 한다. 그런 것 들이 그림에 고스란히 묻어나길 바란다. 독립출판 여행 책 [31]이후 사람 관찰 여행기 [Flowing]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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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탈옥을 위하여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던 작은 새들이 있었다.

무엇의 간섭도 허락도 필요 없이, 누구의 방향과 질서에도 관계없이, 어떠한 관념이나 굴레에도 변함없이. 그저 거침없이, 마냥 거리낌 없이, 아무 거치적거릴 것 없이 비상하며 날갯짓하던 자들. 고도의 청아한 대기를 누비고 짙푸른 햇살에 몸
을 적시며 부드러운 바람에 빗살을 새기는 그들의 비행은 더없이 자유로웠고, 자유로웠기에 더더욱 아름다웠다.
날개의 생래적 부재로 날지 못하는 인간에게 새들의 비행이란 자유에의 완벽한 상징이자 가장 근사한 은유가 아닐 수 없다. 결핍은 선망을 낳는 법, 또한 시기와 질투를 동반하는 것. 언제나 그러했듯 인간의 질시란 유해했으며 그 유해성은 대상을 필요로 했으니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사랄까? 불행히도 그 자유로운 새들에게 낙찰, 이에 근원적 비극이 시작한다.
사돈이 땅을 산다는 경제 물리적인 현상이 복통이라는 인체 화학적인 반응으로 변이되는 독특한 형질을 지닌 인간들, 그 예측 불가능한 성질에서 비롯된 가공할 저주로 말미암아 새들의 유려했던 날개는 그만 황금으로 변해버리고 자의와 무관하게 비행을 멈추게 된 그들은 지상으로 내려와야 했으니 땅으로 내딛는 한 발짝, 그 익숙지 않은 걸음은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깊게 어지러웠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어둠, 잡힐 듯이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기억. 천지 사방으로 짙게 드리워진 밤의 그림자는 시각인지능력을 무력화시켰고 공간지각능력을 제로화시켰다. 아,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잠시간 멍청하게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엄마 찾아 삼만 리를 떠난 아이의 심정으로 나를 벗어난 상황인지를 애타게 찾아 헤맸다.
곧이어 나는 남한에서 날아온 서른네 살 잡순 날건달, 서영진 씨라는 건 알겠는데 여기가 어딘지는 당최 감이 잡히질 않는다. 피부에 와 닿는 온도가 제법 앙칼지고 쌀쌀맞은 것으로 보아 뜨끈뜨끈한 방콕이나 캄보디아는 아닌 것 같고 그럼, 베트남 북부 하노인가? 아니다. 하노이를 떠나온 기억은 명백하다. 택시비를 이만 원쯤 준 것도 뚜렷하다. 그렇다면 여기는 라오스 어디쯤인가? 그래, 그럴 수 있다. 라오스 북단 루앙프라방이라면 이렇게 추울 수 있다.
모든 통로는 문 너머에 있다는 암시랄까, 바깥을 투영한 창문이 밝다. 빙고! 창문을 열어보면 알 일이다. 깊은 어둠으로 보아 한밤중일 것이나 자고로 여행자란 시간의 변이에 따른 인류의 관념화된 행동지침을 과감히 거스르는 족속들, 마치 올빼미의 친인척이라든가 드라큘라의 피를 수혈받아 야행성으로 변화한 신인류라는 듯이 늦은 시각에 개의치 않으며 마당에 불을 피우고 기타를 튕기며 미적지근한 맥주, 혹은 싸구려 위스키를 들이붓는가 하면 적잖이 알콩달콩하고 상당히 부끄러운 상황을 연출하고 있을 터, 그들을 보면 여기가 어딘지 대번에 알 수 있을 것.

주저 없이 창문을 열어젖혔다.

어라, 근데 이게 뭐지? 홀로 밝은 가로등과 푸른 잎 하나 없는 가로수. 그 위론 하얀 눈발이 거세게 휘날리는 살풍경의 삼위일체가 어안이 벙벙한 시야에 들이쳤다. 잠시간 넋을 놓고 바라보는 사이, 멀리서부터 달려오던 시간 하나가 순식간에 부딪히며 급박하게 맞물렸다. 그렇게 얼마, 쿵! 하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일말의 예상도 허락지 않은 반전과 지나치게 파격적이며 극도로 우울한 결말이 거기 있었으니 대부분이 아열대 또는 열대에 속하는 인도차이나에선 하얗고 몽글몽글한 눈, 하늘 에서 내리는 그런 눈, 영어로 Snow를 볼 수 없다(막장의 기상이변이 아니고선). 그럼 나는 지금?
---「Prologue」 중에서

‘피보기’라는 전 지구적 당구 룰이 없었다면 당구란 그저 하염없이 남아도는 시간을 하릴없이 때려죽이는, 문자 그대로 온전한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았을 터, 더불어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게 인간 특유의 낙관이지만 샤넬 로레인이나 차유람 같은 미녀 스타들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쉽사리 포기가 안 되는 부분.

