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인격이시라는 것에는 큰 상상력이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늘 보좌에 앉으신 분, 구름을 타고 만유의 면류관을 쓰시고, 이 땅을 심판으로 이끄시며, 우리로 마지막 심판에 서게 하실 예수님의 인격성을 깨닫는 것은 많은 경우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성령님에 대해서 말할 때는, 그분의 행동은 너무나 신비스럽고, 비밀하며, 우리의 감각과 육체의 모든 것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계시기 때문에, 그분의 존재가 하나의 인격이라는 사실에 접근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은 성부로부터 흘러나오는 어떤 힘, 어떤 영향력, 어떤 흐름이 아니라 성자 하나님이나 성부 하나님만큼이나 실제적인 인격이십니다.
--- pp.18~19
성령님의 내주하심 없이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는 유창한 말을 하고 신학을 이해하며 건전한 칼빈주의자는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멋지게 옷을 차려입은 자연적 인간은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살아 있는 인간은 아닙니다. 그는 탁월한 영혼과 크고 넓은 정신, 높은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 자연의 모든 비밀에 뛰어들 수 있고 독수리의 눈으로 보지 못한 길을 알 수도 있을 것이며, 인간의 시야가 닿지 않는 깊은 곳에 다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모든 지식을 가지고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는 그의 어떤 연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그가 성령님이 그와 함께 하시고 그 속에 거하신다는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기까지 그러합니다.
--- pp.35~36
나는 여러분이 성령을 거역하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어딘가에 있는 것입니다. 주의하십시오. 성령을 거스르는 죄만큼 악한 죄는 세상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아버지를 모독할 수 있으나 회개하고 그것에 대해 용서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들을 모독할 수 있으나 여러분이 그분께 용서받는다면 지옥이 여러분의 몫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모독하는 것에 대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고, 그것을 이해한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이 말씀은 분명히 여기 쓰여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하고 멈추어 서십시오.
--- pp.44~45
많은 사람들이 어린아이와 같이, 잠을 재우기 위한 특효약에 의해, 평화가 없을 때 많은 사람들의 '평화, 평화로다'라는 외침으로 인해 파괴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서둘러야 할 때 그럴듯한 말에 귀기울였습니다. 클레오파트라의 독사는 꽃바구니에 담겨 있었고, 종종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는 말 속에는 인간의 파멸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위로는 안전하며 여러분은 그 위에서 안식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 위로에는 실체가 있을 것입니다.
--- pp.65~66
여러분이 그분의 뜻을 알았다면, 질문하지 말고, 비용을 계산하지 말고, 모든 위험을 무릅쓰며, 모든 상황을 무시하십시오. 성령님의 뜻이 여러분의 절대적인 법칙이 되게 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의 이익과 손실과는 별도로, 여러분은 그분을 여러분의 절대적인 법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성령의 뜻이 여러분에게 명백히 보이면 즉시 순종토록 하고 그 뜻을 분별하도록 힘쓰십시오. 즐겁지 않은 의무에 고의로 눈을 감거나 달갑지 않은 진리에 대한 이해를 배격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명철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오직 성령님만이 여러분을 가르치실 수 있으며,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 자들은 절망 가운데 어리석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
--- pp.111~112
길에서 이탈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고 올바른 길을 걷는 일은 영적인 일입니다. 실수하는 것은 인간의 일이며 거룩한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실족하는 것은 악의 자연스러운 결과이지만, 일어서는 것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영광스러운 권능으로서, 그분은 자신의 선하신 기쁨을 원하게 만들고 행하게 하십니다.
--- p.121
어떤 거짓말을 변호해야 할 때 모든 사람들은 꾸민 웅변을 필요로 합니다. 이 주제에 대한 웅변이라는 풍요의 뿔로부터, 영광스러운 문장이 발표되고, 화려한 시구가 쏟아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거짓을 옹호하기 위해 모든 논리와 수사를 동원해야 하며, 성령님께서 그가 벌거벗고 가난하며 비참하다고 가르치실 때까지 그가 그렇게 하려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 pp.126~127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설교자나 교사에게도 어느 정도의 오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상 설교자가 말하는 것을 말씀과 증거에 따라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가르치실 때 성령님은 결코 오류를 가르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순수하고, 더럽혀지지 않고, 희석되지 않은 진리입니다. 날마다 그분의 가르침 아래 여러분을 복종시키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결코 잘못된 말을 배우거나, 잘못된 생각을 배우지 않을 것이며, 예수 안에서 온전한 진리 가운데 오류 없는 가르침을 받게 될 것입니다.
