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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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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378g | 140*210*18mm
ISBN13 9791186202562
ISBN10 1186202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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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이미 자리에 누워 잠이 들었고, 벽시계는 단조로운 박자로 똑딱댔으며, 덜컹대는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방은 달의 미광微光에 밝아지기도 하고 어두워지기도 했다. 젊은이는 잠자리에 누워 뒤척이며, 이방인과 그가 들려준 이야기들을 생 각했다. 그는 중얼거렸다.

‘내 안에 이토록 말할 수 없는 욕구를 일깨우는 것은 보물이 아니야. 탐욕은 나와 거리가 멀거든. 그렇지만 그 푸른꽃은 꼭 한번 보고 싶어 못 견디겠어. 그 꽃은 내 감각 속에 계속 머물러 있어서, 다른 것에 대해서는 글을 쓰거나 생각할 수가 없어. 이 런 기분은 전에 없던 거야. 마치 방금 꿈이라도 꾸었거나, 잠이 들어 다른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가기라도 한 듯이 말이야. 내가 지금까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는 누가 꽃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나 하겠어. 게다가 한 송이 꽃에 대한 특이한 정열에 관해선 전혀 들어본 적도 없단 말이지. 도대체 그 이방인은 어디서 왔단 말인가?
---「1장 이방인과 꿈, 푸른 꽃」중에서

“그때 갑자기 알 수 없는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는 류트의 소리로 정적이 깨졌어. 그것은 한 그루 태곳적 참나무로부터 흘러나오는 것 같았지. 모든 시선이 그 소리가 나는 쪽을 향했고, 사람들은 소박하지만 낯선 복장을 한 젊은이가 그곳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네. 왕이 그에게 시선을 돌리자 팔에 류트를 안고 있던 그 젊은이는 깊이 몸을 숙였어. 그는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지. 아름다운 목소리는 비범했고, 노래는 낯설지만 놀라운 특색을 지니고 있었다네. 이 노래는 이 세계의 원천에 대해서, 별과 식물, 동물, 인간의 발생에 대해서, 자연의 전능한 공감에 대해서, 태고의 황금 시대와 그 시대의 지배자들, 말하자면 사랑과 시에 대해서, 증오와 야만의 출현과 그것들의 저 자비로운 여신들과의 투쟁에 대해서, 끝으로 그 여신들의 미래에 다가올 승리에 대해서, 또 슬픔의 종말, 자연의 소생, 영원한 황금시대의 회귀에 대해서 노래했다네.

늙은 시인들도 노래에 감격을 받아 특이한 이방인 주변으로 가까이 다가왔어. 예전에 결코 느껴 보지 못한 황홀경이 그들을 사로잡았고, 왕 자신도 천상의 강물 위에서 떠내려가는 느낌이었다네. 그런 노래는 결코 들어 본 적이 없었지. 특히 그 젊은이는 노래를 부르는 동안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기백이 넘치고, 목소리도 점점 더 강해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천상의 존재가 그들 사이에 나타났다고 믿었어. 그의 금발이 미풍에 흩날리고, 류트는 그의 양손에서 생기를 얻고 있었어. 취한 듯한 그의 눈길은 신비로운 다른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듯 보였고, 어린아이 같은 얼굴의 천진무구함과 소박함은 모두에게 초자연적인 것처럼 여겨졌지.”
---「3장 아틀란티스 동화」중에서

“수많은 기억만이 즐거움을 주는 동반자일 뿐이지요. 그 기억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뀔수록 더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관점으로 기억들을 조망하고, 비로소 그것들의 진정한 관계, 즉 그 기억들의 결과의 깊은 의미와 그것들의 현상의 의미를 발견할 테니까요.

역사에 대한 인간 본연의 감각은 나중에야, 현재의 강력한 인상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회상하는 가운데 생기는 조용한 감화로 인해 발달합니다. 시기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건들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들은 훨씬 나중에 일어날 사건들과 놀라울 만큼 동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일련의 사건들을 개관할 때, 또 모든 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때, 나아가서 경솔한 망상으로 그 본연의 질서를 흩뜨려 놓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과거와 미래 사이의 내밀함을 깨닫고, 역사가 희망과 회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지난 과거를 떠올리는 사람만이 역사의 단일한 규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불완전하고 번거로운 공식에나 다다를 뿐입니다. 오직 자신의 짧은 인생을 설명하기에 충분한 처방을 스스로를 위해 발견할 수 있을 때만, 우리는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감히 말씀드립니다만, 인생의 운명에 대해 세심하게 고찰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깊고 한없는 즐거움을 주며, 이런 성찰만이 스스로 지상의 불행을 극복하게 해 줍니다. 젊은이들은 역사를 오로지 호기심에서 읽습니다. 마치 재미있는 동화처럼 말입니다. 좀더 나이가 든 사람에게는 역사란 훌륭하고 마음을 위로해 주는, 또 북돋워 주는 천상의 여자친구입니다. 역사는 현명한 대화를 통해서 인간을 현재보다 높고 포용력 있는 인생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 주고, 또한 생생한 이미지를 통해 미지의 세계를 알려 줍니다.”
---「5장 광부와 은둔자, 제목 없는 책」중에서

그 문 앞에는 아름다운 스핑크스가 육중한 받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무엇을 찾고 있느냐?”
스핑크스가 물었다.
“잃어버린 게 있어서요.”
파벨이 답했다.
“넌 어디에서 왔느냐?”
“까마득한 옛날에서요.”
“그런데도 넌 아직 어린애구나.”
“난 영원히 어린애로 남게 될 거에요.”
“누가 너를 돌보아 주고 있느냐?”
“난 나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요. 내 자매들은 어디 있지요?”
파벨이 물었다.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단다.”
스핑크스가 대답했다.”
“당신은 저를 아시나요?”
“아직 모른단다.”
“사랑은 어디에 있지요?”
“상상 속에 있지.”
“그렇다면 소피는요?”
스핑크스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더니 날개를 퍼덕였다.
“소피는 사랑이지.”

파벨은 승리감을 느끼며 소리치고서 그 육중한 문을 통과했다. 그녀는 어마어마하게 큰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고는 즐거워하며 늙은 자매들70에게 갔다. 그들은 등불이 검게 타고 있는 어두운 밤에 그들만의 진귀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린 손님을 보지 못한 것처럼 행동했다. 그 어린 손님이 그들을 사랑스럽게 차례차례 어루만지며 바삐 움직이자 마침내 그들 중 하나가 얕잡아 보면서 쉰 목소리로 거칠게 물었다.
---「9장 클링소르 동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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