그런 거다. 타이틀이 없는 게임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하나 마나 한 내기로 전락하듯이 산다는 게임 또한 매한가지, 아무것도 걸지 않는다면 평온하고 순탄할지언정 자칫 지루하고 짐짓 따분하며 종종 비루하다. 누구였던가? 때론 권태보다 나쁜 것도 없다던 이가(내 친구 M양이던가, 뒷집 박 영감이던가?).
쫓고 쫓기는 공방전, 속고 속이는 복마전, 치고받는 난타전의 쉼 없는 로테이션. 예측 불가능한 지점에서 들어온 스트레이트 한 방에 잠시 정신 놓은 사이, 푹 찌르고 휙 달아난 세월은 멀리 돌고 돌아 어느새 서른네 번째 해로 찾아왔다. 삼십 대 중반, (남들 장가가고, 애 낳고, 차 사고, 집 사는 사이에 난 뭘 했나? 하는 신세 한탄은 만고에 쓰잘데기없으니 집어치우고) 이 나이에 돈 오백 원 주웠다고 환호하며 손뼉 치거나, 마트에서 경품으로 ‘퐁퐁’ 당첨됐다고 눈물 흘리며 감격하거나, 점 백 원짜리 고스톱 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거나 하기는 어렵다(육만 사천삼백이십오 점 정도 난다면 사정이 다르겠지만).
내 머릿속의 지우개는 기억을 없애는 데는 탁월한 효과를 보여 ‘당최 나는 뭐하고 살았지?’ 의문을 자아냈으나 상처와 고통을 끌어안는 일에는 몹시 둔감하여 본의 아니게 냉소주의적이고 염세주의적이며 허무주의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게 했으니 이를 전복시켜 용도 폐기된 열정을 되살리고 생의 환희를 노래하며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를 재장전하는 데에는 사소한 자극이 아닌 강력한 한방이 필요했다. 악센트와 임팩트가 삭제된 세월 속에서 켜켜이 쌓인 불감증을 시원하게 날려버릴 하나의 사건이.
의도하지 못했고 감히 목적하지 않았던 단 한 번의 우연. 짐작 가능한 복선도 없이, 맛보기용 예고편도 없이, 넌지시 건네는 암시도 없이 그저 홀연히, 그리고 슬며시 찾아온 가슴속 뜨거운 열망. 여행 또는 방랑이라는 근사한 이름의 타이틀은 내게 남은 생 모두를 전제했다.
---「표류기 하나. 다시 길이다」 중에서

도미토리. 사전적인 의미로 공동침실, 기숙사라는 뜻을 지닌 숙소 형태로 한 방에 여러 침대를 놓아두고 학연, 혈연, 지연을 떠나 안면과 친분에 관계없이 생판 처음 보든, 엊그제 한 번 봤든, 지나가다 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든 어쨌든 간에 그냥 배정받은 대로 자빠져 자야 하는 비개인적인 공간, 물론 욕실이나 화장실도 공용이다. 그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도미토리의 가장 기본적인 미덕은 가격의 저렴함에 있다. 보통은 그렇다. 허나 도미토리의 미덕이 가격 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가격적인 부분을 훨씬 상회하는 매력이 있기도 한데 내 경우가 그랬다. 가격은 중요하지 않았다.
도미토리를 처음 만나던 그 역사적인 순간을 잉태한 장소는 처녀여행이라 할 수 있었던 인도, 그리고 인도의 경제중심지 뭄바이였다. 아시는 분 다 아시고 모르시는 분들도 한두 번 소문을 통해 들었다시피 뭄바이의 밤이 보여주는 혼돈은 그야
말로 충격적! 필설로는 풀어내기 어려운 그 충격적인 첫날밤을 위로받고자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 시내로 뛰쳐나갔고 거기서 만난 친구들의 소개로 도미토리에 묵게 되었는데 이게 참 멋졌다. 사정없이 후려친 가격은 물론이거니와 독고다이 여행자에게 최악(또는 최고)의 적인 외로움을 상쇄시켜 주는 것과 동시에 듣도 보도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불 싸질러 주는 것에 이르기까지 ‘아무것도 몰라요’ 백치미로 똘똘 뭉친 내게, 타고난 성정이 삐뚤어진 반면 길러진 성격이 (이상한 쪽으로) 활발한 그런 내게, 심심한 걸 오 분도 못 참고 지루한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내게 도미토리란 완벽한 여행숙소였다.
---「표류기 하나. 중요한 것 역시 ‘물’이다」 중에서

