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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장 실험실 인간 2장 굶주림 3장 원숭이 행성 4장 재앙 5장 이주 6장 마법의 숲 7장 엘리트들 8장 지평선 너머 9장 스텝 하이웨이 10장 호모 히브리스 감사의 말 주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
저요하네스 크라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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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끝없이 승승장구해온 인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몰락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숱한 우연의 상호작용을 통해 파괴적인 속도로 진화의 정점을 향해 내달리고, 궁극적으로는 지구의 오지까지 정복해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아주 특별한 동물 종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이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끝에 단 한 번뿐인 성공 가도에 진입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수많은 진화 경로는 인간의 계통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침팬지와 보노보로 분화된 이후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그중 하나는 이미 우리 앞에 있다.
---「서문」중에서 우리 실험실의 네안데르탈인화한 세포 배양물은 호모 사피엔스의 위대한 비밀에 접근하기 위한 보조 수단에 불과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현대인에게 결정적인 이점을 제공한 유전적 변화를 읽어낼 보조 수단 말이다. 그 보조 수단이 우리를 복잡한 분업 사회로 이끌고 전체의 행복을 위해 개인이 계속 전문화한 문화적 능력이었을까? 아니면 동족에 대한 잔인함, 동족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더 서슴지 않았던 잔인함이었을까? 자신의 삶을 미지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았던 대담함이었을까? 현생인류는 인류사에 진화의 흔적을 남겼지만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그렇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이 사소한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은 결국 오류의 흔적, 우리가 그저 전속력으로 내달리고 있는 막다른 골목이었을까? 우리 안의 무엇이 결정적인 순간에 네안데르탈인 클론을 조수석에 앉혀놓게 충동질한 것일까? ---「1장 실험실 인간」중에서 1950년대 프라하 인근에 있던 인간의 잔해에서 발견된 이 여인은 엘시드론 동굴의 네안데르탈인들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았던 것 같지는 않다. 두개골의 흔적이 이를 암시한다. 여기에는 잔혹한 죽음을 암시하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 그녀는 당시 전 유럽과 아시아에 서식했던 동굴 하이에나에게 찢겨 죽은 듯했다. 그녀의 두개골이 발견된 지 약 70년이 지난 2021년, 이 발굴물에 어떤 역사가 숨어 있는지 밝혀졌다. 이에 따라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주했다는, 지금까지 통용되어왔던 가설의 중요한 부분이 수정되어야 했다. ---「2장 굶주림」중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능력을 갖기 시작한 이래 동물권을 세 개의 큰 범주로 분류했던 듯하다. 최대한 많이 먹어치워야 해서 죽여야 하는 동물, 멀리하거나 바로 죽여야 하는 위험한 동물, 위험하지 않지만 먹을 수 없고 성가시면 죽일 수도 있는 동물. 우리 조상들이 유라시아에서 오스트레일리아까지 거대 동물을 멸종시키는 데는 몇천 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후 이들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동물을 다루는 법을 발견했다. 공존과 이용이었다. 하지만 야생 동물을 가축으로 길들이는 것은 아직 먼 훗날의 일이었다. 이 시도는 동남아시아에서 거대한 낙농 및 도축용 쥐를 사육하면서 시작되었다기보다는 더 북쪽에 있는 아시아와 유럽에 양, 염소, 소, 돼지를 기른 선구자들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 전에 석기시대 유라시아 사람들이 예속물이 아닌 충직한 동반자로 여겼던 동물이 있다. 다름 아닌 개였다. ---「6장 마법의 숲」중에서 이들의 세력이 팽창하면서 수렵 채집인의 어두운 피부색은 점점 이주민들의 밝은 피부색에 자리를 내주고 영원히 사라졌다. 피부색이 밝아진 것은 농경과 어쩌면 육식을 부족하게 섭취한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근동 지방에서 최초의 신석기 생활양식과 함께 시작되어 결국에는 북반구 전역에서 나타나고 강화되었다. 밝은 피부색은 여러 차례의 돌연변이로 인해 생겼다. 아마 이 방식으로만 피부를 통해 햇빛을 충분히 흡수해 생존에 필요한 비타민 D를 충분히 생산할 수 있고, 긴 수명과 돌연변이를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렵 채집인에게는 이러한 우회적인 방법이 필요하지 않았다. 육류와 어류를 마음껏 먹었던 이들은 비타민 D를 충분히 섭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7장 엘리트들」중에서 |
자기파괴적 욕망으로 질주하는 오만한 유전자,
인류에게 미래는 있는가? 2023년 1월, 지구종말시계가 지구 종말을 알리는 자정에서 90초 전으로 앞당겨졌다. 1947년에 미국 핵과학자회에서 인류에게 핵전쟁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알리기 위해 만든 이 시계는 최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전술핵 사용 위협을 이유로 시간을 조정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3년 동안 전 세계를 마비시킨 코로나 팬데믹을 비롯해 기후위기, 인구과잉, 생태계 붕괴 등 21세기에 인류가 마주한 위험은 그야말로 예측 불가다. 이 위험은 모두 인류가 자초한 것이다. 인간은 결국 지구 멸망의 방아쇠를 당기는 주인공이 되어야 직성이 풀릴까? 2010년 네안데르탈인 게놈 해독 연구에 기여했고, 같은 해에 발굴된 7만 년 전의 손가락뼈에서 새로운 고인류종인 데니소바인의 염색체를 해독했던 고고유전학의 선구자 요하네스 크라우제와 과학 칼럼니스트 토마스 트라페는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생존 과제의 답을 인류 진화사에서 찾고자 했다. 