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것은 신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그리스도, 즉 구원자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이름이 아니면 하나님께로 나갈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내게 예수님 외에 다른 주인은 없음을, 예수님만이 나의 왕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신앙고백입니다. 주님 한 분만 따르겠다는 말입니다. 이런 고백 없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는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우리에게 정말 부족한 것이 돈일까요? 권력, 지식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 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믿음이 부족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이름을 갈망해야 합니다. 그 이름의 능력을 알고 선포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삶의 위기와 역경과 어둠의 세력 앞에 서 있다면 오늘, 그분의 이름을 사용하십시오! 내가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면 하나님이 책임을 지십니다. 모든 것을 가졌으면서 아무것도 없는 사람처럼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언제 어디서나 ‘나는 예수님의 이름을 받은 사람이다’라는 것을 기억하고, 믿고, 실천하며 사세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세요. 그 이름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 이름을 부르면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에게는 구원이 임합니다.
--- pp.53~61
다른 종교의 기도와 기독교의 기도는 아주 다릅니다. 다른 종교의 기도는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목표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주인이고, 신은 나의 심부름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님은 우상이 아닙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다스리는 분입니다. 나를 이 땅에 보내신 분이고, 크고 선한 뜻을 가지고 계신 전능한 분입니다. 내 뜻과 하나님의 뜻 중에서 어느 것이 크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 뜻이 이루어지는 것과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나에게 더 유익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면 이 세상에 얼마나 멋진 일들이 많이 일어나겠습니까? 수많은 어둠이 물러가고,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증거가 가득해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자기 일에만 열중하기 때문에 세상에는 불의가 가득하고, 죄악이 판을 치며, 은혜가 흘러가지 않고, 탄식이 가득한 현실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정말 싸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것, 그분의 뜻을 거부하고 내 뜻을 관철하려는 욕심,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과 친밀해지고, 기도는 담대해집니다.
--- pp.65~72
육신만 병드는 것이 아닙니다. 영도 병이 듭니다. 언제 병이 들까요? 죄를 지을 때입니다. 죄 때문에 우리 영은 심각한 타격을 받습니다. 우리 영이 건강하려면 독을 빼내야 하는데, 그 영적인 독이 바로 죄입니다. 자녀가 잘못해서 독을 먹고 괴로워한다면 부모는 만사를 제쳐 놓고 아이의 몸에서 독을 빼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죄입니다. 축복도 좋고, 하나님과의 사귐이나 봉사도 좋지만 어떤 것보다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은 죄 사함, 즉 회개입니다.
많은 사람이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현대인들은 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데, 무슨 죄를 인정하겠습니까? 죄라는 말 자체도 싫어하니 회개가 이루어질 리 없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죄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해결책이 나오겠어요? 아무리 인간을 연구하고, 환경을 개선하고, 성숙해져도 안 됩니다.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문제는 갈수록 더 심각해지고 인간성은 갈수록 피폐해지는 것입니다. 죄를 말하지 않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진단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성경은 문제의 원인을 분명하게 죄라고 진단하고, 해결책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그것은 회개입니다. 회개를 통해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음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 pp.142~144
예수님은 말세로 갈수록 사랑이 식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움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왜 이렇게 두려움이 가득할까요? 가장 근본 원인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막을 잃어버리고, 자기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인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두려움과 근심과 염려를 이길 수 있을까요? 먼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고난은 위장된 축복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난 그 자체는 힘들지만 그것을 통해 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하면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인생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생기면 “아이고, 큰일 났다!” 하는 것이 아니라 “아, 하나님이 나에게 기도하라고 하시는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고난은 우리를 부르고 흔들어 깨우는 하나님의 사랑의 외침이요, 돌아오라는 강력한 부름입니다. 염려는 우리를 죽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우리를 살립니다. 염려는 우리를 시들게 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우리를 소생시킵니다. 말세로 갈수록 사람들은 더욱 염려와 두려움의 노예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염려대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하면 기뻐할 수 있고, 관용할 수 있고,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릴 수 있다고 약속하십니다.
--- pp.204~212
우리가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는 기독교인들만 기도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다른 종교에도 기도는 있고, 더 나아가서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기도합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이 “나 요즘 기도해” 이렇게 말하면 “뭐라고? 말도 안 돼!”라고 하지 마세요. 실례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모든 사람이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요즘 다양한 기도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 신앙이 있는 사람들조차 지금까지 자기가 했던 기도와는 다른 다양한 기도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절대로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다른 기도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잘못된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것에 빠지면 안 됩니다. 우리는 성경적 기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 기도의 대상은 언제나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진심을 쏟아야 합니다. 하나님 뜻에 관심을 기울이고,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합니다. 내가 구하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잘못된 기도에서 벗어나, 더 깊고 성숙해지기를 바랍니다.
--- pp.243~251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디 계시나요?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지만 하늘에 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늘로 올라가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개념입니다. 여기서 하늘이란 하나님이 계신 위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의 지향점이 하늘이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즉 우리가 하늘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문제를 두고 기도할 때, 하나님을 내 문제 안으로 끌어내리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그 문제로부터 벗어나서 먼저 하나님께로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문제 속으로 개입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올바른 기도를 드리려면 먼저는 문제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땅에 있는 문제에서 벗어나서 하늘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육신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하늘로 올라갈 수 있을까요? 그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십자가는 하나의 문입니다.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과 함께 죽으면 예수님이 내 마음을 가지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나를 두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는 십자가에 죽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 고백을 자주 해야 합니다. 신앙의 새로운 차원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내가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고 고백하는 순간마다 나는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 pp.255~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