세계 최빈국 중 하나라는 캄보디아. 여직 생존을 위한 삶조차도 해결되지 못한 끔찍한 가난과 그 가난에 맞물려 구걸을 통해 하루를 버텨가는 맨발의 아이들을 아무 때나 수시로 만날 수 있는 곳. 그러나 말이다, 돈이란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얻어지는 것이지 그렇게 맡겨 놓은 물건 내놓으라는 듯이 당당하게 요구하는 게 아니다. 비록 그 헐벗은 모습과 메마른 굶주림이 안타깝다고는 하나 그들을 돕는 방식이 이렇게 몇 푼 던져주는 적선을 통한 것은 아니어야 한다며 값비싼 정크 푸드와 소주에 삼겹살을 먹는 인간들을 보면 구역질이 나올 것 같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렇게 도와주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평생 빌어먹는 신세로 살 수밖에 없다고, 참으로 여러 번도 말했다. 들을 때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본의 사전에는 인간이란 단어를 포함하고 있지 않기에 그 힘은 실로 무시무시한 추진력을 지니고 있다. 어느 때가 되면 아이들은 구걸을 벗어나 보다 효율적인 자본의 굴레 속으로 편입되거나 경관을 헤친다는 말 같잖은 이유 따위로 어딘가에 숨겨질 것이다. 빤한 수순 아닌가! 과거 한국의 군부독재가 그랬던 것처럼.
물건 파는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 그렇게 불쌍한 애들 아니라고, 그렇게 번 돈이 적지 않다고, 지들 좋아서 나오는 거라고....... 그럼 묻자! 아동노동금지법이라는 단어의 의미조차 파악되지 않는 극빈한 현실에서 꿈꿀 기회조차 박탈당한 아이들
의 삶이란 과연 온당한가? 절대로 그럴 수 없다. 그래선 안 된다. 십억의 인구가 굶주려 죽어가는 상황에서 다른 십억의 인구가 비만으로 위태로운 지구의 이 지독한 부조리는 대부분 불균등 분배에서 비롯된다. 희생을 담보로 한 적선은 더없이 아름다운 것이지만 강요될 수는 없다. 허나 굳이 희생을 담보하지 않더라도 베풀 수 있는 나눔이 적지 않다는 것을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내 낮술 친구인 뒷집 박 영감도 안다.
---「표류기 넷. 오빠 예뻐요」 중에서

의식의 끊긴 틈을 가르며 자줏빛 커튼을 비집고 들어오는 강렬한 햇살보다 뒤죽박죽, 엉망진창의 쓰린 속이 먼저 아침을 알려왔다. 비정상적으로 많이 마셨고 비정상적으로 멀쩡했으나 아주 지극히 정상적으로 속이 쓰렸다.
‘아...... 너무 달렸다.’
우연히 들르게 된 가라오케에서 퇴장 후 곧바로 들어오기만 했어도 그나마 나았을 텐데 숙소 근처가 임박하여 눈에 띈 노점, 그 노점에서 삼삼오오 자리하고 있는 캄보디아 청춘남녀들의 술자리에 동석, 인생 뭐 있느냐는 듯 죽기 살기로 마신 술이 나를 죽이려 드는 아침. 뭐 뜨끈한 거라도 잡수며 삐친 속을 달래줘야 나도 인간이랄 수 있겠다.
아무래도 김치찌개가 낫겠지? 소고기뭇국 같은 게 있을까나? 아, 또 소주가 땡기면 어떡하지? 한식당이 종류별로, 메뉴별로, 특색별로 갖춰진 씨엠립의 시내로 향할 생각에 흥분과 설렘이 일었다. 그 간절함으로 계단을 밟았다. 누구 하나 함께할 이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던가? 모르겠다. 여하간 아래층으로 향했고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풍경을 만났다.
나시 또는 메리야스 풍의 민소매, 정갈한 검은색 티셔츠 주위로 드러난 새하얀 피부, 정숙하게 틀어 올린 기다란 머리카락과 그 머리카락에 정연하게 꽂힌 선글라스로 무장한 모던 걸. 모델인가 의심해봐야 할 시원한 기럭지의 미녀가 호스텔 내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모습을 목도하고서 잠시 넋을 놓았다가 정신을 차렸을 땐, 레스토랑이 제공하는 2달러짜리 뷔페를 위한 하얀 접시와 포크가 내 양손에 쥐어져 있었다.
---「표류기 다섯. 다이어트 때문에」 중에서