진화의 관점에서 현생인류는 찰나의 순간에 탄생했다. 그 짧은 순간에 인류는 대륙을 정복했고, 북극과 사막을 횡단했으며, 동식물을 지배했다. 그러나 이것은 끝없는 승승장구가 아닌 후퇴와 실패를 거듭 극복하는 과정이었다. 지은이들은 20세기가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히브리스(Homo Hybris)’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히브리스는 그리스어로 ‘지나친 오만과 자신에 대한 맹목적 과신’을 뜻한다. 이 명칭에는 파괴적 속도로 진화의 정점을 향해 내달려온 인간의 탐욕이 느껴진다.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 인간은 이 행성이 배출한 가장 지적인 존재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전지전능하다고 여기면서도 자기파괴적 충동에 사로잡혀 있다. 팽창하고, 소비하고, 정복하여 고갈시키려는 충동 말이다. 눈부신 진화의 역사를 헤쳐온 인류는 처음으로 한계에 부딪혔다. 인간은 이 위기도 극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스스로 일궈온 성공적인 진화의 희생양이 되고 말 것인가? 한 권으로 살펴보는 인류 진화의 천만년사 그것은 실패와 후퇴가 반복되는 과정이었다 『호모 히브리스』는 공통조상에서 출발한 인류종들이 분화되고 갈라져 호모 사피엔스가 결국 진화의 정점을 찍고 지배자가 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인간, 침팬지, 고릴라의 조상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0만 년 전에 지구에 살았고, 약 700만 년 전에는 인간 계통이 분화되었다. 이 공통 조상에서 현생인류,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이 탄생했다. 이들은 각자 생존의 길을 걸었다. 첫 장에 수록된 컬러지도와 기후변화도, 그리고 각 장마다 수록된 지도, 다채로운 발굴물 사진과 고인류에 관한 상상도는 과거 인류종들의 이동 경로와 생활상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다. 현생인류의 진화 과정은 순탄한 성공가도가 아니었다. 빙하기의 추위, 화산폭발, 끝없는 장마, 잔인한 맹수 등의 위험이 도사린 곳에서 인류는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거대한 자연 앞에 인류는 무력하고 왜소한 존재일 뿐이었다. 하지만 인류는 자연에 순응하기보다 이를 이용하고 극복하는 존재였다. 현생인류는 빙하기의 추위를 피해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목숨을 건 이주 행렬이었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과 교배하며 유전적 이점을 취해갔다. 책의 초반에 등장하는,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오늘날 인류의 유전자에 약 2퍼센트 포함되어 있음을 밝혀내는 과정도 이를 증명한다. 숨가쁜 속도로 퍼져나간 호모 사피엔스는 살상기술과 도구를 사용해 거대 동물을 사냥하고 육류를 섭취하며 뇌가 소모하는 에너지를 충당해갔다. 현생인류가 발닿는 곳마다 거대 동물들은 삽시간에 사라져갔다. 이것이 동물권에서 절대 남획을 하지 않는 다른 인류종과 현생인류의 차이였다. 매머드는 네안데르탈인과 공존하며 수십만 년 후에도 안정적인 개체 수를 유지했고, 네안데르탈인은 하이에나에 쫓기면서도 스스로가 먹이사슬에서 사라질 걱정을 하지 않았다. 짐승을 사냥하고 열매를 따먹으며 생계를 이어가는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넘어가면서 유랑생활에서 정착생활로 전환되었고, 잉여 수확물을 보관하면서 부(富)라는 개념이 생겼다.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넘어가면서 인류는 문명, 가부장제, 전쟁을 만들었다. 이처럼 인류는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성장해왔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늘 그랬듯이 인류는 답을 찾을 것이다 20세기에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히브리스로 만든 것은 질병, 즉 병원체였다. 전염병을 신의 형벌로 이해했던 인류는 20세기 전반기에 백신과 항생제를 개발했고, 이 시기에 인간은 신과 같은 힘을 가진 병원체를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전염병은 수많은 인류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그전까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전염병은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되었고, 인류는 드디어 자연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했다. 의학이 점점 발달함에 따라 인류는 이제 유전자 가위로 인간의 설계도를 고치고 바꿀 수 있다고 자신하게 되었다. 호모 히브리스는 다른 생물종과의 두드러진 차이를 만들어내는 ‘이성’이라는 기관을 그 어떤 존재보다 잘 다룰 줄 안다. 인간의 지능은 공룡의 치명적인 이빨이나 두꺼운 피부 같은 기능을 하는 기관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인간의 뇌는 6600만 년 전 공룡을 포함한 대부분의 생명체를 지구상에서 멸망시킨 운석과 비슷하게 위협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이 결정권을 가진 종으로 우뚝 선 것은 지능이라는 무기를 들고 모든 경쟁을 물리쳤기 때문이다. 이러한 통치권이 지구라는 행성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이제 우리의 마지막 적은 우리 자신이 되었다. 지은이들이 인류 진화의 역사를 돌아본 것은 인류가 결국 한 뿌리에서 나왔고,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현생인류가 진화의 잭팟을 맞은 것은 우연이며, 그 주인공은 데니소바인이나 네안데르탈인이 될 수도 있었다. 또 이들 인류종이 혼합되어 오늘날의 인류가 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유전자가 우월하고 열등한지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순응하지 않고 극복하는 존재이기에 지금의 위기에 대해서도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수많은 위기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후손이다. 지은이들은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자기파괴의 충동을 자극하지 않고, 미래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리라는 희망을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한다. |