--- p.143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들에게 말씀하셨을 때조차 그들이 그러한 무지를 나타냈다면, 오늘 우리가 넘어지기 쉽다는 것을 우리는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 되며, 우리 자신이 둔하고 굼뜨다고 해서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이 교회의 선구자들에게조차 성령님의 가르침이 절실히 필요했다면 우리에게는 얼마나 더 그렇겠습니까? 그들조차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 것도 받을 수 없었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분의 지시 없이 현명해지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위치는 우리의 어리석음에 대한 겸손한 가운데 주님 앞에 재 가운데 엎드리는 것과 같이, 주님의 발 앞에 엎드리는 마리아와 같아야 합니다.
--- p.188
여러분은 복음에 친구가 되거나 적이 되거나, 제자가 되거나 반대자가 되어야 합니다. 일단 구주 예수께서 여러분의 삶의 궤도를 가로지르시면 여러분은 결코 중립적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거부하거나 받아들이거나, 그분을 믿거나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거나 해야 합니다. 나는 그 누구도 자신이 내가 말하는 범주에서 빠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여러분 모두에게 이 단순하지만 엄숙한 진리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 p.192
우리는 은혜의 보좌를 바라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을 들으실 것임을 압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분의 사랑받는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도무지 무엇을 구해야 할지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영적 짐과 생각의 함정에 빠져,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기도라는 유일한 치료제를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나서 여기에 아슬아슬하게 때를 맞추어, 가장 심각한 문제의 핵심에 성령님께서 다가오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어서 우리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우리의 고통을 덜어주시며, 우리가 무거운 짐을 져도 기진하지 않고 견딜 수 있게 해주십니다.
--- pp.226~227
내가 원하는 것이 작은 것이라면 나는 내 작은 능력으로도 그것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모든 주님 약속하신 축복을 필요로 합니다. 주님은 내가 주님께 구하기 전에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나는 내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구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이 매우 큰 것들이며 내 스스로는 결코 평가할 수 없는 것임을 압니다. 나는 한계에 이르렀고 그러므로 탄식합니다. 큰 소원, 위대한 포부, 높은 계획의 산물로서의 기도는 확실히 성령의 역사입니다.
--- p.243
그리고 결론적으로 오늘 말씀에 있듯이 이 변화는 여러분 자신을 넘어선 힘에 의해 일어나야 함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한 명의 대적자(enemy)는 언젠가 자신의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증오(enmity) 그 자체는 그럴 수 없습니다. 만일 대적이 되는 것이 그의 본성이라면, 그는 언젠가 입장을 바꿔 우리의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증오 그 자체가 그의 핵심적 본질이라면 그는 변화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는 분명히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이 이루어졌음에 틀림없습니다. 이것은 요즘 잊혀진 것입니다.
--- p.291
사랑은 우리가 그분을 온전히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전체를 사랑할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 전체를 알 수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다 이해하거나 알 수 없는 부분까지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합니다. 우리는 영원히 찬양받으실 성령님을 있는 그대로 사랑합니다. 이것에 발맞추어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그분이 만드신 피조물을 사랑합니다.
--- p.313
기도 없는 사람은 믿음 없는 사람이며, 굳센 믿음의 사람은 기도로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어머니와 기도라는 자녀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믿음은 자신의 팔에 기도를 안고 있으며, 기도는 믿음의 젖에서 생명을 유지합니다. 믿음의 성장이 기도에 대한 열정을 낳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바알의 제사장 앞에서 먼저 믿음을 선포하고, 그리고 나서 물러나 갈멜산에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 p.33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을 확신하십시오. 하나님은 자신을 결코 속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 자리에서 이 말을 하시고 저곳에서 저 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과 나는 불성실함에서 뿐만 아니라 연약함에 의해서도 모순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말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고 우리가 말한 것을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그것과 모순되는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억에 약하지도 않으시고 의지에 관해서도 변하지 않으십니다. 어제 약속하신 것을 오늘 이루시고 한 곳에서 말씀하신 것을 또 다른 곳에서 선포하십니다.
--- p.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