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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3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536쪽 | 676g | 140*210*35mm
ISBN13 9788954691468
ISBN10 8954691463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우리는 속도에 얽매여 산다. 밤낮으로 빠르게 달리고, 다른 모든 일도 빠르게 처리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우리를 둘러싼 네 벽이 고정돼 있는 것처럼 면도하고 밥 먹고 사랑하고 독서하고 업무를 본다. 섬뜩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지만 그 벽들이 움직이고,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르지만 길고 굽은 더듬이처럼 벽의 레일이 계속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 p.46

만일 그 시대를 해부해보았다면 목조 철로 만든 모난 원처럼 말도 안 되는 것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모든 게 하나의 모호한 의미로 용해되었다. 세기 전환기의 마술적인 시기에 구현된 이런 환상은 어찌나 강했던지, 어떤 사람은 아직 살아보지 못한 새로운 세기를 향해 환호성을 올리며 달려갔고, 어떤 사람은 어차피 다시 나오게 될 집으로 들어가듯 옛 세기 속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 pp.82~83

이례적인 사건을 신문으로 알게 될 가능성은 그것을 직접 체험할 가능성보다 훨씬 크다. 달리 말해 오늘날 매우 중요한 사건은 추상적인 곳에서 일어나고, 현실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
--- p.105

안타깝게도 사유하는 인간만큼 문학작품에서 재현하기 어려운 것은 없다.
--- p.171

경험이 인간과 무관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는가? 현대의 경험들은 무대로 옮겨졌고, 책 속으로, 연구소의 보고서 속으로, 탐사 여행 속으로, 그리고 사회적 실험 시도와 같이 남의 비용으로 특정 양태의 경험을 양성하는 이념 공동체와 종교 공동체 속으로 옮겨갔다. 경험들은 업무 영역에 속하지 않는 한 공중에 둥둥 떠 있을 뿐이다. 수많은 타인이 개인의 일에 개입하고 개인보다 개인을 더 잘 아는 오늘날, 자신의 분노가 실제로 자기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이로써 남자 없는 특성의 세계가 생겨났고, 경험하는 주체가 없는 경험의 세계가 생겨났다.
--- p.232

그러나 대양과 대륙을 손바닥 뒤집듯 연결시키는 현대의 영혼에게도 바로 길 건너 모퉁이에 사는 다른 영혼과 연결점을 찾는 것만큼 불가능한 일은 없다.
--- p.341

그녀는 위대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위대한 이념들로 가득찬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이념을 현실로 옮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아마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실현시키기 위한 조건이 다 갖추어져 있더라도 어떤 것이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이념인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 p.355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득하게 느껴졌다. 마치 무언가를 외국어로 유창하게 말하고 나서 행복해했으나 그다음에는 두 번 다시 반복할 수 없게 된 상황처럼.
--- p.375

“나는 우리의 역사가 하나의 이상에서 그 요소 중 단 몇 가지만 실현해놓고 기뻐할 뿐 나머지는 그냥 방치해두었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조직이라는 것도 대개 서툰 솜씨로 망친 어떤 이상의 초안에 불과합니다. 훌륭한 인물들도 마찬가지죠.”
--- p.426

삶의 가르침이 되는 말은 어릴 때 부모님의 집에서 배웠다. 모두 엄격한 지혜였지만, 오래된 가재도구처럼 아름답고 단순할 뿐이었다. 그런 걸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경구는 항상 문장 하나로 표현되었고, 곧 마침표가 찍혔기 때문이다.
--- p.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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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나는 인물, 갈등, 줄거리, 심리 묘사, 사상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하는 데에서 현대성을 드러내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무질은 정반대의 노선을 택했다. 그는 소설 안에서 인식의 지평을 넓혔고 자신의 작품을 지적인 종합체로 만들었다. 이러한 종합은 우리 세기의 그 어떤 철학적 학술적 작품에서도 본 적이 없다. 무질은 오직 소설만이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무한함을 발견했다.
- 밀란 쿤데라 (소설가)
에세이와 서사극 사이의 어려운 균형을 가장 절묘한 방식으로 잡아내고 있는 이 눈부신 책은 고맙게도 더이상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소설’이 아니다. 괴테가 말했듯 “자기 분야에서 완벽한 모든 것은 그 분야를 뛰어넘어 비교 불가의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그의 아이러니, 지성, 정신성은 가장 종교적이고 가장 유아적인 영역, 바로 시에서 나온다.
- 토마스 만 (소설가)
무질은 방향성을 제시해 우리를 오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틀에 박힌 관습적 사고 바깥으로 우리를 이끌려 할 뿐이다. 그가 제시하는 상은 우리를 숙고하게 하고, 정확하게 또 대담하게 사고하게 한다. 언젠가 무질은 울리히에 관해 “잊혀버린, 중요한 발언“이라고 울적하게 표현했다. 중요한 발언, 이 책을 그렇게 칭할 수 있을 것이다. 결코 잊혀서는 안 될 발언이다.
- 잉게보르크 바흐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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