불콰하게 달아오른 시야에 들이친, 몹시 여행자적인 풍경이 제법 달달했다. 잠시 스쳤던 녀석, 그러니까 잉글랜드라던가 스코틀랜드라던가, 여하간 미 서부 몬태나에서 왔다거나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고 이름도 생소한 리히텐슈타인에서 왔다고 한들 나하고 하등 상관이 없을 것 같은 그 백인 녀석을 위시하여 오후 시간에 어딜 싸돌아다녔는지 전혀 알 수 없고 일절 궁금하지 않았던 인간들은 공교롭게도 모두가 사내였으며 나를 제외한 룸메이트 전부는 루이스를 중앙에 두고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루이스는 여전히 그 고운 선율과 음색으로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부르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고.

과감하게 문을 밀어내자 루이스의 푸른 눈이 커다래진다. 그럴밖에. 상대적으로 적은 동양여행자. 거기에 스커트를 입고 다니는 거동이 수상한 사내. 헌데 돌아온 모습이 더욱 기묘해라, 당최 넌 뭐하는 인간이야? 묻지 않을 수 없는 예상불가의 행색. 그 푸른 눈에게 나는 물었다.
“만족해?”
“끝내줘. 진짜 끝내줘.”
“몇 시야?” “음....... 거의 열한 시.”
“오케이. 나와 함께 데이트를 즐기기에 가장 완벽한 시간이야. 나가자.”
---「표류기 일곱. 이심전심! 교외별전! 염화미소!」 중에서

어려서는 기차가 좋았다. 멀미 때문이었다. 조막만한 내게도 5인용 승용차는 조막 만하게 느껴졌고 45인용 버스는 크기만 컸지 불편했다. 크다고 해봐야 관광버스용 부비부비 외엔 달리 뭘 할 수도 없었고. 어른이 되어서도 기차가 좋았다. 광광버스용 부비부비가 싫어져서? 그건 원래부터 싫어했다. 술과 담배 때문이었다. 수시로 술을 마셨으니 수시로 화장실에 가야 했고 간 김에 수시로 담배를 태워야 했다.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 갑자기 기차가 미치도록 싫어졌을 리 없으므로 여전히 기차가 좋았다.

유전적인 요인인지, 환경적인 영향인지, 그것도 아니면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무슨 장애가 있는 탓인지, 후천적이라면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라는 일명 트라우마 같은 게 있는 건지 어떤지는 몰라도 여하간 더럽게 예민하고 심각하게 까칠하며 지나치게 까다로워서 버스에선 거의 잠들지 못하는 안타까운 증세를 가지고 있다. 그럼 기차에선 편히 잤느냐? 역시 아니다. 그러나 그 둘을 동일시하는 건 종로에서 뺨 맞고 종로 약국에서 화풀이하는 격이다(뭐라니?).
사이즈에 걸맞은 수용인원과 그 수용인원을 위한 편의시설을 넘어 가지각색의 인간들이 저마다의 가슴으로 품고 있는 사람과 사랑, 세상과 인생, 사연과 곡절, 연인과 가족을 지나 속도와 방향, 취향과 기호는 물론 과거와 미래, 절망과 희망 등
등의 총합은 ‘낭만’이라는 한 단어에 종착한다. 기차는 낭만의 상징으로 훌륭하다. 그렇기에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는 건 버스나 택시나 리어카나 소달구지가 아니라 기차였던 것이다. 내가 기차를 좋아하는 개연과 당위로 충분하다. 난 너무 로맨틱하니까~.
세로로 길쭉하게 형성된 베트남을 기십 시간에 걸쳐 종단한다 하여 그 자체로 하 나의 즐길 거리라고 이름난 베트남 기차여행의 시작은 호찌민발 나트랑 행 4인 1실 블루 트레인. 별빛 쏟아지는 가운데 어둠의 정적을 깨치고 광야의 선구자처럼 철로를 내달리는 야밤 열차는 처음이 아니나,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누운 채로 안락하게 감상할 수 있는 침대칸 역시 처음이 아니나 낯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마주 보며 몸을 뉘여야 할 침대가 방 안에 있다는 건 그저 상상에만 머물렀을 뿐 한 번도 이용해 보지 못한 탓으로 ‘오리엔탈 특급열차’ 따위를 떠올려야 했다.
촌스럽게 이러지 말자고, 이건 전혀 대수로운 게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봤으나 어쩌랴! 아는 게 그거밖에 없는데. 생각만으로도 출렁거리는 마음은 제멋대로 그림을 그려내며 잔뜩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티켓의 가격은 대략 30불 정도였기에 호화스런 샹들리에나 잘 다듬어진 마호가니 테이블을 상상하진 않았으나, 그 정도로 멍청한 인간은 아니었으나 으레 큼지막한 차창을 가르는 조촐한 탁자에 동서양의 젊은 청춘들이 쌍을 이뤄 맥주를 마시고 기타를 튕기는 연상 작용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마침 비까지 오던 밤이었다.
---「표류기 열. 난 너무 로맨틱하니까」 중에서

