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EFT를 하면 할수록 태아기의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되었다. 결국에는 나도 애초의 편견을 모두 버리고 우리 모두 태아기의 기억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EFT로 ‘핵심주제’, 즉 모든 병의 원인이 되는 과거 기억을 죽 찾아 들어가다 보면 종종 많은 내담자가 종종 1~2살, 심지어 뱃속의 기억까지 떠올려서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 무의식의 이런 특성을 종종 이렇게 설명한다.
“내 무의식은 마치 CCTV처럼 나의 모든 것을 다 관찰하고 기억하고 있다.”
--- p.16
앞에서 나의 태아기 트라우마가 중학교 시절에 갑자기 나타났다고 했다. 그동안 가만히 잠재되어 있던 트라우마가 왜 하필 이때 발현되었을까? 여기서는 이와 관련해서 설명해보자. 그동안 개인이나 단체 과정에서 내가 상담하고 치유해준 사람이 못 되어도 수천 명은 될 것이다. 이 수천 명을 상담하다 보니 그들이 내게 오는 시기에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초1, 초6, 중1, 사춘기, 고1, 대1, 대4, 입대 전, 제대 직후, 사회생활 초년기, 결혼 전, 결혼 초, 임신, 출산, 육아, 폐경기 등이었다. 이들 시기는 자세히 보면 육체적 변화(사춘기, 임신, 폐경기)나 생활환경의 변화가 크게 일어나는 때라고 볼 수 있다. 곧 이 시기들의 공통점은 전부 새로 시작하거나 끝나는 변화의 시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상담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시작과 끝의 시기에는 심리적 문제가 잘 터진다.”
--- p.36
낙태 생존자의 세계관과 신념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절대 안심할 수 없다. 언제 끝장날지 모른다. → 극한의 공포와 두려움, 각종 공포증, 공황장애, 강박증, 조현병
모든 인간, 아니 모든 생명은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두려움은 아프거나 죽거나 다치는 것이다. 언제 낙태될지 모르는 아기는 당연히 10달 내내 ‘언제 죽을지 모른다.’ 또는 ‘언제 잘못될지 모른다.’라는 생각 속에서 극한의 공포를 느낀다. 이런 죽음의 공포는 무의식에 늘 내재되어 있다가 공포증, 공황장애, 강박증, 조현병 등으로 악화되기도 한다.
--- p.132
임신, 출산, 육아 시기에 임산부의 엄마 뱃속 트라우마가 극심하게 재현되고, 이것이 임신중우울증과 산후우울증 및 정신증의 주요 원인이 된다고 앞에서 말했다. 그러니 당연히 산전에 임산부의 엄마 뱃속 트라우마를 인식하고 치유하는 것이 중요한데, 전 세계적으로나 우리나라에서나 이에 대한 인식이 현저히 부족하고, 당연히 치유도 안 되고 있다. 이 책을 쓴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임산부의 정신건강 확보이기도 하다.
--- pp.221~222
또딸이와 찌끄레기 자식, 둘 다 환영받지 못한 자식끼리 결혼했으니 처음에 자신들의 아기가 생겼을 때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아마도 이런 심정이지 않았을까? 내 새끼라서 기뻐해야 하는데 왜 기쁘지 않지? 실제로 나의 아버지는 거의 평생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고, 아버지와 나는 제대로 깊이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아버지는 제대로 사랑받아보지 못해서 자기 자식이지만 어떻게 제 자식을 대해야 할지 몰라 어려웠던 것이다. 이렇게 두 분 다 나를 가졌을 때 당신의 엄마 뱃속 트라우마가 떠올라서, 당신이 부모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거나 버림받은 상처가 쓰나미처럼 확 올라왔을 것이다.
--- p.311
제 증상을 열거해보면, 심할 때는 좋아하던 운전도 아예 못 하고, 비행기 타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마트나 백화점이나 시장에는 아예 못 가고, 모임도 못 하고, 100미터도 숨차서 못 걸을 정도였습니다. 사람 많은 곳에서는 일단 에너지가 싹 고갈되고 긴장해서 탈진해버리니, 할 말 다했죠. 눈도 침침해서 안 보이고, 머리는 날마다 헬멧을 쓴 것처럼 멍하고, 어지러움과 이명과 두통, 심지어 탈모에 가려움과 설사까지 생겼습니다. 증상이 꽤 오래 정체되어 있다가 조금씩 좋아지는 속도가 붙더니 최근 몇 달 사이에 아주 좋아졌습니다. 혼자 시내버스 타기, 시외버스로 시외로 나가기, 고속버스 타기, 비행기로 제주도 갔다 오기, 심지어 일주일 전에 드디어 캄보디아 여행을 성공적으로 다녀왔습니다.
--- p.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