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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시간을 걷는다

: 나만의 카미노, 800km 산티아고 순례길

박진은 | 새움 | 2023년 03월 2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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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3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278g | 129*187*20mm
ISBN13 9791192684420
ISBN10 1192684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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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나였다. 하나의 큰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치고 모두에게 칭찬을 받았던 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울컥 설움이 올라와 울음을 토해냈다. 뿌듯하고 기뻐야 하는 날, 왜 눈물이 나는지 나 자신도 이유를 몰랐다. 그날 이후 ‘이 일을 계속 해도 될까?’라는, 마음속에 꼭꼭 감춰 두었던 물음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생장에서 만난 순례자들까지 모국어뿐아니라 제2외국어를 능숙하게 하는 모습을 보니, 부러움과 동시에 나의 언어 공부에 대해 회의가 들었다. 여행의 교훈은 그렇게 빠르게 찾아왔다.

그 고지에서 씨름 선수도 날려버릴 듯한 세찬 바람을 만났다. 가방에 씌워 놓았던 방수 커버가 벗겨져 낙하산처럼 부풀었고, 그것이 바람 속에서 미친 듯이 춤을 췄다. 그 덕에 나는 몸조차 가눌 수 없어 두 손 두 발로 바닥을 기다시피 움직이며 바람을 피할 곳을 찾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카미노를 자신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걷고있었지만, 서로를 그리워하고 걱정하는 동료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밤이었다.

고요 속을 한참 걷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바쁜 생활에서 벗어나 여유를 온몸으로 만끽하던 그때, 왜 그렇게 서러운 울음이 터져 나왔을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다만 마음속에서 무언가 툭, 부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함께 걷는 이들 모두가 서로를 걱정하고 위험에 처하면 금세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순례길이지만, ‘스스로의 결정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것은 사실 카미노 위에서 뿐만이 아니라 평생 내가 잊지 말아야 하는 삶의 규칙이라는 사실을 절감한 밤이었다.

따뜻한 봄의 기운이 피어오르는 시골 길 위에서 나의 스페인 친구와 그렇게 작별했다. 예정된이별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날 걷는 내내 그가 많이 그리웠다.

험악한 날씨를 견디며 혼자 걷느라 힘든 날이었지만, 한편으론 내 마음을 보다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던 치유의 카미노를 걸은 날이었다. 카미노가 끝나면 어떤 삶을 살아갈지 모르지만, 어쩐지 이 모든 일들이 카미노 이후의 내 삶을 든든히 받쳐 줄 것만 같았다.

산티아고에서는 계획이 틀어져도 늘 결론이 좋았다. 기력이다 떨어져 터덜터덜 들어갔던 호스텔에서도 결국은 이렇게 꽤좋은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계획이 없어도 인생에는 늘 좋은 일이 일어난다. 어쩐지 순례길은 자꾸만 내게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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