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말했다. 나는 내 딸이 너무 대단해 보인다고. 근데 그 대단한 딸이 밖에서 상처받아 오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내가 이제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이제는 초등학교 다닐 때처럼 방학 숙제도 대신해 줄 수 없고, 다리 아프다고 하면 업어줄 수도 없고, 굶는다고 밥숟가락 들고 따라다닐 수도 없고, 누가 괴롭힌다고 쫓아가서 한마디 할 수도 없고, 일 그만두고 놀고먹을 돈 쌓아놨다고 거짓말할 수도 없는데. 지금의 딸은 너무 커버려서, 내가 딸보다 부족해서, 딸의 눈물을 그치게 할 수 없으니 부디 울지 않았으면. 내가 지켜줄 수 없으니, 부디 강해졌으면.
---「1장 쌍도의 딸과 쌍도의 딸」중에서
다른 친구네 엄마 아빠들을 보면서 고민한 적도 있다. 우리 엄마는 게임 하고 싶다고 하면 시켜주고, 학교 안 가고 싶다고 하면 안 보내네. 성적표 보여달란 소리도 안 하고, 하는 잔소리라고는 방 치우라는 것밖에 없네. 엄마가 나한테 뭐라고 안 해서 너무 좋긴 한데… 허걱, 설마 엄마가 날 포기했나? 근데 그렇다기엔 우리 엄마는 날 너무 사랑해. 근거 없는 자신감에 절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이었다. 우리 엄마는 날 너무 사랑해서 나 태어날 때부터 대학 보낼 때까지 혼자서 키웠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엄마는 내가 해달라는 건 다 해주면서 왜 나한테 바라는 건 없을까.
---「1장 쌍도의 딸과 쌍도의 딸」중에서
나는 어차피 그딴 짓을 저질러놓은 나와 내일도, 모레도, 앞으로도 쭉, 눈 감을 때까지 평생을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 내가 나를 싫어하면 진짜 답이 없다. 나랑 좀 친하게 지내야 살만해진다. 과거의 나도 나고, 실수한 나도 나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내 추한 모습까지 사랑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런 부분들만 쏙 뽑아내고 싶을 때도 있다. 근데 그런 것들을 하나둘 뽑아내다 보면 이것도 별로고, 저것도 별로인 것처럼 느껴져서 다 빼고 싶어진다. 그러다가 끝내 와르르 무너진다. 사람이란 게 절대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것들로만 쌓아 올려진 존재가 아니다. 괜찮은 것들과 별로인 것들이 다 차곡차곡 쌓여서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온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바보 같고, 덜떨어지고, 아는 척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까지 인정해야만 완전한 나를 마주할 수 있다.
---「2장 살다 보면 2군도 가고 그러는 거지」중에서
우리 징그러운 친구들은 결국 그 아담했던 친구가 더 아담한 항아리 하나에 담길 때까지 있었다. 너무 많은 말과 감정들이 머리를 채워서, 끝내 머리가 터져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런 말과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발인 끝내고 어머니께서 사주시는 밥을 얻어먹으면서 다들 하하호호 웃었지만, 어차피 집 가는 차, 기차, 버스에서 증발할 웃음이었다. 시간만이 이걸 해결해 준다. 이미 배워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 해결해 주는지는 모른다. 너무 늦게 해결해 준다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가족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도 잃었다.
---「2장 살다 보면 2군도 가고 그러는 거지」중에서
아이돌을 좋아하면서 탈퇴와 관련하여 눈물 뽑아낸 일이 세 번 정도 된다. 아이돌이 신문 사회면에 데뷔했던 게 두 번 정도. 그래도 몇 번 겪어본 일이라고 적응,은 개뿔 매번 극도의 정신 쇠약 상태가 되어 일상 생활 영위가 불가한 수준에 이르게 된다. 맞아도 맞아도 적응이 안 돼요. 왜 맞은 데 또 때려요. 나 말고도 이런 일 경험한 사람들 꽤 있을 것이다. 아니, 안 겪어본 사람이 드물 것이다. 일단 원카소(원더걸스, 카라, 소녀시대) 좋아해 봤으면 무조건 겪었음. 친구들도 나 위로 많이 해줬고, 나도 친구들 위로 많이 해줬다. 박재범 2PM 탈퇴했다고 밥 안 먹던 민지야. 루한 EXO 탈퇴했다고 야자 째던 다은아. 우리 이젠 울지 않기로 하자.
---「3장 이쪽저쪽 무한으로 즐겨요」중에서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건 이런 일이다. 믿고 싶지 않고, 화도 나고, 슬프기도 하다. 그렇지만 결국은 받아들여야 한다. ‘떠나보내다’라는 말은 ‘떠나다’와 ‘보내다’의 합성이다. 누군가가 떠나면 누군가는 보내야만 완성될 수 있다. 좀 구차해 보일 수는 있어도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한다. 김상수가 유니폼을 갈아입었다고 해서 그가 지금까지 했던 야구가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내가, 우리가 본 야구가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그건 그대로 남아있다. 아마 머리뿐 아니라 가슴에까지 남을 것이다. 이제는 파란 유니폼을 입지 않겠지만. 삼성의 7번 김상수가 아니겠지만. 내가 사랑하던 삼성 라이온즈의 김상수가 아니겠지만. 그래도. 상수야 안타를 날려주세요! 너무 많이는 말고. 특히 삼성이랑 경기할 때.
---「3장 이쪽저쪽 무한으로 즐겨요」중에서
RPG가 무서운 이유는 들인 시간만큼 강해진다는 점이다. 굳이 강해지고 싶지 않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애초에 강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은 RPG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난 강해지고 싶었다. 현실에서 안 된다면 온라인 세상에서라도 나와 자아를 일치시킨 이 캐릭터의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고 싶었다. 발전한 그래픽, 무궁무진한 콘텐츠, 감동적인 스토리, 그리고 현질(유료아이템 구매) 요소까지. 정신 차리고 보니 메일함에 무슨 스팸마냥 결제 내역이 쇄도했다. 시간이 없다면 그걸 돈으로 사면 된다는 태도. 그 태도가 사람의 사고회로를 병들게 한다. 그리고 나는 행복한 병자가 되었다. 아무튼 행복하면 그만 아님? 2016년에 오버워치 접게 만들어줬던 중딩 친구야. 누나인지 이모인지 모르겠는데 안타깝게도 정신 다시 잃었다.
---「4장 낭만에 대하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