커뮤니티 룸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던 아주 평온한 시점이었다. 몸을 맡긴 소파는 푹신했고 목덜미와 정수리를 덥히는 온풍은 따스했으며 조화로웠다. 그 타이밍에 그녀가 등장했다.
심하게 북유럽적인 몸매에 깎아놓은 듯 갸름한 얼굴, 별반 북유럽적이지 않은 진한 갈색 머리와 짙은 눈썹의 깔맞춤은 밀가루빵 같은 새하얀 피부와 더불어 부조화 속의 조화를 이뤄내고 있었고 푹신한 소파에 파묻혀 청사과를 씹는 모습에선 가지런한 치열이 돋보였다. 벽에 붙은 커다란 TV에서 방영 중인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영화 [앙코르]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그녀의 등 뒤론 저물녘으로 치닫는 하루 가장 강렬한 햇살이 부서지며 산란했고 설핏 고개를 돌린 가녀린 볼과 솟은 콧날을 강하게 물들이며 전진, 기다란 그림자 하나를 바닥에 늘어뜨렸다. 역광이 빚어내는 극렬한 대조는 능히 눈길을 사로잡았다. 상영 중인 영화 대신 그녀를 한참 감상했다.

“진이야. 남한에서 왔어.”
“조세핀이야. 프롬 스웨덴이지.”

그녀의 왼손에 쥐어져 있는, 더 먹을 여지가 없는 사과 찌꺼기를 자연스레 가로채며 무심한 듯 걸어가 보란 듯이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리고 맥주 하나를 계산해 그 녀에게 내밀었다. “Here’s your change.” 다 먹은 사과를 맥주로 거슬러 주는 일, 기회 된다면 작업용으로 아주 그만이다.

“매너 멋지네. 로맨틱하고. 남한 스타일이야?”
---「표류기 열둘. 실은 네게 거짓말했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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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진, 그는 내가 아는 가장 ‘근사한 또라이’다. 그는 아름다움을 탐하는 일에 온 생을 건 사람 같다. 인생에 세 가지 ‘ㅅ’이 있다는 것을 아는지? 그건 바로 ‘시, 술, 사랑’이다. 노래할 수 있는 시와 취할 수 있는 술과 탐할 수 있는 사랑이 있다면 그 어디인들 찬란하지 않겠는가. 아름다움에 홀린 그대 흐르고 흘러 또 어디에 닿으려나. 언젠가 우리의 여로가 겹쳐 어디서든 조우하게 된다면, 또 다시 반갑게 낮술 나누고 흔쾌히 취해 함께 노래하고 싶다.
- 이혜미(시인)

날, 선, 뼈, 하나를 허허로운 살에 묻고 그는 색(色)과 색(色事) 사이에서 일상의 숨을 고른다. 늘상 그는, 파란 그늘 아래서 만감(萬感)으로 빚은 자음(子音)의 코를 세워 모음(母音)에게 말을 건다. 그의 말은 날갯죽지 통증의 은어(隱語)다. 결코 언어가 될 수 없는 귀를 달고 태어난 불구(不具)의 말을 그린다. 그의 농염(濃艶)한 퇴폐(頹廢)가 그립다.
이상록(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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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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