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형식들
1.
여기 실린 글들은 외형상 짧은 산문들이다. 더 세밀히 나누면 다섯 가지 유형의 산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스케치와 모던 파라벨(비유담)이 대부분이고 콩트와 단편소설, 신(scene)이 몇 편씩 더해졌다. 그가 즐겨 써온 글의 형식들이 독립문예지 『베개』에서 줄곧 추구해온 ‘작은 형식들’이란 방향성에서 궤가 맞아 반갑게 이 책을 내게 되었다.
2.
그의 글은 따뜻한 외로움이 흐르는가 하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생생해지고, 막다른 길을 마주한 웅얼거림 혹은 울먹임 같았다가 쓴웃음 지으며 현실의 삶을 직면하기도 한다. 화사한 생을 갈구하는 소박함으로 터벅거리며 걷다가 친밀한 관계를 향해 손을 내뻗는다. 기발한 상상으로 묘한 해방감을 촉발하기도 하고 사고실험을 구상화하듯 전개한 글도 있다. 그에겐 감감한 외로움이 촉발했을 현실과 다른 시공간에 대한 감정이, 수수께끼에 대한 능력이 있다. 그의 글은 다채롭고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3.
스케치는 산문이되 감각과 감정, 이미지인 상태로 동결되고 울리는 ‘생생한 부동성’(不動性)을 지니고 싶어한다. 스케치는 봉합되고 지양, 완결되기 위한 서사전개가 아니라 파편인 채로 머물기를 원한다. 이는 외부세계나 내면 혹은 실존을 끝내 미지의 것으로 남겨두고 싶어하는 글쓰기의 한 선택이다. 인물은 대체로 통제할 수 없는 대상과 일순간에 접촉되고, 이때 장소와 사건은 선명하고 단일하다. 묘사는 거의 외적인 대상을 향하고 내면이나 관념은 서술의 비중이 작다.
스케치가 파편성과 묘사적 서술이라는 특성을 통해 이해된다면, 파라벨의 핵심은 비유성이다. 비유성이란 문학에서 얼마나 광범위한 영역이던가. 비유는 세계를 안정적으로 파악할 뿐 아니라 의식의 활로를 찾듯 통찰하길 원하는 인간의 정신적 본능이다. 그런데 결론과 교훈이 명확했던 고전 파라벨의 오랜 역사와 구분되게 모던 파라벨은 이해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한없이 상대화된 개인의 불확실, 불명료, 불안에서 빚어져 나온다. 100년 전의 대가 프란츠 카프카의 파라벨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것이다.
파라벨은 다양한 형식을 통해 표현된다. 철학적이거나 종교적인 뉘앙스의 우화 그리고 동화로 쓰일 수도 있고, 때로는 산문시일 수도 있다. 실은 모든 내러티브가 파라벨과 접촉될 수 있다. 이 책 속에 흩어져 있는 스케치에서도 비유성이 읽힌다면, 그 또한 추가로 파라벨이라 명칭할 수 있다.
한편 신(scene)은 - 완결적 파편으로서 스케치로 분류해도 무방하지만 - 특히 연극적인 느낌이 나서 따로 구분하고 싶어질 때 쓸 수 있는 분류명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분명한 서사적 해결로 매듭지어지는 이야기들은 아마도 콩트나 단편소설에 가깝게 읽힐 것이다.
4.
위와 같이 다양한 형식의 이야기들이 이 책에 실렸다. 몇 걸음 떨어져 바라보면 그저 한갓 짧은 산문들, 가까이 다가서 보면 스케치이고 파라벨인 것들 - 문예지 『베개』는 이런 작은 형식들이 ‘오늘 우리’의 여유 없고 빠른 삶에 적합하다고 보았다. 노동의 피로와 압도적인 정보, 자극에 노출된 인식의 한계 속에서 팽팽하게 당겨지고 소진된 오늘의 사람들이 문학적으로 소통하기에 적합한 스케치와 파라벨과 같은 작은 형식들을 제안하고 싶다.
기존에도 엽편, 장편(掌篇), 초단편, 미니픽션 등 다양한 〈작은 형식들〉이 명칭과 형식을 조금씩 달리하며 존재해왔지만, 문학계에서 양식상의 합의에 이를 만큼 깊이 있고 설득력 있게 논의된 적은 없었던 듯하다. 어떤 편향 때문인지 〈작은 형식들〉은 전력을 다해 추구할 미적 성취의 영역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어떤 작은 형식의 글이 독자 앞에 공감의 요소와 놀라운 낯섦을 품고서 사금(砂金)처럼 발견될 때 적어도 우리는 그 형식을 호명하고 문학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한 문학의 장면에 대한 하나의 제안으로서 이 책을 출간한다. 시작하는 작가 송웅근씨와 모두의 만남을 기원한다.
- 조원규 (시인, 베개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